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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 끄고 명상에 들길

  • 기자칼럼
  • 입력 2018.07.09 10:49
  • 수정 2018.07.10 16:11
  • 호수 1447
  • 댓글 0

“때려잡자, 가짜 중놈 물러가라.” “초전박살, 일묵은 끝장내자.”

첨예하고 살벌함이 감도는 갈등현장에서나 볼 법한 인신공격성 현수막이 한 선원이 위치한 옆 마을 인근부터 선원 앞까지 내걸렸다. 마을 입구의 유일한 길은 큰 돌, 트랙터, 시멘트벽 등으로 막혔다. 선원 인근에 생긴 집회 장소에서는 스피커를 설치,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이 종일 노동가요를 재생하고 있다. 해당선원은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정기법회와 집중수행을 일체 진행할 수 없었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박암리로 이전 개원한 제따와나선원이 본의 아니게 통행세를 낼 처지에 놓였다. 한 중견기업이 선원에 보시하겠다는 신축건물에 “납골당을 짓는다”는 거짓소문이 붙고, 마을 일부 주민들이 ‘추모원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부터다. 면사무소와 선원 측에 따르면 반대대책위의 요구는 세 가지다. 납골당을 짓지 않겠다는 확약문서, 마을 진입로 확장, 마을발전기금이다. 선원은 신축건물 보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행정절차를 취소한 사실 그리고 애초 설계도에 납골당 계획이 없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반대대책위는 법적 근거도 없는 진입로 확장에 필요한 사유지 매입을 위한 소유자 설득마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성기 시위 중단과 현수막 철거 등 선원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끝까지 대화로 풀려고 했던 선원은 결국 법에 호소하기로 했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할 예정이다. 선원 측은 “마을 전체 발전을 위해 일정 기부는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도 “사찰이 들어왔으니, 개인 돈으로 길을 6m까지 확장하라거나 통행세 등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최호승 기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 스님은 “통행세를 내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의차를 막고 기부금 형태의 통행세를 갈취했던 2017년 10월의 사건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유골을 선산에 안장하려던 유족들이 마을주민들로부터 관례상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300만원을 기부해야 통행을 허용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를 거부하자 다시 500만원을 요구했다. 한낮 뙤약볕 아래서 1시간을 허비한 유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350만원을 내고 지나갈 수 있었다. 영수증이 공개되고 사연이 세간에 퍼지자 ‘지역 이기주의’라는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이번 사안이 제따와나선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며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공동체를 외면하는 사회와 단체는 불화하고 결국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절 입구 막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부 마을사람들은 자신들 행위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확성기를 잠시 꺼두고 선원에 조용히 앉아 깊은 명상에 드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time@beopbo.com

[1447호 / 2018년 7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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