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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코뿔소

인간 탐욕 견디고 강인한 삶 살아가

홀로 깨달음 추구하는 연각불
외롭고 고난한 수행자 삶 비유
멸종 앞둔 야생동물 밀렵하고
섭취하는 것이 가장 큰 비린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경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다. 이 문장의 ‘무소’가 바로 코뿔소이다. 뿔이 하나인 인도 코뿔소(Rhinoceros unicornis)의 우리말이 무소이다. 단어가 비슷해 ‘물소’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무소는 아프리카 코뿔소와 다르게 철갑 같은 단단한 피부를 가졌다고 해서 철갑 코뿔소, 뿔이 하나여서 일각(一角) 혹은 외뿔 코뿔소라고도 불린다. 흔히 TV를 통해 보는 코뿔소는 큰 뿔 하나 위에 작은 뿔이 달려 두 개의 뿔을 갖는 아프리카 코뿔소이다. 외뿔인 인도 코뿔소가 보기 드문 이유는 1990년대에 거의 멸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멸종위기 등급 ‘취약(VU, Vulnerable)’ 종으로 지정되면서 현재 인도정부의 지원 하에 아쌈주 카지란가(Kaziranga) 국립공원에서 약 2400마리 정도의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다.

뿔이 두 개인 아프리카 코뿔소는 집단생활을 하며, 뿔이 하나인 인도 코뿔소는 독립적 습성을 지녔다. 고대문명인 인더스에서 코뿔소 인장(印章)이 다수 발굴되는 것을 보면, 무소는 부처님 재세시에도 북인도 전역에 고르게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소의 뿔은 ‘숫타니파타’ 중에서 ‘칵가위사나경(Khaggavisāna Sutta, 犀角經)’에 나오는 말이다. 아난다가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연각불(緣覺佛)에 대해 묻자 부처님이 답변하신 내용이다. 연각은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기에 독각(獨覺)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외롭고 고난한 수행자의 삶을 나타낸다. “성숙한 벗, 현명한 도반을 만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충고한다. 성숙하고 현명한 친구를 만나 고난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오히려 어리석은 자를 만나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으니 홀로 정진해 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쓰라린 충고가 담겨있다.

붓다는 홀로 독하게 깨달음을 추구하는 연각불을 외톨이로 살아가면서도 강하고 용맹스러운 코뿔소로 비유한다. 호랑이 외에 거의 천적이 없는 인도 코뿔소가 멸종 직전까지 간 것은 코뿔소 뿔인 ‘서각(犀角)’이 무기와 약재로 사용되면서 부터다. 물이 잘 묻지 않고 단단한 뿔은 단도(單刀)의 손잡이, 장식품 등으로 만들어지거나, 가루로 가공되어 발열, 통풍, 식중독 치료를 위한 약, 정력제, 숙취해소제로 사용되었다. 현재 인도 코뿔소는 정부가 보호하고 있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코뿔소들은 암시장에서 뿔의 가격이 금보다 비싸게 형성되어 희귀 멸종동물임에도 속수무책으로 살육당하고 있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호랑이 뼈와 함께 대표적인 한약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간 속설에 항암작용이 있다고까지 알려지면서 수요가 급증했지만 코뿔소 뿔은 실제 뿔이 아니라 손톱 같은 케라틴 성분으로 이루어진 각질층에 불과하다. 또한 뿔처럼 수요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세계 전역의 야생동물 시장과 레스토랑에서 코뿔소 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숫타니파타’에는 한 바라문이 승려가 고기를 먹는 것을 비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가섭불(迦葉佛)은 ‘비린내(āmagandh)’는 짐승의 고기나 생선의 살에서 나는 냄새라고 생각하지만, 냄새나는 일로 마음이 더러워지고 불쾌한 악취를 내뿜는 행위가 비린내라고 답한다.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고, 구타하고, 자르고, 결박하는 것(pāṇātipāto vadhachedabandhana ṃ)”과 같은 고의적인 학대가 비린내 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멸종을 앞둔 야생동물을 잔인하게 밀렵하고 이를 보신용으로 섭취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린내 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코끼리 다음으로 거대한 육상동물 코뿔소는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거의 모든 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붓다의 눈에는 들판을 홀로 거니는 용맹스러운 생명체로 비추어졌던 코뿔소는 인간의 더 할 수 없는 탐욕에 의해 더 외롭고 강인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佛眼見惟佛)’는 무학대사의 말은 코뿔소를 보고 연각불을 떠올린 부처님의 시선을 생각나게 한다.

김진영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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