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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젊은 날의 선택] 청암사율학승가대학원 학인 초결 스님

“내게 출가는 스스로를 알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죠”

군인 꿈꾸다 자퇴 후 직장서 만난 단골 손님 은사 불연까지 이어져
지형 스님 “중노릇 잘해라” 말씀 마음 닿아 청암사승가대학 선택
율장 의지해 살아가는, 대중 이끌어가는 목탁 같은 스님 되길 서원

초결 스님은 출가를 ‘여행’에 비유했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떠나는 여행 말이다.
초결 스님은 출가를 ‘여행’에 비유했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떠나는 여행 말이다.

“스님, 제가 요즘 불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차 한 잔 마시러 가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 오세요.”

마산 시내 한 의류매장에서 직원과 단골손님으로 만난 지 수년째. 평소 인사만 나눴던 손님에게 그날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은 네팔과 티베트 등으로 보낼 옷을 정기적으로 대량 구매하던 스님이었다. 처음 그 스님의 연락처를 받은 때만 해도 초결 스님은 자신이 출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릴적부터 군인을 꿈꿨던 초결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모대학 부사관과에 입학했다. 깔끔한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끌렸다. 군인이 되면 전국 어디서든 근무할 수 있어 여행을 좋아했던 초결 스님으로서는 꼭 해보고 싶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꿈꿔왔던 것과 달랐다. 획일화된 교육방식과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친구들은 많았지만 주변에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늘 마음 한편이 공허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길 1년.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퇴를 결심했다. 사회로 나와 외국계 의류매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4년을 보냈다. 여전히 나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그 무렵 마음을 나누던 사람은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식사를 하다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신심 깊었던 선생님은 졸업생 중에 스님이 있다며 함께 절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찾아간 경남 밀양의 한 작은 절에서 불연을 맺었다.

주지스님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삶에 대한 의구심들이 하나둘 해소됐다. 어떤 절대적 존재가 아닌 나를 믿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스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모든 것이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 일이 있고난 뒤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불교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도 싶었다. 쉬는 날마다 절을 찾아 일손을 돕고 불교공부도 시작했다. 스님으로부터 배운 경전의미는 새로웠다. 경전 구절 하나하나에서 감격이 밀려들어왔다. 쳇바퀴 돌듯 매장과 집을 오가며 지쳐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쉬는 날 만큼은 절에 가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지스님은 “‘주말 행자’ 말고 정식으로 출가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출가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터였다. 그러다 단골손님으로 매장을 찾던 스님이 떠올랐다.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던 손님 스님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연락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함안 용화사를 찾았다. 그리고 두 달 후, 머리를 깎고 초결(超潔)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직장에서 손님으로 만났던 스님이 은사가 돼주었다. 용화사에서의 진짜 행자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출가할 때까지도 ‘스님’이 뭔지 잘 몰랐다. 그냥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루하루 밥 먹고 사는 일이 다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체적인 삶,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내린 결단이었다.

행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용화사 대중은 주지스님과 공양주 보살이 전부였다. 대중이 적다보니 절 살림의 대부분 행자 몫이었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편했다. 신심도 생겨났고, 절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사회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늦게 하루일과를 시작하던 생활패턴을 ‘새벽형 인간’으로 개조하는 데 시련이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은사스님이 강조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의미를 새기고 또 새겼다.

“출가 전 ‘도’라고 하면 특별한 것 또는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가 후 보니 평상시 마음이 곧 ‘도’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가족에게 환영받으며 출가했다. 처음으로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은 날, 어머니의 반응이 잊히지 않는다.

“니가 무슨 스님이 되노. 스님은 아무나 되나.”

안된다며 통곡하고 붙잡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오기가 생겨 반드시 스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행자 생활을 할 때 딱 한 번 절에 찾아왔다. 또다시 머릿속에는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 기다릴게.” 이런 오글거리는 답을 기대했다. 역시 반전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이렇게 산골짜기에서 살아야 하는 거냐”는 큰언니와는 달리 어머니는 “어디서 뭘 하는지 늦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산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돼 좋네요. 초결 스님”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응원 덕분인지 행자교육을 무사히 마쳤다. 2016년 1월, 사미니계를 받고 청암사승가대학에 입학했다. 청암사승가대학과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왔다. 행자 교육 중 갈마 시간, 율원장 의정지형 스님의 “중 노릇 잘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이 어른스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스님이 됐으니 불교 학문만이 아닌 무엇보다 ‘스님의 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 있는 승가대학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승가도 크게 바뀌고 있었다. 그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을 이어가는 곳, 그 모든 것을 갖춘 곳이 청암사승가대학이라 여겨졌다.

“처음 출가할 때 당연히 절에서는 스마트폰을 못 쓸 줄 알고 2G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청암사승가대학은 제가 출가하기 한참 전부터 대부분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스마트불교대학이더라구요.”

승가대학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은 사회에서의 4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갔다. 30명이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잠자는 대방 생활이 힘들다는 생각 한 번 들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치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떠나는 여행 말이다.

공양간에서의 시간은 특히 좋았다. 출가해서 아궁이에 불 때는 것을 처음 배웠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타닥타닥 불을 피워 밥을 하고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 후 다 함께 공양할 때 “부처님 제자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시대에 ‘쿠쿠 밥’이 아닌 ‘가마솥 밥’이 어울리지 않지만 아날로그 방식을 짓는 ‘가마솥 밥’은 맛이 일품이었다. 공양간 향기, 장작, 구수한 밥 냄새, 고약한 연기까지도 출가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밥맛이다.

성우 스님을 계사로 2020년 구족계를 수지한 후 고민 없이 바로 율학승가대학원에 입학했다. 율장이 기초가 돼야 수행생활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다.

“수십 년 전부터 청암사를 일구고 후학들을 위해 한길만을 걸어온 청암사 어른스님을 보며 저도 그 길을 가겠다는 서원을 세웠어요.”

후배가 생기면서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 늘었다. 청암사승가대학 소식을 전하는 ‘청암’지 편집위원으로 매 계절 소식지를 만든다. 최근 개설한 유튜브 채널 ‘청암사tv’의 콘텐츠 관리도 담당하게 됐다. 도반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기에 더욱 신명나는 일이다. 앞으로 ‘청암사tv’를 통해 사찰과 스님들의 일상 그리고 불교이야기를 대중들에게 꾸준히 공개할 계획이다.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더욱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들을 준비 중이다. 아직 배울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지금의 날들이 초결 스님에겐 너무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도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고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며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金 更無時節)’을 마음에 되새기며 현재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 노릇 잘 하는’, 부처님 가르침과 율장에 의지해 살아가는, 동시에 대중을 이끌어가는 목탁이 되길 서원한다는 초결 스님은 “지금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스승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신분이지만 언젠간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결 스님은 망설임 없이 한 발짝씩 내딛는 발걸음에 집중하면서 ‘지금 여기’를 누리고 있다.

김천=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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