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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기자명 박사

내 안의 또 다른 나 생각하는 시간

두 본성의 분리 연구한 주인공
나와 싸운다면 영원히 지게 돼
실상 못 보면 ‘나’란 실체 믿어
실상 볼 때 평화로운 세상 만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내적인 갈등을 겪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한쪽 어깨에 악마가, 또 한쪽 어깨에 천사가 앉아 귀에 속살대는 것을 상상한다. 천사가 눈을 반짝이며 바른 소리를 할 때 악마는 음험한 목소리로 유혹하고, 대부분 유혹에 넘어간 ‘나’는 내 잘못이 아니야, 쟤 때문이야, 라며 화살표 꼬리를 가진 악마를 가리킨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부처님은 그 ‘나’가 누구인지 묻는다. 부처님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생각의 목소리가 드글거리지만 그 어느 것도 나라고 할 수는 없다. 행동은 있지만 그 행동을 하는 ‘나’라는 주체를 찾기는 어렵다.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는 ‘잡아함경’의 말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내 안에 있는 두 인격체를 분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때때로 자신의 속에서 낯선 자신을 감지한다. 술 취해서 자기가 했다는 짓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도 하고, 전날 밤 옛 애인에게 왜 문자를 보냈을까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내 안의 한 생각은 내 소심함에 분개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은 내 욕망을 힘겨워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지킬박사는 탄탄대로를 걸어온 성공한 남자다. 부잣집에서 헌칠한 외모를 갖고 태어난 데다 똑똑하고 성취욕도 강해 거칠 것이 없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쾌락을 탐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병적인 수치심으로 덮고 살아가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 인간은 결국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각기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두 본성을 분리하는 연구에 착수한다.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이들 모순되는 한 쌍이 함께 묶였다는 것은, 고뇌하는 의식이라는 자궁 속에 이렇게 극과 극인 쌍둥이가 계속 갈등하며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라고. 그는 자신이 해결책을 찾았다고 믿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의 결말은 그의 시도가 비극적으로 끝났음을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이렇다.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

‘던져버리려’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킬과 하이드의 공존은 한동안은 순탄했으나, 순수하게 악으로 이루어진 하이드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지킬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폭주하는 하이드는 점점 더 약의 도움 없이도 변신하여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시 지킬로 돌아올 수 있는 약은 더 이상 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킬은 병들었고 하이드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누가 지고 누가 이긴 것일까? 나와 싸운다면, 나는 영원히 질 수밖에 없다. 

내 안의 수많은 나로 인한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사람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열광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썼고, 마블코믹스에서는 ‘헐크’를 냈다.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비유에 동원되었다. 인간을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단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자기 안의 전쟁을 치러내야 했다. 이 책은 그 분열된 인격에 이름을 붙여준 셈이었다. 

나라고 하는 굳건한 실체가 있다는 믿음은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부처님이 진작 말씀하셨지만 ‘나’의 강렬한 존재감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때, 우리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난다. 하이드가 없다면 지킬은 누구와 싸울 것인가. 내가 없다면 어디에 타인이 있을 것인가.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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