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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명순의 ‘목수 강씨 아저씨’

기자명 신현득

건강한 참 노동 의미 잘 포착해
보살 눈으로 쓴 아름다운 동시

시는 독자를 이끄는 예술이다. 시는 보다 기쁨이 많은 곳, 보다 평화로운 사회, 보다 건전한 사회로 독자를 이끈다. 이것이 시의 계몽성이다. 시가 이처럼 좋은 곳으로 독자를 이끌자면 시 자체가 건강한 시여야 한다.

목수 강 씨 투박한 노동처럼
시도 기교 대신 묵직한 감동
강 씨라는 막 쓰는 이름에서
보살의 서민성은 극대화 돼

그러나 도덕책에서처럼 “이때는 이렇게 하시오” “그럴 때는 그렇게 하시오” 하고 조목을 대어 가며 가르치지는 않는다. 독자가 시에서 그러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넌지시 일러주는 것이 시다. 이를 시의 암시라 한다. 건전한 눈으로 노동을 바라본, 건강하고 힘이 보이는 동시 한 편을 살피기로 하자.

목수 강씨 아저씨

우리 동네 연립주택 지하엔
목수 강씨 아저씨가 혼자 살고 계신다.
네모진 얼굴엔
수염이 듬성듬성 돋아있고
체크무늬 남방 차림엔
언제나 까만 때가 찌들어 있다.
지난 여름 방학 땐
아저씨 얼굴처럼 네모반듯한
나무상자를 하나 만들어 주셨다.
아저씨의 굵고 거친 손 마디가 만들어 낸
튼튼하게 못이 박힌 나무 상자.
그러나 만져 보면
예쁜 무늿결이 너무 매끄러웠다.
아저씨는 뭉툭한 나무토막을
얼마나 많이 자르고 깎고 다듬고 문질러서
곱고 향기로운 나무 속살무늬를
사과 껍질 벗겨내듯 찾아내셨을까?
오늘은 망치나 톱, 끌을 담은 연장통 대신
콩나물과 파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저녁 햇살과 함께 지하실로 들어가시는
목수 강씨 아저씨를 보았다. 

한명순 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

시는 주인공(캐릭터) 목수 강씨 아저씨의 솜씨를 닮아 있다. 아기자기한 기교 대신 묵직한 감동의 무게가 시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힘이 보이는 시다. 주인공 강씨 아저씨는 목수 일을 하는 노동자다. 아저씨는 연립 주택 지하방에 혼자 살고 있다. 저녁 햇살이 거두어질 무렵, 콩나물과 파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지하 방으로 내려간다. 혼자 사는 그 위에 생활이 넉넉지 않다.

그러나 당당한 아저씨의 태도에는 가난이나 어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 화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튼튼하고 의젓하기만 하다. 강 씨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아무 과장님, 회장님, 선생님보다 막노동계에서 막 부르는 이름, 강 씨라는 이름이 더 튼튼하고 더 뚜렷해 보인다. 남을 위해 베푸는 보살의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네모진 얼굴은 매우 개성적이지만 나무를 다듬어 네모를 만들어가는 목수의 생계와 이어지는 이미지다. 듬성듬성 나 있는 수염, 거친 손마디, 체크무늬의 남방이 목수아저씨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까만 때는 보살의 서민성을 돋보이게 한다.

목수 아저씨 보살이 선물로 전하는 네모 나무상자에서 화자 어린이는 느낀다, 뭉툭한 나무토막을 얼마나 깎고, 다듬고, 문질렀을까 하고. 튼튼하게 박힌 못, 미끄럽고 예쁜 무늬에서 정성의 흔적을 본다. 목수 보살의 손이 곱고 향기로운 나무 속살 무늬를 찾는 데 사과껍질 벗겨내듯 했을 거라는 신비감을 느끼고 있다.       

시의 작자 한명순(韓明順·1952~ ) 시인은 바다의 고장, 인천 출신으로 동심으로 시를 다루어 온 중견 시인이다. ‘하얀 곰인형’(1994) 등 다수의 동시집을 엮었으며, 해강 아동문학상(1995) 등을 수상했다.

섬과 육지의 자연이 모두 좋아서 제주도와 육지를 나들면서 건강한 시를 빚어 온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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