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보통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다. 그러나 SF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무엇을 SF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읽으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SF와 ‘-nal(-적인)’의 합성어인 [SFnal]은 굳이 번역하자면 “SF적인”일 것이나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탁월한 SF전문편집자가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두루 훑어보고 뽑아낸 작품으로 한 권을 엮었다. 거장과 신예가 뒤섞이고, 갖가지 세계가 펼쳐진다. 기발하고 참신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넘치는가 하면 바로 지금 현재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쌍둥이처럼 흡사한 사건이 펼쳐져 소름 돋게 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오직 SF적이라는 것.
그중 한 편만 들여다보자. S.L.황의 ‘내 마지막 기억 삼아’는 근미래의,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나라다. 과거에 그들은 전쟁에서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 “한순간에 건물과 아이들, 병원, 포로들, 무고한 민간인 수백만 명과 수백 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예 도시 하나를 통째로 증발시켜버리는 무기”다. 이후 사람들은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주 엄격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교단’의 ‘장로’들이 그 절차를 마련했다.
그것은 한 아이의 심장에 무기의 암호를 묻어두는 것이다. 무기를 사용하려면 대통령이 아이 심장을 칼로 직접 갈라 죽여야 한다. 그 이전에 아이는 대통령을 수행하며 대통령과 얼굴을 익히고 대화를 나눌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이마는 장로들이 자신에게 당부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너는 대통령과 대화를 해야 해. 일부가 되는 거다, 그 사람들의 정신에서, 그들의 삶에서.” 그것은 나이마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 한 명을 죽이는 것은 집무실에서 버튼을 눌러 먼 곳의 아이들을 무수히 죽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하도록 하는 장치다. 얼굴을 알고, 대화를 나누고, 애정을 느낀 사람을 직접 찔러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세상의 무수한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게 한다. 눈앞의 아이의 고통은 이역만리의 아이의 고통과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무기를 발사하는 버튼을 누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통령은 알 필요가 있다. 나이마는 온 몸으로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부처님은 고통을 성스러운 진리의 첫 번째로 내세우셨다. 우리는 부처님이 고통을 없애는 법에 집중하셨다고 알고 있지만, 고통을 그저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면 핵심가르침인 “고집멸도”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고통은 단순히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열반으로 가는 입구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성스럽다.
내 고통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상상하게 한다. 자비의 근본은 “모든 사람들은 나처럼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은 나처럼 행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상상이 우리 모두를 연결한다. 작고, 겁먹고, 시를 잘 쓰고, 눈물과 웃음을 가지고 있는 눈앞의 아이를 죽일 수 없다면 이역만리 떨어진 이름 모를 아이도 죽일 수 없다. 이 엄혹한 통과의례는 “타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했는가?”를 묻는 질문의 과정이다.
SF소설의 핵심을 보통 기발한 과학적 상상에서 찾지만, 읽다보면 작가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발한 과학적 상상은 말하고 싶어 하는 바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일 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그것이 누구를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작가들은 묻는다. 결국 우리 모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닮았다. 고통이 서로 닮았듯이.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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