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 많아 ‘절 동네’로 불리는 데이왈라는 크고 작은 절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여성은 사원에 기거할 수 없으므로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출퇴근하듯 했던 삐아라타나라마요는 데이왈라에서도 한국과 인연이 깊은 사원이다. 인도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 스리랑카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 때는 1977년 11월14일. 봉선사 밀운 스님은 수교 직후부터 교류를 시작했고, 홍원사 회주 동주 스님은 한스교류협회장을 지내며 양국의 불교문화와 수행증진에 많은 씨앗을 뿌려왔다. 그리해 옛 도성 꼬떼(Kotte)의 라자 위하라, 최초의
최근 학계에서 불국사 석가탑의 사각형 기단과 계단 그리고 전체적인 형태가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석탑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3000여개의 섬에 3000여 인종에 의한 기상천외한 문화가 공존하는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90%의 인구가 신봉하는 이슬람이다. 반면 불교 신자는 1%도 되지 못한다. 이러한 나라에 보로부두르가 있다니, 마치 외계의 UFO가 탑 하나를 뚝 떨어뜨려 놓은 듯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바간에 비하면 보로부두르는 단 하나의 탑에 불과하여 불교 3대 유적이라 하기에는 다소 왜소하
2004년 8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민족음악 학술세미나에 참가했다. 행사가 시작되는 날 왕자의 축사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전통 예복을 차려입은 궁녀들이 줄지어 꿇어앉아 의전 준비를 하는데 어쩜 그리도 허리가 잘록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볼록한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만약 필자가 남자였다면 엉큼하다고 주변에서 꽤 흉보았을 것이다. 세미나 일정을 마치고 씨엠립으로 가기 위해 비행장에 당도하니 프로펠러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행기를 타는 기쁨도 잠시, 프로펠러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를 막아야 했고, 창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불리는 미얀마의 바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는 모두 동남아 지역에 있다. 통시적으로 보면 775~860년 샤일렌드라왕조에 의한 보로부두르가 가장 이른 시기이고, 11~13세기 무렵의 바간, 12~13세기 크메르에 의한 앙코르왕조 순이다. 보로부두르가 축조될 당시 한반도에는 불국사를 짓고(751) 장보고가 청해진을 다스렸으며(828) 당풍범패를 배운 진감선사가 귀국(830)한 통일신라와 연결된다. 바간과 앙코르와트가 세워지던 후기 무렵 한국에는 티베트불교가 들어와 이전의 당풍과 티베트
어린 시절 사립문 앞에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가 항아리에서 곡식을 한 양재기 퍼서 걸망에 부어드리는 것을 늘 상 보았다. 간혹 목청 좋은 스님이 탁발가를 부르시면 양재기에 곡식이 더 많이 담기곤 했다. 어른들이 들일을 가시고 혼자 집을 보다가 염불하는 스님이 오시면 할머니께서 하시던 대로 양재기로 곡식을 퍼서 달려 나가느라 곡식을 마당에 줄줄 흘렸고, 쬐끄만 아이의 손이 걸망에 닿지 않자 스님께서 대신 건네받아 부으셨다. “아파트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낮선 이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귀에
오스트리아의 음악 인류학자 호른보스텔은 브라질 생(笙) 조율법이 오세아니아 여러 지역에서 쓰이는 생과 같은 조율법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해 선사시대에 두 지역 간 문화적 접촉이 있었음을 유추해 냈다. 교통수단이 없었던 원시시대라 할지라도 한 지역의 문화가 오롯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닌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도에서 발생해 여러 문화권을 거치며 한국에 이른 불교음악은 더더욱 그렇다. 불교음악의 원류를 찾아 초기불교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태국·캄보디아·미얀마를 다녀보니 “남방에는 불교의식이 없으므로 의식음악이 없으며 출가자가 노래하고 춤
힌두 사제들의 베다찬팅, 다윗의 시편, 이슬람의 꾸란은 모두 아름다운 율조를 지니고 있다. 이들 율조는 말씀을 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므로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지 음악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음악이라는 표현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율조를 연구할 때, 내부자들은 주요 골격음 위주로 간단히 그리는 데 반해 외국인을 비롯한 외부자들은 들리는 대로 장식음과 시김새를 그리는 경향이 있어 전문용어로는 에믹(emic)과 에틱(etic)이라 한다.마하시선원에서 수행하던 어느 날, 창립기념일이 다가오자
