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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 이젠 물불도 안 가리나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10.12 06:06
  • 수정 2019.10.14 13:33
  • 호수 1508
  • 댓글 64

새 창건주에 노골적 비판
“은처승” 의혹까지 제기
하심·참회 없으면 아수라장

순수 한글인 ‘가리다’에는 여러 의미가 담겼다. 이 중에는 ‘구별하다’는 뜻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저절로 대소변을 가린다.” “옳고 그름을 가린다.” 등 표현처럼 가린다는 것은 성숙을 의미한다. 반대로 ‘가리다’에는 ‘보이거나 통하지 못하도록 막다’는 의미도 있다.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드러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잘 가린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적절히 구별하면서도 때때로 드러내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성숙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잘 가려야 하는 것은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율 자체가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가리는 일이다.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고 마음을 쓰냐에 따라 선행과 악행으로 나뉜다. 그렇지만 율장에서는 “누운 풀이 땅을 덮듯 그렇게 죄를 덮는다”는 ‘여초부지(如草覆地)’ 항목이 있고, ‘계초심학인문’의 “손님을 대해 이야기할 때 집안의 허물을 드러내지 말고, 다만 절집안의 불사를 찬탄할지어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잘잘못을 따져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 책임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드러내지 않을 것인지 기준은 오직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여법’함과 대중의 ‘화합’에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불광사가 다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모범적인 반야바라밀 신행공동체였던 불광사는 근래 여법과 화합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심각한 갈등과 폭언, 물불을 안 가리는 무모함이 난무하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지난해 5월 시작된 불광사 사태는 4개월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해 9월 불광사 창건주 지홍 스님, 광덕문도회 대표 지정 스님, 불광사 법주 지오 스님, 대각회 이사장 태원 스님, 박홍우 불광법회장이 상호간에 제기했던 고소고발 건을 취하하고 창건주직을 지정 스님에게 승계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불광법회 회장단은 입장문에서 “광덕 큰스님께서 주창하신 순수불교의 이념인 마하반야바라밀 사상과 불광운동의 정신을 바르게 되살리고 더욱 선양하여 불광사 도량이 모든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고 대한민국 전법과 호법의 중심도량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부처님 전에 발원하고 기도정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창건주 직위가 승계되기까지 한마음으로 애써주신 문장(門長) 지정 스님, 법주 지오 스님, 주지 본공 스님 등 문도 스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창건주 직위가 승계되어 불광사의 정상화가 시작됐다”는 불광법회측의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스런 시선들이 적지 않았다. 불광사 사태 배경으로 작용했던 문도스님들의 내부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을 뿐더러 신도들 사이에서 언제라도 회주나 주지스님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었다. 그럴 경우 또다시 단체행동, 사회법, 물리력이라는 비불교적인 해결 방식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불광사 창건주가 바뀐 지 꼭 1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엔 온갖 비난의 화살이 새로운 창건주 지정 스님을 향했다. “불광 형제들의 분열을 조장한다”며 창건주와 회주 직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물론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말들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심지어 창건주 스님이 사찰 공양주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충격적인 의혹까지 들고 나왔다. 공양주는 이 사실을 퍼트린 당사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스님은 물론 공양주 자신의 자식들까지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함으로써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해야 했다.

편집국장
이재형 편집국장

사찰에서도 따질 건 따지고 가릴 건 가려야 한다. 그러나 여법함과 화합을 등진 채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것은 갈등을 부추기고 공동체를 파괴할 뿐이다. ‘불조통기’에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오만함과 남을 경시하는 우월감으로 인해 아수라계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자기만 옳고 지혜롭다는 아상(我相)이 싸움판의 불씨라는 것이다. 불광사가 아수라장으로 전락하지 않는 길은 오직 문도스님과 신도들의 절대적인 하심과 참회에 달렸을 뿐이다.

mitra@beopbo.com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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