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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62칙 조횡고파(趙橫高坡)

상식에서 벗어난 답변은 분별을 깨뜨리는 명약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우주·인생 묻는 것과 같아
여타 문답과 다른 선문답 매력 
고정적 상식 초월한 안목 제시

승이 영주 조횡산의 유화상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유화상이 말했다. “평지인데 높은 언덕이 보인다.”

영주(郢州) 조횡산(趙橫山)의 유화상(柔和尚)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선문답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공안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정해진 것이 없다. 동일한 질문이라고 해도 답변은 동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질문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답변자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답변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공안은 각자의 삶과 사유에 따른 모습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같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인생이나 동일한 인생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바로 자기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부류와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바로 선문답이 여타의 문답과 차별되는 매력이기도 하다.

승은 자신이 수행을 통해서 깨침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의 궁극을 부처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질문하는 승은 단순히 부처라는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라는 개념에 대처하기 위한 납자의 자세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유화상은 그와 같은 승에게는 이제 개념에 따른 부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줄 필요가 있음을 파악하고 나서 말했다. 마치 망망대해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는 평지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언덕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평지라면 언덕이 있을 수 없고 언덕이라면 평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바로 그와 같은 상식을 초월하는 안목을 부여함으로써 상식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안목으로는 부처가 무엇인지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문답이 상식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문답은 항상 상식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문답이면서도 그 상식에 매몰되지 않고 초월할 것을 강조한다.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지난한 정진을 요구하는 것이 선문답에 임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유화상은 평지에서 높은 언덕을 보고 있다. 그것은 공간을 초월한 안목이다. 그리고 평지라든가 언덕이라든가 하는 분별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같은 안목으로 보면 한겨울의 살풍경을 마주하고도 이미 따뜻한 봄날과 같은 시절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고 환희하는 경우와 같다. 이처럼 한 겨울에 여름을 보고 가을을 보는 것은 시간의 분별을 초월한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공간까지도 아울러 초극되어 있다. 때문에 좌선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들판을 보고 하늘을 보며 달라지는 계절을 보고 갖가지 감각을 넘나드는 경지를 맛본다. 이런 경지에서는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벌써 부처란 무엇이라고 말해주어도 오답(誤答)일 수가 없고, 제아무리 명쾌한 경전의 말씀을 들먹인다고 해도 정답(正答)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즉시(卽時)와 즉간(卽間)에 동시와 동간으로 행해지는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면 언제나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답변이 정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결국 우주란 무엇인가 그 속에 깃들어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것을 평지와 언덕을 대비시킨 답변으로 승화시킨 유화상의 답변은 자유롭고 무애한 선기를 노출시켜주고 있는 모습이다. 굳이 평지와 높은 언덕을 들지 않더라도 땅과 하늘이라든가 남자와 여자라든가 일체의 반대의 개념을 언급해서 일러주는 것이 가장 효과 만점의 답변이 된다. 그것은 일반 중생의 상식적인 안목으로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비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안목을 갖추고 보는 사람에게는 평지와 높은 언덕이 언제까지나 고정적인 현상일 수가 없기에 유화상은 끝없이 유동적으로 사유하는 납자의 자세를 짐짓 요구하고 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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