룸비니를 떠나 포카라 공항에서 카트만두로 올 때는 12명 정원의 경비행기를 탔다. 돛단배만 한 비행기다 보니 조종실과 객실이 한 공간이었는데, 조종사가 여성이었다. “와~ 멋진데!” 하는 감탄사도 잠시, 비행기에 내려 마주하는 일반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쓰레기가 산이 되도록 방치된 마을 길에서 한 블록만 나서면 카트만두 명품거리, 거기서 잠시만 내려가면 북한식당도 있다. 수일간 인도 음식만 먹다가 평양냉면과 김치가 몹시도 반가웠지만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종업원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신성한
인도 북부 국경 소나울리에서 통과 도장을 받고 지프를 탔지만 룸비니 게이트를 지나도 인도에서 벗어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파란 하늘과 푸른 숲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름도 예쁜 룸비니가 지척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구 최고의 명산 히말라야 산자락 평원의 룸비니에는 마음만 먹으면 안나푸르나 계곡을 산책할 수 있고, 구름이 바람에 날리는 순간에는 그 유명한 피쉬테일이 눈앞에 나타나며, 반딧불이 반짝이는 포카라 호수가 지척에 있으니 어쩌면 마야부인 태속 아기가 이곳의 아름다움을 보러 그만 어머니 뱃속을 박차고 나온 것이 아
라싸공항에 내리는 순간 턱 하니 닥쳐오는 숨 막힘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천천히 숨을 쉬며 로비로 나오는데 사방에 흰 수건을 잔뜩 걸머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였다. ‘뭐지 저 흰 수건?’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중 나온 지인이 그 수건 하나를 목에 걸어 주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거나 항상 가탁을 목에 걸어주며 축복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따라 방문한 장터에서 처음 본 살풀이춤에 홀딱 빠졌던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가탁의 길이, 재질, 촉감까지 우리네 살풀이춤 수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던
지구상 어느 곳, 어느 나라든 그들의 민간 설화가 있다. 서양에 신데렐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콩쥐팥쥐가 있고, 인도에 라마와 시타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도령과 성춘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인간이 느끼는 삶의 애환과 추구하는 이상향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 양상은 발레와 한국 춤과 같이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는 기후와 생활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목이 주된 생활수단인 티베트와 정착 농경사회인 한국의 춤, 노래, 말씨의 친연성이 높은 점이 참 이상하지만, 거기에 불교가 있다
우리말에 ‘딴따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팔을 불며 큰 북을 치는 티베트 밀교 의례와 관련이 있다. 실제 티베트에는 어떤 의식이든 나팔이 쓰인다. 해서 라싸에 있는 나팔 만드는 대장간을 찾아가 보았다. 대장간은 겔룩파 사원 군더링의 뒤에 있었는데, 사원 언덕에는 나팔 연습하는 곳도 있었다. 그때 듣기로 티베트에서 가장 나팔을 잘 부는 스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소리를 끊지 않고 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티베트 스님들은 나팔 취주와 관련한 수행의 내공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례에 쓰이는 관악기의 종류는 ‘둥첸’
다람살라 맥그로간즈에서 버스로 2~3시간 거리의 따시종(Tashi jong)은 티베트 이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산골마을이다. 같은 까규파인 헤미스곰파와 캄파카곰파는 제3대 짬빠짜레 린포체 이후 독립된 소종파로 자리 잡았다. 3대 린포체는 불국토에서 다카와 다키니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이때 이마 가운데 지혜의 눈이 있는 놋쇠가면을 쓴 다키니는 바즈라 만트라를 암송하며 “몸과 음성과 마음의 문을 열어 붓다의 가피를 받으라”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헤미스곰파와 캄파카곰파 모두 놋쇠가면을 쓴 다키니의 춤이 있다.캄파카곰파는 까규의 8
