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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제73칙 화산타고(禾山打皷)

북을 치라는 말은 자기를 점검하라는 가르침

즉심즉불과 비심비불 질문은
의미는 다르지만 의도는 같아
궁극적 목표를 제대로 안다면 
하등 차이 없는 줄 알고 있어야

승이 화산에게 물었다. “즉심즉불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비심비불이란 무엇입니까.” 화산이 말했다. “북은 칠 줄 아는구나.”

화산은 화산무은(禾山無殷, 884~960)으로 구봉도건(九峰道虔)의 법을 이었다. 여기에서 타고(打皷)는 대중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하여 치는 북을 말한다. 본 문답은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그와 관련된 답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즉심즉불이라는 말의 뜻은 평상심[心]에 계합하면[卽] 곧[卽] 부처이다[佛] 정도로 풀이된다. 반드시 평상심 이를테면 청정한 본래심에 계합되는 경우에 국한하여 그것을 부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달리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도 하고, 심즉시불(心卽是佛) 내지 불즉시심(佛卽是心)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당대 말기에는 이미 선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회자되는 말로서 소위 조사선(祖師禪)의 기치를 잘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개념에 속하는데 마조도일의 사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한편 마조도일은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는 말을 활용하여 납자들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는데 즉심즉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상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기의 문답에서 승은 이미 즉심즉불과 비심비불이라는 두 가지 용어에 대하여 익숙하게 들어왔던 까닭에 후자의 용어를 꼬집어서 화산에게 질문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보면 두 가지 용어의 의미는 전혀 상대적인 경우에 속하여 즉심즉불은 일체를 긍정하는 측면이고, 비심비불은 일체를 부정하는 측면이다. 그러나 두 가지 용어가 의도하고 있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어떤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하여 즉심즉불이라고 답변해주는 경우는 질문한 상대가 단견(斷見) 내지 허무(虛無) 등의 견해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해당한다. 반대로 비심비불이라고 답변해주는 경우는 상견(常見) 내지 아만(我慢) 등의 견해에 빠져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본 문답에서 승은 즉심즉불의 경우는 차치하고 비심비불이라는 경우에 국한하여 질문하고 있다. 그렇게 질문하는 자체가 이미 승은 분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답변으로 설명해준다고 해도 본전도 찾지 못하고 만다. 화산은 바로 그 점을 감파(勘破)하고 있었다.

이에 화산은 직접적으로 답변해주기보다는 질문하고 있는 승의 깜냥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한마디를 일러준다. ‘그대는 제법 북은 칠 줄 알고 있구나[解打皷]’. 이 말은 소위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사에 대해서만 미주알고주알 혓바닥을 놀려 함부로 나발을 불어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해준 말이다. 즉심즉불이라든가 비심비불이라든가 하는 그러한 자기의 지식자랑일랑 그만두고 어디 북이라도 칠 줄 안다면 북이나 한번 쳐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질문의 의미에 맞는 답변이 아니라 질문하고 있는 승의 수준에 꼭 맞는 답변에 속한다. 이런 점이야말로 곧바로 승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지를 점검해보라는 가르침에 속한다.

그러나 화산의 의도대로 그 점을 제대로 수용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승 자신에게 달려 있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북을 치는 시늉이라도 보여준다면 화산이 답변해준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것에 해당하겠지만, 아직도 어리둥절하여 망설이거나 아예 다른 질문을 들이밀어 자신에게 흡족한 답변을 추구한다면 화산의 의도와는 아직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다시 돌아가서 정진을 계속해야 한다.

정작 즉심즉불과 비심비불이 의도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라면 양자의 말에 하등의 차이가 없는 줄도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화산처럼 질문하는 상대를 알고, 질문하는 의도를 이해하며, 답변할 줄 알고, 답변이 초래하는 결과를 이해하는 선지식을 가리켜서 작가(作家)라고 일컬었던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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