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이 법안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법안이 말했다. “그대가 바로 혜초이다.”법안은 법안종(法眼宗)의 개조인 법안문익(法眼文益, 淸凉文益: 885~928)이다. 법안은 속성은 노(魯)씨로서 절강성 여항(余杭) 출신이다. 장경혜릉(長慶慧稜)을 참문하였고, 후에 나한계침(羅漢桂琛 : 867~928)을 참문하여 그 법을 이었다.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가장 근원적이고, 또한 납자가 반드시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달리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참공안(本參公案)과 통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승이
앙산이 땅에 가래를 꽂은 이야기가 있다.본 문답은 위앙종(潙仰宗)의 개조인 위산과 앙산 사이에 있었던 문답이 그 주제이다.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이 대위산(大潙山) 영우(靈祐: 771~853) 문하에서 직세(直歲)로 있었다. 직세는 선원에서 요사를 수리하고, 도량을 관리하며, 인부나 공사를 감독하는 직무에 해당하는데, 본래는 일 년 동안 직무를 담당한다는 의미였다.어느 날 앙산이 작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위산이 물었다. “어디에 다녀오는가.” “밭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던가.” 앙산
승이 풍혈에게 물었다. “깨침[道]이란 무엇입니까.” 풍혈이 말했다. “오봉루 앞에 있다.” 승이 물었다. “그러면 깨친 사람[道中人]은 무엇입니까.” 풍혈이 말했다. “성황사(城隍使)에게 물어보라.”풍혈은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로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30)의 법맥을 이은 임제종 제4세이다. 본 문답은 지극히 고상한 것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음을 에둘러 일러주고 있다. 깨침[道]은 수행하는 납자들에게는 궁극의 목표이다. 평생을 바쳐서 깨치려는 수행은 깨침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그것을 임의대로 활용하려는 욕구이
승이 운문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법신구(法身句)를 초월하겠습니까.” 운문이 말했다. “북두칠성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운문은 운문종의 개조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으로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의 법사이다. 본 문답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아직 깨치지 못한 납자의 입장에서 법신구를 추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묻고 있는 향상(向上)의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깨침을 경험한 선지식의 입장에서 법신구의 양태와 그 활용에 대한 방법을 묻고 있는 향하(向下)의 측면이다.전자의 경우에 법신구를 터득
승이 양주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삼이 서 근이다.”양주동산(襄州洞山)은 수초종혜(守初宗慧: 910~990)로서 운문종의 선사이다. 본 문답은 가장 일반적 법거량(法擧量)의 유형에 속한다. 납승이 묻고 선지식이 답변하고 있는 경우가 그렇고, 또한 더 이상 왜 그런지 따지며 왈가왈부 않는 것이 그러하며, 언뜻 보기에 질문과 동떨어진 동문서답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 까닭은 이 문답에 대한 전후의 배경지식 내지 선문답에 대한 상식이 없는 경우에는 수수께끼와도 같이 전혀 얼토당토 않는 내용으로 이루
유서화상이 어느 날 종을 걷어놓고 상당하였다. 대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유서가 말했다. “도대체 누가 종을 쳤는가.” 승이 말했다. “유나가 쳤습니다.” 유서가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승이 가까이 다가오자, 유서가 갑자기 때려주었다. 그러더니 설법을 그만두고 방장실로 돌아가서 누워버렸다.유서화상은 유서도유(幽棲道幽)인데 동산양개의 법사이다. 상당(上堂)은 공식적으로 설법을 하기 위해 설법당에 올라가 법좌에 앉는 것을 말한다. 유나(維那)는 선원에서 대중의 기강과 규율을 담당하는 소임이다. 사찰에서 법회를 알리는 신호로 종을
국사가 어느 날 “시자야!”라고 불렀다. 그러자 시자가 “예”라고 답했다.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불렀는데, 세 차례 모두 “예”라고 답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를 무시했다고 말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대가 나를 저버릴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국사는 남양혜충(南陽慧忠 : ?~775)이고, 시자는 탐원응진(耽源應眞)이다. 스승이 부르면 제자가 답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스승이 몇 번을 불러도 제자는 여전히 ‘예’ 하고 답변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본 문답에서는 세 번에 걸친 동일한 문답이 시설되어
