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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박영철의 ‘내 마음의 고향’(2016)

자신의 숲으로 향하는 동승의 발걸음

세 번 영화로 옮겨진 함세덕의 ‘동승’…문학작품 무난히 담아내
새 사냥·비둘기 덫 등 어머니 드릴 선물 위해 살생 계율도 어겨
엔딩은 도성이 주체적인 길을 나서는 내적 성장 의미 퇴색시켜

박영철의 ‘내 마음의 고향’은 원작과 인물 설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진은  영화 ‘내 마음의 고향’ 스틸컷.

영화와 문학은 늘 이웃하여 발전했다. 문학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는 관행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왔다. 문학 작품의 영화화는 두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원작을 충실하게 영화화하는 방식이며 둘째는 원작을 재해석하여 창조적으로 영화에 수용한다. 전자는 원작을 영상으로 번역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문학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창조적 재해석은 문학이 영화에 복무한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문학작품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무난한 선택을 한다. 함세덕의 ‘동승’(1939, 원제는 道念)은 세 번 영화로 옮겨졌으며 대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한 영화적 수용에 가깝다. 1949년 윤용규의 ‘마음의 고향’에서 시작하여 박영철의 ‘내 마음의 고향’에 이른다. 리메이크 된 작품은 ‘영화는 원작에 비해 아쉬우며 현재의 작품은 전작의 장점을 능가하지 못한다’라는 불문율이 있다. 박영철의 ‘내 마음의 고향’은 이와 같은 제작설을 충실히 입증한 영화에 속한다.  

함세덕의 ‘동승’은 금강산 여행에서 창작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함세덕은 인천상업학교 시절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금강산 천막 생활갔다가 마하연에서 본 사미승에서 얻은 환상’을 모티프로 희곡을 완성했다. 이 작품의 제작은 일제강점기였지만 시대의 분위기는 지워지고 동승이 어머니를 찾는 이야기를 때묻지 않은 정서와 절제된 대사로 풀어냈다. 

원작은 영화 ‘내 마음의 고향’에서 제법 변형되었다. 우선 원작에서 도념은 어머니가 봄보리 베고 나면 오실 것으로 믿고 있다. 영화에서 도성은 어머니 오는 날에 대해 푸념을 한다. 나무꾼은 키가 크면 올 것이며 이번 설에 오거나 내년 봄에 온다는 말로 미래에 언젠가는 어머니가 당도할 것으로 동승의 기대를 만들어준다. 희곡에서 동승은 어머니에 대한 만남을 기다림과 그리움의 절제된 기대로 설정되었지만 영화에서 도성은 약 지으러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조바심을 보인다. 이 부분은 인물 설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출생의 비밀도 차이가 있다. 동승의 출생 비밀은 희곡에서는 비구니와 사냥꾼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동승인 도념이다. 영화에서 주지스님은 서울 아씨에게 친척 조카처럼 절에서 키운 아이가 동승의 모친이며 그가 속계의 인물과 연을 맺어 도성을 낳고 절에 아이를 유기하고 떠났다고 이야기를 조금 비튼다. 또한 도념이 살생이라는 불가의 계율을 위반하는 이유와 대상도 차이가 있다. 희곡은 미망인이 목에 두른 하얀 목도리와 비슷한 토끼털 목도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도념은 토끼털 목도리를 만들어서 어머니가 찾아오면 선물하기 위해 살생의 계율을 어기게 된다. 영화 ‘내 마음의 고향’에서는 서울 아씨와 같은 털 부채를 만들기 위해 새총을 구해 새를 잡기위해 노력하거나 급기야 비둘기 덫을 놓는다. 이와 같은 살생의 악업으로 인해 도성(신재훈)은 서울 아씨에게 입양되어 공부하려는 꿈이 좌절된다. 

마지막 장면은 유사하지만 차이가 발견된다. 공통점은 도성은 절에서 떠난다는 설정이다. ‘마음의 고향’(1949)에서 도성이 길을 떠나는 장면은 익스트림 롱쇼트로 보여진다. ‘내 마음의 고향’에서는 숲길을 걸어서 하산하는 동승의 모습을 카메라가 포착한 다음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엔딩 된다. 희곡에서 도념이 길을 떠나는 장면은 고통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주제적 발걸음이라는 의미가 일반적 해석이다. 양승국은 ‘도념이 주체를 획득하여 성인 세계에 들어가기까지의 성격 변화’를 강조했으며, 서연호는 ‘진정한 깨달음을 위한 구도의 큰 길에 오르는’ 구도행에 방점을 찍었다. 필자는 ‘서울이 아닌 그 너머의 길이며 자신의 숲으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읽었다.  

‘내 마음의 고향’에서 도성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숲길에서 다소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것은 평지보다는 조금 쉽게 걸어 갈 수 있다. 임권택은 길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펼치고 담아냈다. 그는 ‘서편제’에서 동호가 집을 떠나는 장면의 오르막길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그가 오르막길로 떠나게 했다. 오르막길은 그의 미래가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만큼 힘겨운 삶이 펼쳐질 것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만다라’에서 법운과 지산의 만행길 앞에 첩첩산중의 능선을 인서트로 삽입한 것도 그들의 수행길이 첩첩산중을 헤치고 갈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내 마음의 고향’에서 도성이 가는 길에 스님이 인서트로 들어오는 것과 길을 떠나던 도성이 되돌아보는 순간 엔딩된 것은 도성이 스스로 주체적인 길을 나서는 내적 성장의 의미를 심각하게 퇴색시킨다. 이 부분은 원작의 의미를 위반하여 특별한 작가적 의도를 담아내려는 연출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실수에 가깝다. 이 영화는 전작 영화와 희곡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은 영화이므로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 이전 영화의 주제에 부합해야하는 당위에서 벗어나고 만다. 연기자의 표정과 대사가 일치하지 않거나 현대의 의복을 입고 원작시대의 대사를 읊조리며 컷과 컷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불편하지만 연출의 역량까지 언급하기에는 다소 조심스럽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도성이 내리막길을 가고 뒤돌아보는 것은 모호성의 함정에 빠뜨린다. 영화에서 예불 장면과 선문답 장면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다소 돌연해 보이는 것은 영화적 완성도의 공백과 영화적 독특함의 경계에 있다. 기존의 작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를 선택할 때는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장면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진지하게 탐독해도 친절한 연출 의도를 찾는 일이 난망하다. 문학과 불교는 모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화적 표현으로 예술과 종교의 의미와 맛을 소환해야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49호 / 2020년 8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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