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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의료회, 필리핀 오지 쓰레기마을서 자비 의술 꽃피워

  • 교계
  • 입력 2019.07.06 22:11
  • 수정 2019.07.07 09:22
  • 호수 1497
  • 댓글 1

국제NGO 굿월드자선은행 공동으로
7월5~6일, 마닐라 인근 저개발지역
주민 600여명에 의료봉사 실시

14살 질리는 첫 출산이다. 초음파 기기를 들여다보는 얼굴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다.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어요. 출산 예정일은 9월24일이네요.”

의사선생님이 ‘오케이’ 신호를 보내자 비로소 질리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핀다. 출산 예정일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초보 엄마의 얼굴엔 안도감이 깃든다. 제대로 된 산전검사 한번 받지 못하고 출산할 뻔했던 10대의 예비 엄마는 연신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하며 검사실을 나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이 아빠도 없이 10대에 출산하는 경우가 흔한 이곳에서 최소한의 산전검사라도 받아볼 수 있었던 것은 마하의료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픔을 중생과 함께’라는 원력 아래 의료혜택이 미치지 않는 저개발지역을 찾아다니며 자비의 의술을 펼치고 있는 마하의료회(회장 김정순)가 7월5~6일 필리핀 라구나주에 위치한 산페드로시에서 의료봉사를 펼쳤다. 지난해 10월 마하의료회가 처음 이곳을 찾은 이후 지금까지 산페드로시를 방문한 의료봉사팀은 없었다. 이곳 주민들에게 마하의료회는 거의 10개월 만에 처음 만나는 의료혜택인 셈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남쪽에 위치한 산페드로시는 쓰레기 매립지다. 그래서 이곳 마을은 사우스빌이라는 정식 이름 대신 ‘쓰레기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우스빌은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된 마닐라 빈민들의 정착촌이다. 사우스빌 외곽에는 이주대상에도 들지 못한 극한의 빈민들이 모여들어 또 다른 판자촌을 만들었다. 이들은 쌓여있는 쓰레기더미 위에 자리를 잡고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폐자재를 이어붙여 집을 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은 주소도, 이름도 없이 그저 ‘남쪽 마을의 외곽’이라는 의미로 ‘사우스 사이드’라 불린다. 주민들 대부분은 쓰레기 재활용 업장에서 일거리를 찾거나 쓰레기더미 속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내 생계를 이어간다. 특히 무허가 판자촌인 사우스 사이드의 주민들은 출생신고도, 주민등록도 없이 평생을 보낸다. 교육 기회도, 의료혜택도 모두 먼 나라 이야기다. 그렇게 흔적 없이 흘러가는 삶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

마하의료회는 어린이 구호 국제NGO인 굿월드자선은행(대표 덕문 스님)과 함께 이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산부인과 전문의, 중의사, 약사,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7명의 회원들은 굿월드자선은행이 두 마을에 각각 설립한 스테파노 데이케어센터와 문덕데이케어센터에 마련된 임시진료소와 투약소에서 600여명의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시했다. 데이케어센터는 우리나라의 유치원에 해당하는 기초교육시설로 굿월드자선은행은 2014년 스테파노데이케어센터를 시작으로 필리핀 빈민 지역에 3곳의 데이케어센터를 설립, 운영하며 기초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됐지만 환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넘쳐났다. 산모들에게는 초음파를 이용한 산전검사, 근육통이나 관절통 환자들에게는 중의사의 진료와 치료가 이뤄졌다.

22살의 임산부 안젤라는 둘째 아이 출산이 임박해 있다. 하지만 초음파를 통해 확인한 태아의 허리가 산도를 막고 있었다. 이대로 진통이 시작된다면 정상적인 분만은 불가능하다. 자칫하면 아이와 엄마의 생명 모두가 위태로울 수 있다.

“가능한 빨리 병원을 찾아가세요. 만약 진통이 시작되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어요.”

의료봉사에 동참한 강설미 산부인과 전문의는 초음파 화면으로 보이는 태아의 상태를 설명해주며 “위급(emergency)”을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안젤라가 정말 병원을 찾아갈지는 알 수 없다.

“이곳 산모들은 대부분 정확한 출산 예정일을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출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제쯤 아이가 나올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산된 줄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배가 불러 임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궁근종이 커지면서 배가 불러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산전 진단을 해주는 것 외에 이곳에서 당장 해줄 수 있는 처치는 많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의 검사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한낮의 열기로 후끈 달궈진 간이 진료소에서 강설미 전문의는 하루 종일 산모들을 진찰했다.

중의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장홍석 선생이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근육이나 관절의 통증을 호소했다. 대부분이 쓰레기매립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간단한 침 시술만으로도 빠른 효과가 나타났다.

“일주일 정도 꾸준히 침 치료를 받는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뜸이나 약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침으로 치료를 해야겠네요.”

사우스 사이드에 위치한 문덕데이케어센터 교실에 차려진 임시진료실에는 치료용 침대가 하나뿐이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침을 놓는 장홍석 선생의 얼굴에서도 연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임산부와 근육․관절계 환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과 복통, 피부질환을 호소했다.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때문이다.

“아침 7시부터 와서 기다렸어요. 몇 달째 아이가 기침을 하고 있어요.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거리도 멀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가볼 엄두를 못 내죠. 이 약을 먹고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약을 받아든 20살 제니의 두 아이들은 연신 콧물을 흘리며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향했다.

마하의료회를 이끌고있는 약사 김정순 회장도 눈코 뜰 새가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적어준 환자들의 증상을 살펴보며 쉴 틈 없이 약을 조제한다. 주민들이 받아든 약봉투 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구충제와 비타민제도 함께 들어있다.

“산페드로시는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위생상태도 좋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병이나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많다”는 김정순 회장은 “구충제같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약도 이들에게는 귀한 약이 될 수 있다”며 “당장 생활환경이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이 약이 아이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각각 접수와 투약안내로 의료봉사에 동참했다.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의료봉사에 동참한 채명옥씨는 즉석사진기로 이틀간 아이들 300여명의 사진을 찍어줬다. 초등학교 교사인 채명옥씨는 “의사나 간호사도 아닌데 무슨 의료봉사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접수를 받거나 환자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도 절실했다”며 “사진 한 장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힘닿는 데까지 의료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 김순희씨는 접수를, 신미화․김연옥씨는 조제와 복용지도를 담당했다. 아이들 손에 구충제를 쥐어주며 꼭 먹으라고 당부하는 봉사자들은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봉사는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봉사현장에서는 데이케어센터서 근무하고있는 교사 등 직원들도 자원봉사자로 나서 주민안내와 통역 등을 담당했다.

30도를 넘는 무더위와 퍼붓듯이 쏟아지는 열대의 소나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틀간의 의료봉사를 펼친 마하의료회는 “내년에도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마지막으로 의료봉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이 의료봉사를 마치고 떠나는 쓰레기 산 위에 연민과 자비의 마음이 연꽃향기처럼 그윽이 맴돌았다.

필리핀 산페드로시=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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