승이 동산에게 물었다. “죽은 스님은 천화한 후에 어디로 갔습니까.” 동산이 말했다. “화장한 이후에는 한 줄기 띠풀[一莖茆]이 되었다.”일찍이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의 제자인 장사경잠(長沙景岑)이 망승(亡僧)을 앞에 두고 손으로 주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대중들이여, 이 승은 진실을 터득함으로써 그대들을 위해 깨침의 강령을 보여주었다. 알겠는가.”본 공안은 장사경잠의 이 공안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문답상량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는 중국 조동종의 개조인데, 행지면밀(行持綿密)하고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승이 장경에게 물었다. “어떻게 수행하면 의심이 없는 경지를 얻습니까.” 장경이 두 손을 펼쳐보였다.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은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 문하이다. 승이 질문한 의심이 없고 의혹이 없는 경지는 번뇌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의심은 번뇌의 일종이다. 그래서 의심을 초월한 경지는 그대로 깨침이다. 발심을 하고 수행을 하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연과 인생과 불법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이 없는 경지를 터득하는 것은 모든 납자의 소망이다. 그것은 시주의 은혜를 갚는 것이고 선지식에 보은하는 것이며 불보살의 의
승이 흥화에게 물었다. “군기(軍旗)가 다급한 경우에는 어찌해야 합니까.” 흥화가 말했다. “매일 반 근의 밥을 먹으면 그만이다.”흥화존장(興化存奘)은 임제의 법을 잇고, 동문인 삼성혜연(三聖慧然)을 참문하기도 하였다. 후에 위부(魏府)의 흥화사(興化寺)에 주석하였다. 군기(軍旗)가 다급하다는 것은 가장 급선무를 의미한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납자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초발심으로 출가하던 때를 잊지 않고 출가의 본분사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터득하고 불조의 혜명(慧命)을 계승
덕산화상이 어느 날 상당하여 말했다. “질문하면 곧 허물이 있고, 질문하지 않으면 또한 어그러진다.” 승이 나와서 예배를 하자마자, 덕산이 갑자기 때려주었다. 승이 말했다. “제 이야기는 아직 질문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저를 때리는 것입니까.” 덕산이 말했다. “그대가 입을 연다고 해서 무엇을 감당하겠는가.”덕산선감(德山宣鑒 : 780-865)의 시호는 견성대사(見性大師)인데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는 말처럼 교화수단으로 방(棒)을 활용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공안에서 문답은 수단이면서 수단으로 그치지
설봉은 동산의 문하에서 전좌로 있었다. 쌀을 일고 있는데, 동산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골라내는가, 쌀을 일어 모래를 골라내는가.” 설봉이 말했다. “모래와 쌀을 동시에 골라냅니다.” 동산이 말했다. “그러면 대중은 뭘 먹겠는가.” 이에 설봉은 쌀을 일고 있던 동이를 엎어버렸다. 동산이 말했다. “옳기는 옳다만, 반드시 이후에 다른 사람을 친견해야만 할 것이다.” 과연 이후에 설봉은 덕산의 법을 이었다.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은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에게 인가를 받고 그 법을 이었다. 문답에서 동산은
승이 정주문수 화상에게 물었다. “만법이 일법으로 돌아가면 그 일법은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문수가 말했다. “황하는 아홉 번을 돌아 흐른다.”정주문수는 운문종의 선사로서 정주(鼎州) 문수산(文殊山) 응진(應眞)이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용어는 차별적인 일체만법이 순수한 평등일미의 이체(理體)로 귀입한다는 뜻이다. 평등일미의 이체란 마음[心]이기도 하고, 진여(眞如)이기도 하며, 자기[我]이기도 하고, 깨침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질문의 요체는 다만 그 하나[一]에 해당하는 평등일미는 과연 어디로 귀입
