지난겨울 위례 상월선원에서 진행된 아홉 스님의 90일간의 동안거 천막결사 이야기가 영화로 재조명된다. 살을 에는 한겨울, 난방 기구 하나 없이 폐쇄된 천막에서 옷 한 벌, 하루 한 끼, 묵언으로 하루 14시간 정진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불사 않는 스님들의 수행기를 담아낸 밀착 다큐멘터리 ‘아홉 스님’(감독 윤성준)이다.“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부처님 저희의 맹세가 헛되지 않다면,
불교에서 동자(童子)는 특별한 존재다. 나이어린 스님을 일컫기도 하지만 열렬한 구도자나 보살로도 표현된다. ‘열반경’의 사구게 중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 버려야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라는 후반부 게송을 듣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린 설산동자가 대표적이다. 문수보살 가르침을 받고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순례를 떠난 선재동자도 숭고한 구도의지를 상징한다.경전에는 동자가 불보살의 화현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향가를 지어 두 해가 뜨는 괴변이 사라지게 했던 신라 월명 스님에 나타난 청의동자와 금산사 진표 스님이 부사의방에서 온몸
부처님께서 팔만사천의 법문을 말씀하셨지만 출가자라면 누구나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제하신 것은 없다. 그런데 유독 율장만은 모든 비구들에게 반드시 익히고 실행하라고 하셨다. 법랍 5년이 지나도 계율에 대해 소홀하거나 갈마법을 모르는 이에게는 승단의 중요한 일은 물론 사소한 직무도 맡기지 말고 평생 동안 스승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정하셨다.사분율장은 바라제목차 해설, 건도, 집법(集法), 조부(調部), 비니증일(毘尼增一)로 구성되어 있다. 바라제목차 해설에는 비구계와 비구니계가 만들어지게 된 사건과 배경, 죄가 되는 범계조건, 동일
1. 불상의 부분 명칭을 설명한 것으로 틀린 것은? ① 삼도(三道) - 불상의 이마에 새겨진 3개의 주름을 말한다. ② 나발(螺髮) - 불상의 머리 형태로 소라모양의 머리카락을 말한다. ③ 육계(肉髻) - 불상의 정수리에 솟아있는 상투 모양의 혹을 말한다. ④ 광배(光背) -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신령스럽고 밝은 빛을 말한다. ⑤ 백호(白毫) - 불상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을 말한다. 2. 불교의 복장의식(腹藏儀式)에 대한 설명이 가장 올바른 것은? ①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 ② 부처님의 유골을 땅 속에 묻
부산에 계신 어느 노보살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 들었던 기억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라 오늘 소개해볼까 한다.노보살님에게 고모가 있었다. 고모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을 나온 신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 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경주에 시집을 갔다. 당시 시댁은 경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큰 부잣집이었다고 한다.집이 크고 부유하다보니 일제강점기 때에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공출을 하러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하루는 관청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공출을 한답시고 집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서울 수국사(주지 호산 스님)가 위례신도시에서 진행된 상월선원 천막결사의 정신을 잇는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개최한다. 특히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개별 텐트를 사용하는 등 ‘대중 속의 홀로' 수행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수국사는 5월8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아침까지 2박3일간 상월묵언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매일 6시간씩 정진하면서 일체 말하지 않고 하루 한 끼 식사와 소량의 간식만 주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정진 기간 내내 사찰을 벗어나지 않고 경내에 마련된 각자의 텐트에서 생활한다
당나라 도선율사는 16세에 20일 만에 ‘법화경’을 다 외웠고, 17세에 혜군화상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고, 20세에 지수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26세에 스승의 권유로 지수율사에게 율장을 공부한 후 선정에 관심이 많아 좌선수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승으로부터 ‘계행이 깨끗하면 선정이 밝아지고 지혜가 비로소 제대로 잡히는데, 이제 겨우 한 번 들었을 뿐 실행도 해보지 않고 어찌 지범(持犯)을 알겠느냐’라는 꾸지람을 듣고 지수율사에게 돌아가 총 6년 동안 율장과 주석서를 20번 열람하였다.그는 사분율 속에서 대승과 통하는 요소들
“스님!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2001년 범어사 선원 동안거 시절, 포행에 나서 대성암 계곡 쪽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던 30대 중반 여인이 길을 막고 물어온 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하네’ 하며 지나쳤지만, 뒤통수가 뜨겁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랜 시간 곱씹으면서 그 물음은 어느새 화두가 됐다.지난 2004년 4월부터 2015년 9월까지 11년간 월간 ‘해인’ 편집장을 지낸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이 20년 전 포행길에서 만났던 여인의 물음을 제목 삼아 그동안
휘이익∼허허벌판을 휘몰아친 살찬 삭풍이 천막으로 둘러처진 상월선원(霜月禪院)을 흔들었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며 천막결사에 임한 스님들이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천명한 아홉 선객이다. 하루 14시간 정진 속 공양은 하루 한 끼. 90일 묵언정진 기간 동안 옷은 한 벌만 허용됐고, 삭발목욕·외부인 접촉도 금했다. 어떤 이유로든 수행 중 천막을 벗어난다는 건 정진을 포기했음이다. 스스로를 가둔 청규에서 혹한의 겨울 기운보다 매서운 불퇴전(不退轉)의 결기가
작품 속 파란의 가방에 담긴 은장도는 밝음이가 자살을 계획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은장도는 할머니가 유물로 남겨준 것이다. 작품 속에서 밝음이는 할머니가 소녀시절에 끌려가 몸소 겪어야 했던 치욕과 고통의 과거를 목도한다. 일본군에게 능욕을 당한 뒤 자살하려는 할머니를 위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파란이다. 파란의 말을 듣고서 할머니가 하는 말은 가슴 저릿하다.“그래야 나중에 너를, 예쁜 파란이와 씩씩한 밝음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아팠지. 너무너무 아팠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지. 온 몸에, 영혼에까지 새겨진 고통과 상처는 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는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김명국처럼 도석화 걸작도 많이 남겼다. 그는 풍속화가로서 조선 후기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님들이 시장 같은 곳에서 탁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마치 조선시대로 누군가 건너가 사진을 찍어 온 것처럼 당시 스님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 불교문화를 그렸다고 해서 김홍도가 불자였는지, 불교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단오풍정’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바
