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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린카의 오케스트라 작품

기자명 김준희

음악이 주는 마음 치유 능력 ‘의왕’ 연상시켜

환상적 내용과 경쾌한 멜로디로 지루한 일상에 생기 불러
작품 배경·내용 몰라도 듣는 것만으로 힐링되는 음악의 힘
음악은 감정을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치유 역할 가능

국보 제314호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화엄경’에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을 의왕(醫王)에 비유한 내용이 나온다. 

“마치 뛰어난 의술을 지닌 어떤 의왕이 병자를 보기만 해도 모든 병이 치유되듯이, 비록 죽을 목숨이지만 몸에 약을 발라, 그 몸의 작용을 병이 있기 전과 같이 하네. 가장 뛰어난 의왕 역시 이와 같아, 모든 방편과 일체지를 구족하여, 예전의 묘행(妙行)으로 부처의 몸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보기만 해도 중생들의 번뇌가 없어지네.(‘대방광불화엄경’ 여래출현품1)”

훌륭한 의사가 의술로써 환자를 치료하듯, 부처님은 번뇌에 빠진 사람들을 방편과 지혜로 치료하셨다. 환자의 병이나 그 상태의 경중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처럼 부처님의 설법도 듣는 이의 상황과 수준에 맞추어 적절한 비유를 통해 따라 달라졌다. 부처님의 방편과 지혜의 가르침을 음악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힘에 빗대어 보고자 한다.

음악의 정의는 다양하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 음악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그만큼 여러 관점에서 향유된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1942-)은 그의 책 ‘치유의 음악’에서 페루치오 부조니가 말한 ‘음악이란 공기의 울림이다(aria sonora)’라는 정의를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음악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무한성을 담고 있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어떤 내용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보다 우선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극한다. 감정은 기분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짧고 강렬하고 무의식적인 신체의 반응을 동반하기도 한다. 즉 음악은 감정을 일으키는 존재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치유, 즉 ‘힐링’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힐링은 단순히 울적함을 달래주거나 쓸쓸함을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아름다운 소리의 집합체’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한 치유는 단순히 느린 템포의 고요한 곡을 감상하여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작품으로 감정을 환기 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음악은 우리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신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음악이 우리의 일상에 관여하게 되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수많은 치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래 음악치료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을 격려하기 위해 병원에서 개최한 음악회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음악이 환자들의 회복과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을 알게 된 의료진이 음악가들과 협업하여 환자들의 치료에 음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음악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글린카의 동상.

러시아의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는 서유럽에 이름을 알린 거의 최초의 러시아 작곡가이다. 민족주의적인 음악을 바탕으로 했던 그는 서유럽 중심의 음악에서 탈피하여 러시아 고유의 음악 어법을 기반으로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는 1828년 즈음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접하고 러시아어로 된 오페라를 창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의 태동이었다. 

러시아 민담과 전설을 바탕으로 쓴 그의 두 번째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1837년에서 1842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푸시킨의 풍자시를 오페라로 만든 것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 화려한 장면들이 등장하며 시종일관 신비롭고 환상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은 오페라보다 더 유명하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 덕분에 음악회에서 독립적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거센 바람을 가르며 러시아의 눈 덮인 평야를 신나게 달리는 말이 연상되는 듯한 빠른 템포의 예리한 선율은 러시아의 민속적인 색채와 함께 글린카의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담고 있다. 난관을 극복하고 류드밀라와의 사랑을 이루는 루슬란의 테마는 리드미컬한 도입부에 이어지는 첼로의 선율이다. 호방한 분위기의 선율은 용감한 루슬란의 모습을 나타내며,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류드밀라를 납치한 악마의 선율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음악으로 손색이 없다.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배경이나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        

음악학자 겸 물리학자 존 파웰은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에서 “마음의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며 할당되기를 기다리는 여분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린카의 이 작품은 활력과 생기를 주며 음악이 주는 마음의 치유를 가능하게 하여, 그 여분의 관심을 담당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매우 적합하다. 글린카는 러시아적인 요소들을 세련된 방법으로 관현악곡에 녹여냈다. 1844년 파리에서 베를리오즈의 관현악에서 받은 색채적인 효과가 주는 감동을 경험하고 자신의 관현악곡을 발전시켰고, 이것은 러시아 5인조라 불리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글린카의 스페인 춤곡 2번 ‘여름밤 마드리드의 추억’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러시아 정취를 가진 모든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국적인 정취가 담겨진 곡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받은 인상을 옮긴 것으로 스페인의 민속 춤곡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각 곡들은 스페인 고유의 민속 리듬을 바탕으로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즐거운 느낌의 선율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부담 없이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들이다. 스페인의 카스틸리아 지방의 민속 선율인 호타, 세기딜랴 등의 춤곡 등은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탬버린, 팀파니 같은 악기과 함께 밝고 관능적인 정서를 나타내며 전체적으로 후기 인상주의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는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음악으로 글린카의 관현악 작품을 택해보자. 부처님이 방편과 일체지로 우리에게 훌륭한 의사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수치를 높여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유쾌한 음악적 치료를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음악의 자비로운 힘을 느껴보는 봄날이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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