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란 명칭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를 떠올리게 한다. 600여년 동안 유지됐다고는 하나 그 역사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적힌 고작 몇 줄이 전부. 일본 역사서에 단편적인 기록이 전해지곤 있으나 잃어버린 가야사를 찾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김해 불모산 장유사 근처에서 새로운 절터가 확인됐다. 창건기록에 따르면 장유사는 48년 장유 스님이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다. 새 절터에선 통일신라 유물도 함께 출토돼 가야불교 전승 과정을 밝힐 단서가 될 것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 스님)와 김해시(시장 허성곤)는 4월1일 “김해 불모산 용지봉 아래 대청동 절터에서 통일신라 산지가람을 확인했다”며 “절터에서 길이 약 40m의 석축과 기단 2기, 초석을 포함한 건물지 2동이 통일신라 유물(선문기와·토기)과 함께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찰 대지는 두 줄기 계곡물이 합쳐지는 곳에 큰 돌로 2단 축대를 쌓아 마련됐다. 상단 건물지를 중심으로 하단에도 여러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이후로는 하단을 중심으로 사역이 축소돼 운영됐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불교문화재연구소의 분석이다.
특히 확인된 절터 위치가 장유사와 1.4km 거리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 8대손인 김질왕이 시조모 허왕후의 명복을 빌고자 452년 왕후사를 창건했고…이 절이 생긴 지 500년 후에 같은 자리에 장유사가 세워지면서 왕후사터는 장유사의 헛간과 마굿간으로 바뀌게 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가락국 제8대 질지왕(知王)이 세웠다는 장유 스님 사리탑(문화재자료 제31호)도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당시 장유암에는 300결의 전지가 있었는데 왕후사가 장유사 경계 내에 있어 이 절을 폐하고 장사로 삼아 이곳을 헛간과 마굿간으로 바뀌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번에 확인된 대청동 절터가 현재 장유사 동남쪽에 있어 위치로나 시기로나 장유사와 관계가 깊어보인다”면서 “절터에선 통일신라 가람과 관련된 유물도 다수 확인돼 김해 불모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야불교 전승을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해당 절터(대청동 산69-11번지)는 4월2일 오후1시30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