‘막막한 세상의 끝/ 천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홀로/ 돌담을 마주하고 선다/ 조용히 돌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길이 되어 누워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 줄기/ 길이 되어 외롭게 누워있다.’(김영석 시 ‘돌담’ 전문)가끔, 새벽녘에 일어나 담 너머를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마을 제일의 부호로 소문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별세한 직후부터 살림은 급격히 줄어들어 갔다. 이 형편대로라면 7남매의 막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몫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입학도 장담할 수 없을 듯싶었
한국불교 중흥과 온 세상 평화를 발원하며 위례신도시 황량한 뜨락에서 진행된 90여일 천막결사가 마침내 회향됐다. 엄동설한 온기 없는 천막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결사 대중들은 매일 14~16시간씩 화두 하나 붙들고 정진했다. 엄격한 청규대로 동안거 기간 내내 하루 한끼 식사에 일체 말을 않는 긴 침묵의 시간을 이어갔다. 삭발과 목욕조차 않겠다고 결기를 세웠던 것처럼 촌음을 아껴가며 수행에 일로매진했다. 아파트 공사장 온갖 소음과 불자들 절절한 기도소리가 어우러져 천막 안 시간은 소 걸음마냥 우직이 흘렀다.그 90일 천막 안에서 지냈
위례 상월선원 동안거 해제를 맞아 9명의 정진 대중들이 지난 3개월간 상월선원에 모인 사부대중의 정성을 종단에 회향했다.상월선원에서 정진한 9명 스님들은 2월11일 서울 한국역사문화기념관 접견실에서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백만원력결집불사에 1억원, 선원수좌복지기금으로 5000만원을 전달했다. 이는 지난 3개월간 상월선원에서 진행된 9명 스님들의 용맹정진에 대한 사부대중의 공양비와 해제비 등을 모은 금액이다.이날 전달식에는 정진 대중인 호산, 진각 스님과 외호 대중인 혜일, 일감 스님이 참석했다. 상월선원 동안거는 혹한 속에서 하루 1끼
기해년 동안거를 위례 상월선원에서 마친 9명의 결사대중 스님들은 대중들의 찬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출가수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가장 낮은 자세로 치열하게 정진함으로써 침체된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겠다고 다짐한지 90여일 만이다.9명 스님들은 “하루 14시간 정진” “공양은 하루 한끼” “옷은 한 벌만 허용” “양치는 허용하되 삭발과 목욕은 금지” “외부인과 접촉을 금하고 천막을 벗어나지 않는다” “묵언” “규약을 어길 시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 등 엄격한 청규와 함께 신도시가 들어설 위례에서 동안거 결사에 들어갈 것을 선언했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소설가 한승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한승원이 각색한 영화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고유한 색과 음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도 동시대의 풍경과 공기를 프레임에 담는다. 시대적 풍경과 분위기를 담는다는 명제에 충실한 영화가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다.이 작품은 두 개의 화두를 담아낸다. 하나는 작품 속에서 제시한 ‘달마 대사는 왜 얼굴에 수염이 없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시대적 화두인 ‘역사의 변화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지식인과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 영화가 1989년에 제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이다. 생명을 함께 공유하는 머리가 두 개인 새라는 뜻이다. 경전에는 두 머리 중 한 머리에 샘을 낸 다른 머리가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독이 든 열매를 먹었다가 함께 죽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배려와 협력을 통해 공존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국 공멸한다는 가르침이다.오는 4월20일 총선이 있다. 여와 야로 갈린 정치권은 피 튀기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삭발과 단식, 농성, 거리 시위 등 대화와 협치는 사라지고 험한 말과 물리적 충돌로 포연이 자욱하다.이런 살풍경에 근심을
“신심으로서 욕락(欲樂)을 버리고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자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라.”(우바리 존자)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의 등불을 밝히는 여정을 안내하는 초대장을 발송했다. 1월3일부터 1월30일까지 진행하는 출가학교 52기 과정에 입방할 행자를 모집한다.삭발염의하고 스님이 되기 전 예비과정인 행자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출가학교는 2004년 9월 국내서 월정사서 처음 개최했다. 오대산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여법한 수행여건
많은 불자들이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문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내 친구도 그의 발원문에서 깊은 종교적 신심을 느낀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나옹선사의 행선축원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애송되는 발원문이 교연선사의 발원문이다. 한때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알려진 그의 발원문은 오래전부터 우리말로 읽혀졌다. 아쉬운 것은 이산교연이 바로 이 발원문의 저자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그의 생애와 사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산교연(怡山皎然)은 720년경 태어나서 7
종파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타락한 고려 불교계 상황에서 원묘국사 요세 스님과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주창하여 전개한 백련결사와 정혜결사가 없었다면 한국불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등불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결사의 정신과 힘이 이어져 왔기에 조선조 500년 동안의 가혹한 억불‧척불 정책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조선시대의 그 힘든 세월을 견디고, 일제강점기일본불교의 복속 시도를 어렵게 버텨낸 한국불교 앞에는 민족해방 뒤에도 숱한 난관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숨을 크게 쉬고 일어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