역촌화상이 어느 날 차를 달이고 있노라니, 승이 물었다. “조사서래의란 무엇입니까.” 역촌화상이 차시(茶匙)를 들어보였다. 승이 말했다. “그 차시가 바로 조사서래의라는 것입니까.” 역촌화상이 차시를 화로의 불속에 던져버렸다.양주역촌(襄州歷村) 화상은 남악회양의 제6대 후손으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법사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중국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대표적인 선문답에 속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제를 들어 선문답으로 활용하고 있는 승의 안목이 기대된다. 역시나 그에
승이 백장에게 물었다. “기특한 수행이란 어떤 것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대웅봉에서 홀로 좌선하는 것이다.”백장은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이다. 기특(奇特)이란 기묘특별(奇妙特別) 내지 기특현묘(奇特玄妙)의 줄임말이다. 대단히 드물고 뛰어난 모습이다. 그래서 기특한 수행[奇特事]이란 불가사의하고 심원하며 미묘한 수행의 모습을 의미한다. 본 문답에서 승이 질문한 기특한 수행이란 바로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은 수행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승이 생각하고 있는 기특이란 보통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대양명안 화상이 양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무상도량(無相道場)입니까.” 양산이 관음보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오처사(吳處士)가 그린 것이다.” 대양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양산이 갑자기 입막음을 하고 말했다. “저것은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형상이 없는 것은 어떤 것인가.” 대양이 언하에 깨쳤다. 이에 예배를 드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거기에 서 있으니, 양산이 물었다. “어째서 일구도 말하지 않는가.” 대양이 말했다. “말씀드리는 것은 사양하지 않겠지만, 그 말이 지묵에 오를까 저어됩니다.” 양산이 껄껄 웃
승이 익주의 숭복지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걸림이 없이 확 트인 말씀입니까.” 숭복지 화상이 말했다. “혀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숭복지 선사는 숭복원지(崇福院志)로서 익주(益州)의 숭복원(崇福院)의 연교지(演敎志)를 가리킨다. 그 법계는 약산유엄-선자덕성–협산선회-반룡가문–숭복원지이다.본 문답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란 언설로 성취되어 있지만 일체를 포함하고 있는 법어를 가리킨다. 본래 선수행에서 언설이란 불립문자로 일종의 수단과 방편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언설이 그처럼 단순한 기능만 하는
승이 길주의 자복여보 화상에게 물었다. “고인의 노래란 무엇입니까.” 자복은 원상을 그려보임으로써 그 질문에 응대하였다.길주(吉州)의 자복여보(資福如寶) 선사는 위앙종의 제4세인 서탑광목(西塔光穆)의 법을 이었다. 선문답에는 음악과 관련한 주제가 더러 등장한다. 그 음악은 흔히 목소리를 통하여 뱉어내는 노랫가락 내지 악기를 통하여 연주해내는 음률이 주를 형성하고 있다. 고인의 노래는 고인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다. 노래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듯이 선지식의 훌륭한 가르침은 납자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이다. 그
승이 황련화상에게 물었다. “음성이 발생하기 이전의 일구란 무엇입니까.” 황련이 말했다. “음성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니 음성이 발생한 이후의 문제를 들고 오너라.”황련(黃連)은 황련의초(黃連義初)인데, 오대 위앙종의 조사인 남탑광용의 제자로서 광동성 소주 황련산 출신이다. 본 선문답의 주제인 음성이 발생하기 이전의 일구에 해당하는 말이란 성전일구(聲前一句)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음성[聲]은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다. 삼세의 제불이 출세하여 설법을 내놓기 이전의 상황으로서 설법으로 출현한 가르침에 해당하는 일
승이 화산에게 물었다. “즉심즉불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비심비불이란 무엇입니까.” 화산이 말했다. “북은 칠 줄 아는구나.”화산은 화산무은(禾山無殷, 884~960)으로 구봉도건(九峰道虔)의 법을 이었다. 여기에서 타고(打皷)는 대중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하여 치는 북을 말한다. 본 문답은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그와 관련된 답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즉심즉불이라는 말의 뜻은 평상심[心]에 계합하면[卽] 곧[卽] 부처이다[佛] 정도로 풀이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