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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80칙 문수구곡(文殊九曲)

만법은 만법일 뿐이고 일법은 일법일 뿐

만법과 일법은 각각 독존적이라
상대적 관계 설정땐 수수께끼 돼
일법이 만법의 귀착지가 아니고
만법은 일법의 근원지가 아니다

승이 정주문수 화상에게 물었다. “만법이 일법으로 돌아가면 그 일법은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문수가 말했다. “황하는 아홉 번을 돌아 흐른다.”

정주문수는 운문종의 선사로서 정주(鼎州) 문수산(文殊山) 응진(應眞)이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용어는 차별적인 일체만법이 순수한 평등일미의 이체(理體)로 귀입한다는 뜻이다. 평등일미의 이체란 마음[心]이기도 하고, 진여(眞如)이기도 하며, 자기[我]이기도 하고, 깨침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질문의 요체는 다만 그 하나[一]에 해당하는 평등일미는 과연 어디로 귀입하는 것인가를 묻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 자신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으로, 본참화두(本參話頭)에 해당한다. 본참화두란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가리킨다. 그래서 수행하는 납자라면 반드시 궁구해야 하는 일대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누구나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서 소위 일물(一物)이기도 하다.

만법귀일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문답은 한 승과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사이에 제기된 선문답으로부터 널리 전승되어 왔다. ‘유마경’에서는 몸[身]의 근본은 탐욕이고, 탐욕의 근본은 허망분별이며, 허망분별의 근본은 전도몽상(顚倒夢想)이고, 전도몽상의 근본은 무주(無住)이며, 무주의 근본은 없는데 그 무주가 근본이 되어 일체법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무주란 집착이 없는 것으로 소위 공(空)을 말한다.

승은 요컨대 일체법은 무주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가지고 질문하고 있다. 정주문수 화상의 답변은 지극히 유려하고 세련되게 제시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황하구곡(黃河九曲)이다. 황하는 찰릉호(札陵湖)에서 모인 물이 악릉호(顎陵湖)를 거쳐 흐르면서 발원한다. 그로부터 동쪽을 향해 굽이굽이 돌아치면서 끝내 바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류와 합쳐진다. 만법과 일법의 관계에 대하여 황하구곡이라고 답변한 것은 소위 수류득묘(隨流得妙)의 이치를 일러준 것이다. 수류득묘란 강물이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면서도 양 언덕에 닿지도 않고 물속의 암초에 부딪힘도 없이 자유자재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의미한다. 곧 혼란한 가운데 들어있으면서도 그에 휩쓸리지 않고 초월자재한 묘용을 발휘하는 것이다.

만법이 일법으로 돌아가는 경우만 해도 그러할진댄, 하물며 일법이 돌아가는 모습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주문수 화상의 답변은 반대로 일법이 돌아가야 할 곳은 명백하다. 다름이 아니라 일법은 만법으로 돌아간다. 만법이 아니고 어디로 돌아가겠느냐는 것이다. 본 문답에서 만법과 일법을 상대적인 관계로 설정해서 궁구한다면 끝내 수수께끼와 같이 되어버리고 만다. 만법과 일법은 만법의 일법이고 일법의 만법이지만 만법은 그대로 만법일 뿐이고 일법은 그대로 일법일 뿐이다. 만법과 일법은 각각 독존적이다. 그래서 만법이 일법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일법이 만법의 귀착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만법이 일법의 근원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일법은 만법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황하가 바다에 도달한 이후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다와 합쳐져서 바다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바다도 황하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바다가 황하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달리 바다가 황하로 돌아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황하와 바다를 별개의 관계로 이해한다든가 상대적인 관계로 간주해서는 황하와 바다는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한다. 만법과 일법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제 승은 일법이 만법으로부터 흘러나왔다면 만법은 어디로부터 흘러나왔다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질문에 대하여 이제 정주문수 화상의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는가. 역시 명백하게 황하구곡이라고 답변하지 않으면 달리 뭐라고 말하겠는가.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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