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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오가며 망자 돕는 차사·변호사가 ‘보살’

기자명 김성순
  • 기고
  • 입력 2018.01.29 18:05
  • 수정 2018.01.31 15:01
  • 댓글 1

특별 기고-‘신과 함께’ 영화평

▲ 영화 ‘신과 함께’ 속 차사는 망자를 호위하고, 명부에서 심판을 받을 때 변호하며, 나쁜 판결을 받지 않도록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장애요인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사진은 ‘신과 함께’ 포스터.

‘신과 함께’가 14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역대 2위인 ‘국제시장’의 관객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과 함께’는 불교 등 동양의 지옥 관념을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의 얘기를 담은 영화다. ‘신과 함께’ 2편이 오는 8월 개봉 예정인 가운데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영화평 ‘신과 함께-용서와 참회의 조력자들’을 보내왔다. 김 연구원은 서울대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지난해 법보신문에 ‘지옥을 사유하다’를 연재하기도 했다. 편집자

‘시왕 심판’ 불교적 프레임 기반
도교·무속 등 다양하게 담아내
영화선 죄지은 망자 영원히 갇혀
불경에는 참회하면 나갈 수 있어

초기불교 지옥은 철저히 자업자득
중국에 전해지며 시왕신앙 결합
망자 천도 위한 의례의식 생겨나

집착 내려놓으라 강박하는 대신
원인 찾아 제거하는 것으로 해결
진심으로 참회하면 심판도 면제

영화 ‘신과 함께’는 작가 주호민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것으로, 제작사 쪽에서 먼저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원작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망자가 49일 이내에 명부의 시왕으로부터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도입부에서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 구절을 인용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시왕의 심판이라는 불교적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불교 외에도 도교와 무속 등 다양한 종교적 요소가 곳곳에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의로운 소방관으로 묘사된 김자홍이 웹툰에서는 선할 것도 악할 것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망자를 인도하고, 호위하며, 변호하는 역할을 맡는 차사는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 그리고 리더격인 강림이며, 이들을 보통 삼차사로 부른다. 영화에서는 김자홍을 데려간 삼차사가 변호와 호위를 하지만 원작 웹툰에서 보면 삼차사는 망자를 데려오기만 할 뿐 초군문을 지나면 망자 한 사람마다 변호사 하나가 따로 배정된다. 생전에 선업을 많이 쌓은 망자는 능력이 출중한 변호사가 배정되고, 악하게 살았던 이는 혼자서 지옥 심판을 견뎌내야 하는 구조이다.

망자는 사후 7일 째 되는 날 첫 공판을 받게 되며, 진광대왕의 도산지옥, 초강대왕의 화탕지옥, 송제대왕의 한빙지옥, 오관대왕의 검수지옥, 염라대왕의 발설지옥, 변성대왕의 독사지옥, 태산대왕의 거해지옥에서 차례로 심판을 거치게 된다. 시왕이니, 당연히 열 명의 대왕인데 왜 7번의 심판을 거치는지 묻는다면,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49일간의 중음의 교의와 도교의 시왕의 교의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뒤쪽 3명의 대왕이 어정쩡하게 밀려나 있는 것으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여덟 번째 이후는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이며, 각각 맡은 바 지옥의 영역도 있지만 이들의 재판으로 넘어가게 되면 3년 정도 걸리게 되므로 망자가 중음에 머무르는 49일의 기한과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 ‘신과 함께’ 영화 속 장면.

영화나 웹툰 모두 재판에서 패한 망자는 지옥에 영원히 갇힌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불교 경전의 지옥교설에서는 죄업을 고통으로 다 갚고 나면 다시 윤회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이지, 불교의 지옥은 고통과 참회로 보상하면 언젠가는 나갈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이다.

또한 불교의 지옥교설에서는 죄업의 산정에 있어서도 행동[業]의 의도에 못지않게 결과에도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A)이 선한 의도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이(B)에게 저녁을 사주고, 술을 권했다고 치자. 그렇게 권한 술로 인해서 B가 사고를 치거나 혹은 사고를 당한 경우, 이는 A의 악업으로 간주되어 지옥의 과보를 받게 된다.

