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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정희 정권의 봉은사 땅 강탈

기자명 이병두

‘선거자금’ 급했던 정권실세의 강압적 매매계약

‘상공부청사 신축’ 이유 내세웠지만 속내는 비자금 조성
“동국대 옆 공무원연수원 사게 해 주겠다”며 불교계 회유
약속과 달리 한전에 매각…강남부동산 열풍의 씨앗 심어

토지 소유자가 봉은사로 명시된 1970년 당시 토지 등기부 등본.
토지 소유자가 봉은사로 명시된 1970년 당시 토지 등기부 등본.
봉은사 토지 매매계약서 1(매수자 윤태진) 출처=조계종 중앙기록관.
봉은사 토지 매매계약서 1(매수자 윤태진) 출처=조계종 중앙기록관.

공화당 정권이 ‘대통령 3선 연임금지 조항’을 풀어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가능케 한 개헌안을 1969년 9월14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고 10월17일 국민투표에서 확정한 지 네 달도 안 된 1970년 2월8일,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당시 제호 ‘대한불교’)에 ‘침묵은 범죄다-봉은사가 팔린다’라는 칼럼이 실렸다. “지금 총무원 측이 획책하고 있는 구상대로라면, 봉은사 소유의 임야 및 대지 13만평 중에 그 6분의 5가 팔리고 나머지 6분의 1이 고작 도량으로서 존속될 모양이다.”

글쓴이는 당시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며 경전 번역 불사에 매진하던 30대 후반의 젊은 승려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글 속에 깊은 울림’을 담아내는 수필과 사회활동으로 불교계 밖에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이었다. 스님은 얼마 뒤 같은 신문에 쓴 ‘봄한테는 미안하지만’에서 “주지스님이 불의 앞에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대중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으며 수업을 마다하고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고 가는 학생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격려가 이어져 “한국불교의 장래는 그래도 비관적일 수만은 없다”고 여겼었다고 한다. 그러다 3월20일 갑자기 “총무원 간부와 봉은사 주지가 뜻을 같이해 모임을 열고, 원만히 해결되었다”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행정 책임자의 이런 ‘미묘한 과정’을 거쳐 삼보재산이 팔리는가 싶다”는 법정 스님의 언급에서 그 과정에 피하기 어려운 압력이 개입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스님의 글이 총무원을 질책하는 것 같았지만, 잘 살펴보면 당시 총무원 집행부와 봉은사가 정부의 강요를 받아 억지로 끌려들어가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장면이 그려진다.
 

봉은사 토지 매매계약서 2(매수자 서영철).
봉은사 토지 매매계약서 2(매수자 서영철).

스님은 총무원의 “불교회관을 살 자금이 필요해서”라고 둘러댐에 대해서도 “불교회관을 사기위해 한국불교 재건의 터전인 봉은사 경내지를 팔아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유휴재산을 처분하여 봉은사에다 우리 분수에 맞는 회관을 세웠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고 오늘 우리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봉은사 땅 빼앗기를 추진하며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상공부청사 신축’이었다. ‘수출입국(輸出立國)’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대통령에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말에 익숙했던 시절이었고, 머리를 빗으며 빠진 머리카락까지 쓸어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해 달러를 벌던 때였다. 그러니 총무원에서도 통치이념에 가까운 ‘수출입국’을 주도하는 상공부 청사 신축이라는 명분에 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에서 “불교회관이 필요하다면서 돈이 없지 않으냐? 마침 동국대학교 옆 공무원연수원을 이전할 계획인데, 봉은사 땅을 정부에 팔면 그 돈으로 이 건물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총무원 집행부에게 미끼를 내놓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런 ‘미끼와 당근’만 아니라 무서운 압력이 있었으리라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대사가 아니었던가.

앞에서 1969년 3선 개헌 강행을 언급하였지만, 막상 재출마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해도 1년 앞으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박정희가 야당 후보를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중앙정보부와 경찰을 비롯한 정보기관, 중앙과 지방의 행정 공무원과 초중고 교사들을 선거에 동원하는 관권선거를 하려면 막대한 선거자금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완공과 영동대교 착공‧제2 영동지구 사업’ 추진 발표 등으로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하던 강남에 십수만 평에 이르는 봉은사 소유지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고, 이를 활용한 비자금 조성 논의가 정권 실세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당시 상공부가 작성한 ‘상공부 산하 주택조합 대지 해결방안’에 따르면, 1970년 1월 상공부장관(이낙선)의 땅 매입요청을 받아 서울시장이 도시계획과장(윤진우)에게 ‘극비리 추진’을 지시했으며 며칠 뒤 윤태진이라는 사람과 조계종 총무원이 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서울의 도시계획 수립과 추진에서 중요 역할을 한 서울시 전도시개발국장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윤태진은 윤진우가 사업 추진을 위해 사용한 가명이다.
 

봉은사 땅 강탈에 앞장선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
봉은사 땅 강탈에 앞장선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서울시장 김현옥이 앞장서고, 불교계를 조종하고 달래는 일은 중앙정보부와 이후락 등 정권 실세로 있던 불교계 인사들이 맡았다. (이후락은 대통령비서실장에서 물러나 주일본대사로 잠시 근무하다 1970년 1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다.) “정권실세 중앙정보부장이 조계종 내부회의에 참석, 처분동의서에 직접 서명하는 등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에 대하여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사들의 증언이 절실하다.

정권이 봉은사 땅 빼앗기를 추진하며 서두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에서 보듯 당시 등기부에 땅 소유자가 봉은사라고 명기되어 있었지만 매매계약서에는 봉은사 주지가 아니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대표 원장 이청담’이 매도자로 되어 있고 매도자 봉은사 직인이 찍혀야 할 자리에 총무원 직인이 찍혀 있다. 따라서 설사 정부에서 “봉은사 땅을 강탈한 것이 아니고 정당하게 매매계약을 체결해 매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이 계약은 무효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땅 매매계약서가 둘인데, 하나는 매도자 ‘총무원장 월산’과 매입자 ‘윤태진’으로, 다른 하나는 ‘조계종 총무원 대표 청담’과 ‘종합청사 건설위원회 위원장 서영철’ 사이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계약을 맺은 윤태진이 윤진우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이를 알게 된 뒤 급하게 청사건설위원회와 다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난다. 정권이 비자금 조성을 위해 쫓기듯 서둘렀고 이 과정에서 종단을 농락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가 ‘수출입국’을 내세우며 ‘상공부 청사 신축’을 명분으로 이 땅을 수용했지만 십수 년이 지난 뒤 일부 토지에 한국전력 사옥을 지어 정부가 내세웠던 이유와 목적에 부합했을 뿐, 강제 수용한 토지 대부분에 막대한 개발 이익을 더하여 민간 기업에 파는 ‘땅장사’에 앞장서 강남 부동산 광풍의 씨앗을 뿌렸다. (‘토지수용법’에 규정된 ‘환매(還買) 권리’ 조항에 따라 봉은사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땅을 되살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도 전혀 없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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