라브랑시가 위치한 중국령 내의 입지와 전각 위에 얹힌 지붕이 마음에 걸렸다. 법당을 장엄하느라 기와를 얹었을 테지만, 그 모양이 중국적이라 의례에도 중국적 영향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맥그로간즈의 남걀사원을 방문해 의례와 ‘참’에 대해 조사했다. 산골짝 협소한 공간의 남걀사원은 도량의 규모와 의물이 갖춰지지 않아 참을 할 형편이 못됐고, 근년에는 참을 지도해 주던 노스님마저 입적해 설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히말라야를 넘어 라다크로 향하게 됐다. 라다크로 가는
동자승들이 퇴장하고 본격적인 ‘참’ 의식으로 접어들었다. 네 사람의 나승이 컁링으로 신호를 하자 동물 탈을 쓴 두 사람의 무승(舞僧)이 대경당 앞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호법 영웅들인데 중국식으로는 ‘화우(华吾)’라고 한다. 화우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컁링과 법고의 타주에 맞추어 한 계단 한 계단을 느리고 무거운 스텝으로 내려왔다. 마당에 나와서 춤을 추는데 둥첸의 소리와 같이 절제되고 중후한 동작은 춤이라기보다 호법 위의(威儀)를 드러내는 몸짓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렸다. 똑같은 동작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청·적·녹·황(갈색에 가
티베트어로 ‘춤추다’라는 어원을 지닌 ‘참’은 우리말 ‘춤’과 닮아 어감부터 예사롭지 않다. ‘참(Cham)’의 유래는 티베트의 최초 사원 ‘삼예’에서 파드마삼바바가 불법에 저항하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음혈을 뿌려가며 호법무를 추었던 것이 그 기원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를 ‘참’ 혹은 ‘체츄(Tse-Chu)’라고 하는데 중국화된 요즘은 ‘파우회이(法舞會)’의 진강우(金剛舞)로 부른다. 라브랑시의 정월 참이 행해지는 날 새벽, 촬영을 위해 일찌감치 도착해 보니 마당에 그려진 하얀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큰 동그라미 안에 중간
2007년 여름, 티베트력 7월 그믐 한밤중 손전등을 켜고 데뿡사원 뒷산 언덕을 오르는데 주변은 온통 유럽 사람이었다. 여행 중 정보나 준비할 장비가 궁금하면 유럽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정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여행에 있어서는 앞서가는 그들, 유목민의 후예다. 휴대용 손전등을 비추며 간신히 산길을 오르는 필자와 달리 그 친구들은 후레쉬 달린 모자를 쓰고 양손으로 스틱을 짚으니 달팽이가 원숭이를 보는 듯하였다. 산언덕이 무에 그리 힘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티베트를 안 가본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해발 300~400m에서
대만, 중국, 일본을 다니며 범패와 응문불사, 창작·예술음악까지 다양한 불교음악의 양상을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한국처럼 의례 중 작법무를 추는 경우는 없었다. 혹자는 중국에도 불교무용이 많다고 하겠지만 불교음악과 범패가 다르듯 의례무와 일반 불교춤은 구별된다. 중국 불교역사를 조사해보니 양무제가 “궁중무를 불교무용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그것은 불교무용이지 작법무는 아니었다. 인도부터 한국에 이르는 여러 루트를 조사해 본 결과 티베트에 의식무(儀式舞)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라싸대학의 한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요즈음은 ‘
자금성 인근에 ‘황실 불교음악을 연주하는 사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에서 해인사 찾듯 “지후아스(智化寺)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니 그때가 1999년 무렵이다. 관리인이며 안내원 모두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16년 베이징에서 불교음악 세미나가 열려 지후아스를 비롯해 하베이(河北雄县音乐会), 시안(西安古樂), 징두(京都北韻禪樂社) 등의 연주를 보며 지후아스 찾기에 헛걸음하였던 옛 일이 떠올랐다. 그사이 인터넷 지도라는 것이 생겨 검색해 보니 자금성 건너편에 지후아스가 떴다. 즉시 택시를 타고 일대를 몇 바
중국 대륙에서 단절된 전통의례와 범패는 대만을 통하여 간신히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대만은 적어도 대여섯 나라는 족히 되고도 남을, 너무도 다른 지역적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표준범패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전통의 원형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만의 표준범패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그렇다면 현재 중국의 본토는 어떠할까? 중국 곳곳을 다니다보면 동양 최고, 세계 최대의 불상이나 조형물이 있지만 신심의 정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 사찰 의례를 참례하거나 승단 및 불악단과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