영화에서도 직접적인 악행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지옥의 징벌을 피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다름 아닌 인터넷 악플 등을 통해 상대방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경우에도 직접적인 가해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설령 불교 신자가 아닐지라도, 이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현재 한국의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악플’에 대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초기불교의 지옥교설은 철저하게 ‘자업자득’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스스로 지은 업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고 갚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불교의 지옥이라면 동생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주인공의 저승길에 악귀가 등장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옥으로 가는 길이 험하거나, 밝거나 모두 스스로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이 불교의 지옥사상인 것이다. 하지만 초기 불전에서부터 나타났던 지옥사상이 중국에 전해진 이후 시왕신앙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망자의 천도를 위한 의례들이 행해지고, 남은 가족들의 기도와 염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 김자홍의 동생이 원귀가 됨으로써 그의 저승길에 악귀들이 나타나자, 강림 차사가 원귀를 없애기 위해 이승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때 강림이 월직차사 이덕춘에게 내린 명령이 김자홍의 눈을 가리라는 것이다. 도중에 자홍이 안대를 벗자 순식간에 악귀들이 그들을 에워싸기도 한다. 이는 생전에 자신의 가족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자홍의 집착이 그의 저승길을 방해하고 있는 진짜 요소임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명부에서도 그가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강한 집착인 가족애를 잠시라도 놓게 하기 위해 그의 오관을 대표하는 기관인 눈을 가리게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김자홍의 저승길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동생 수홍의 원귀가 아니라, 여전히 질기게 품고 있던 그의 애착심, 즉 가족에 대한 애정과 죄책감이었음을 상징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 ‘신과 함께’ 영화 속 장면.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영화 안에서는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자홍에게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강박하는 대신에 차사와 염라는 그가 아직도 놓지 못하는 집착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분주하게 노력한다. 이는 현몽을 통해 생전에 자홍이 15년 동안 미루고 있었던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참회, 그리고 가족들의 용서를 얻어내고, 그의 죄책감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망자에게 공감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월직차사 이덕춘뿐만 아니라, 영화 속 차사들은 더 이상 망자를 겁박한다거나 하는 무서운 존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웹툰에서의 김자홍 역시 지옥 곳곳을 통과하면서 그를 돕는 변호사에게 마치 ‘신’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홍의 변호사는 혹시 신이 아니냐고 묻는 자홍에게 자신은 위기 상황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며, 실제로 자홍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거나, 구원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홍 자신이 생전에 쌓아온 업으로 결정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심지어 자홍의 변호사는 자신의 밑에서 판관을 할 것을 제안하는 송제대왕에게 자신은 ‘심판’보다는 ‘구원’쪽이 즐겁다고 거절하기조차 한다.

이 부분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저승 차사들이 명부의 심판 과정에서 망자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한 조력자들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이들 삼차사의 주요 역할은 망자에 대한 변호와 호위이며, 웹툰 속의 변호사 역시 그가 할 일은 자홍이 육도 윤회의 여섯 문 중에서 지옥, 아귀, 축생의 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망자를 호위하고, 명부에서 심판을 받을 때 변호하며, 나쁜 판결을 받지 않게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장애요인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차사들과 변호사는 불교의 ‘보살’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보살의 가피라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선악에 상관없이 복을 내려주고, 지켜주는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기도든 참선이든 인간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 인간이 짓는 업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저해하는 장애가 있다면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살의 역할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영화 속 일직차사, 월직차사, 강림차사는 망자의 저승길에 장애가 되는 숙업을 해소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로(引路)보살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강점은 바로 이러한 교의적 재해석에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망자들은 말 그대로 ‘신과 함께’ 지옥 대왕들의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의 난관을 헤쳐 나가게 된다. 심지어 지옥 시왕의 대표 격인 염라마저도 망자를 돕기 위해 지옥의 규율을 깨고 인간의 일에 개입하기도 한다. 비록 다른 차사의 모습을 빌어서였지만.

마지막 심판에서 현몽을 통해 자홍의 어릴적 죄에 대한 가족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며 염라는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이 진심으로 용서한 죄에 대해서 지옥에서는 다시 심판하지 않는다.”

결국 신들(내지 보살들) 역시 인간들 사이의 용서와 참회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조력자일 뿐, 인간 스스로의 참회, 인간 스스로의 용서야말로 죽음 이후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제였던 것이다.

▲ 김성순 박사
영화관을 나서며 관객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용서든 참회든 살아 있을 때 해야 서로의 저승길이 편안하다. 혹여 나도 모르고 스쳐가는 죄가 있을 수도 있음을, 그리고 죽음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그 이전부터 늘 나를 지켜보고 도와주는 ‘신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자.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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