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풍요로움 상징…세속에 물들지 않는 수행자 마음 일깨우기도
다산·풍요로움 상징…세속에 물들지 않는 수행자 마음 일깨우기도
  • 임은호 기자
  • 승인 2019.01.02 15:52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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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불교

돼지왕 설화 등 경전에 등장하며
맑고 향기로운 수행 이야기 전해
불교 한반도 도입 후 발전 거듭
도살 금지하며 육식문화도 쇠퇴
한때 환영받지 못한 가축되기도
십이지신도 해신 비갈라대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십이지신도 해신 비갈라대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돼지해 불교 소사

△375년 2월 고구려 성문사(省門寺)를 지어 순도를 있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있게 함. △771년 12월14일 봉덕사 거종(성덕대왕신종) 수성. 성덕왕을 위해 경덕왕이 시작한 것을 혜공왕 때에 완성. △855년 윤4월, 창림사에 무구정탑 창건. △951년 성남(城南)에 대봉은사 창건, 태조 원당(願堂)으로 삼음. △1011년 거란군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초조대장경) 제작을 시작(1083년 완성). △1911년 6월3일 하동 쌍계사 팔영루에서 경상·전라 양도 일부 사찰 청년 승려 59인이 회합, 조선불교청년회 발기. △1935년 9월29일 경남 3대본산 범어사에서 종무협의회 개최. 중앙교무원 해산, 31본산 폐지 및 대본산 창설 결의. △2007년 남북 불교계 공동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 회향.

 

 

2019년은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다. 10간 중 기(己)는 노란색을 뜻해서 황금돼지의 해로 불리게 됐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돼지는 보통 게으른 동물로 인식되지만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건강한 존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재물이 풍성해지는 행운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게다가 황금돼지를 꿈에 보면 대박이 터지는 횡재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토실토실한 황금복돼지해인 2019년 기해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돼지는 십이지신(十二支神)중 열두 번째로 방향으로는 북서북, 시간으로는 오후 9~11시를 상징한다. 또 잡귀를 몰아내는 신장(神將)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과 가까운 동물로 불리고 있다.

다산을 중시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돼지를 ‘위대한 어머니’로 여겼고, 고대 켈트족은 ‘풍요’의 아이콘으로 생각했다. 중국인은 멧돼지에서 강한 힘, 정직과 결단력을 배우려 했다. 이렇게 돼지는 길상으로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돼지 같은 욕심’ ‘돼지 떡 같다’ 등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될 때 돼지가 오르내리며 이슬람이나 유대교인은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돼지는 어떨까?

불경에서는 돼지가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동물로 나타난다. ‘밀린다왕문경’에는 “돼지가 살이 데일 것같이 더운 여름날이 되면 물가로 가는 것처럼, 화가 나서 마음이 들뜨고 갈팡질팡하고 혼란할 때 선정자는 시원하고 서늘하며 은은한 자비심의 명상을 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수행자의 마음준비를 설명하고 있다. ‘중아함경’의 돼지왕 설화 역시 마찬가지다. 돼지왕은 더 큰 세상을 향해 500마리 권속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던 중 한 마리의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길을 비키라는 호랑이의 말에 돼지왕은 자신을 따르던 돼지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대대로 내려온 갑옷을 입고 싸우자”고 외치며 배설물을 온몸에 발라 덤비라고 큰소리친다. 호랑이는 돼지에게서 나는 냄새와 더러움을 피해 길을 비켜주며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널 피한다”고 말한다. 이 설화는 맑고 향기로운 수행의 길을 택한 납자들이 세속의 물욕에 찌든 이들과 다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815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촌락문서’에는 지금의 청주 주변에 2개 촌란의 인구, 토지, 나무와 함께 가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4개 촌락에 말 61마리, 소 53마리와 그 증감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돼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는 농민들과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소와 말보다 돼지 키우기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488년 신라 소지왕이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당서(新唐書)’ ‘신라’ 조에 재상의 집에는 소, 말, 돼지가 많다는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에서도 귀족들의 육식 욕구를 충당시켜줄 돼지를 키웠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돼지고기의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711년 신라 33대 성덕왕은 도살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도살은 가축을 함부로 죽여 육식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여겨진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는 함부로 살생을 금지하는 법이 생기기에 이른다. 968년 고려 광종은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고 궁에서 쓰는 고기도 시장에서 사들인 것으로 볼 때 불교의 영향으로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을 차츰 꺼리게 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고기를 다루는 것도 차츰 서투르게 되어 육식 문화가 전반적으로 쇠퇴하게 됐다. 고기를 다루는 문화가 퇴보함에 따라 가축 가운데 돼지의 인기도 떨어졌다. 말은 군사적 필요에 의해, 소는 농사에 필요하기 때문에 많이 길러졌지만 농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곡물을 먹고 밭을 망가뜨리는 돼지는 육식을 삼가는 고려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가축이었다.

‘삼국사기’에는 655년 현재 안동 일대인 굴불군(屈弗郡)에서 흰 돼지를 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또 고구려의 수도 이전은 물론, 고려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집터를 잡을 때도 미래를 예견하는 동물로 돼지를 받아들였다고 기술돼 있다.

돼지에 대한 이와 같은 상반된 관념은 돼지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동시에 일반인에게는 먹고 싶어도 먹기 힘든 육류였기 때문에 일부러 해롭다고 멀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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