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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끼시는 부처님께서 ‘이제 그만하라’ 깨우쳐 주시는구나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포교사단장상 - 김은연

가까운 지인에 사기 당한 후 원만·분노 휩싸여 지옥 같은  날들 반복
건강 나빠져 수술대 오른 후 삼독서 벗어나라는 부처님 가피임을 알아
참회 눈물 흘리며 수행 정진으로 번뇌 벗어나 진여자성 깨닫길 발원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없이 내 머리를 맴도는 나쁜 생각과 말들, 달라이라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꽃을 생각하라 했던가?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1년 전 나는 이렇게도 나 자신을 지독히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정하고 능력 있는 의사 남편을 두었고, 바르고 공부 잘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일찍이 불법을 알아 아주 부유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2년 전 남편이 병원 개원 준비로 마케팅회사를 알아보던 중 큰아이 친구 엄마가 자신의 조리원 동기 중 마케팅하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했다. 마케팅경력도 화려하고 개원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조언해 주고 싶다니 꼭 만나볼 것을 재촉했다. 그렇지 않아도 막막하던 차에 고마운 생각이 들어 어떤 분인지 만나보기로 했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하루에도 몇 개의 병원이 망했다 사라졌다 하니 마케팅이 정말 중요하다며 꼭 힘이 되어주겠단다. 나는 이 사람이면 우리병원 마케팅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짐짓 정했던 삭막한 마케팅회사 말고 우리를 조금이라도 걱정해주는 이 사람과 일을 하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병원 개원 한달 전에 열기로 되어있던 홈페이지가 개원 날에도 열리지 않았고, 나머지 마케팅도 일정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점점 불안했다. 마케팅회사 중에 사기 치고 돈 떼먹는 곳이 많다던데 그런 곳은 아닐까? 이 사람에게 계속 마케팅을 맡겨도 될까? 황금 같은 시간이 흘러가니 애만 탔다. 진행을 요구해도 시간만 끌고 해주지 않으니 화가 났다. 남은 두 달간의 마케팅비를 환불해 달라고 요구했다. 환불해주기로 했지만 돌아가서는 더 이상 연락도 없었다.

속은 내가 어리석었다. 환불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 큰아이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나를 나쁘다고 했다. ‘당신이 만나라고 한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치고 돈도 주지 않고 연락도 없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싶었지만 사이가 나빠지기 싫어 아무 내색 없이 속만 썩이며 참던 중인데, 자기 친구에게 함부로 했다고 나에게 도리어 따진다. 같은 동네 살면서 3년간 나를 봐 왔으면서, 사기꾼이랑 어울리고 사기꾼 말만 믿고 나에게 어떻게…. 너무 큰 배신감이었다.

‘어떻게 나에게 저럴 수가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그가 나에게 나쁘다 했던 장면으로 돌아간다.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나쁜 말들을 친구에게 퍼붓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수천 번 그 기억을 되새기며 욕을 하고 또 욕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뇌와 망상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이 지옥이구나. 불법과 인연을 맺은지 15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이제야 번뇌와 망상, 원수를 만나는 고통, 지금 이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다라니 사경을 하고, 참회문 독경을 하고, 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아미타부처님을 찾았다. 번뇌 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염불을 했지만, 염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번뇌가 시작됐다. 사경을 하면서도 계속 일어났다. 아, 벗어날 수 없구나….

밥을 먹으려면 구역질부터 나왔고, 억지로 먹고는 곧장 화장실을 가야 했다. 6개월간 몸무게가 10kg 빠졌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CT를 찍으니 난소에 6cm 혹이 있단다.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고 기뻤다. 나를 아끼시는 부처님이 이제 나에게 그만하라고 하시는구나,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탐진치 삼독을 끊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 그만하라 일러주는 것 같았다. 이 혹을 떼어 내면 나의 번뇌도 함께 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은 난생처음이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수술은 잘 되었고 호르몬 치료도 필요 없었다. 너무나도 마음이 가벼웠다. 나를 아끼는 부처님의 가피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부처님은 나에게 무엇을 얘기하시는 것일까? 

하심하며, 검소하게 불법공부를 즐기고 행복해하는 기특한 불제자에게 번뇌 망상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어떻게 해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망했던 그들은 나의 원수가 아니고 나를 깨닫게 하는 스승이었다.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였다. 

부처님 가피에 환희하며 3일 밤낮을 부처님만 생각하던 그 순간, 머리의 눈도 아니고 마음의 눈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우주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우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나이고 내가 우주였다. 무한히 광활한 우주에 나의 미움과 원망이 2개의 티끌 먼지로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가 우주인 것을, 너무도 큰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아직 유리와 같아 언제든지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언제든지 번뇌 망상으로 괴로워하고 분별심으로 너와 나를 가르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렇게 나에게 큰 인연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다.

번뇌망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 때 나는 사경과 독경, 염불로 벗어나려 했지만 2600년 전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러셨듯, 선정만으로는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2년 전 대광명사의 목종 스님과 함께 ‘대열반경’을 공부할 당시 수업 시작 30분 동안 목종 스님은 “눈을 감고, 어제 아침부터 오늘 수업에 앉아있기까지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살펴보라”고 하셨다. 늘 변하는 내 몸과 마음은 진정한 내가 아니고, 내 몸과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보는 주인공을 알면 그것이 곧 ‘진여자성’이라 하셨다. 

아무래도 이것이 그 해답인 것 같았다.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수업마다 하는 그 참선이 너무 따분해 일부러 끝날 때쯤 수업에 들어갔었다. 어떻게 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던 중 지인을 따라 혜원정사에서 정초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불법을 만난지 오래지만, 기도는 처음이었다. 복락보다는 불법을 알고 싶어 만난 부처님이었기에 기도나 예불은 늘 나의 관심 밖이었다. 코로나와 번뇌 망상으로 1년간 뵙지 못했던 부처님을 뵈었다.

법당에 자리가 없어 법당 바깥에 깔아 놓은 멍석에서 기도했다. 추위에 귀와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좋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부처님이 좋았고, 하심하지 못하고 삼독심을 일으켰던 나를 참회하기 좋았다. 지난 1년 내가 말과 행동과 뜻으로 지었던 업이 눈물을 타고 내려왔다.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나도 당신이 가신 길을 가겠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압니다. 당신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도록 해 주세요.’

혜원정사에서의 기도로 나의 발심은 더 확고해졌다. 코로나로 중단됐던 대광명사의 공부도 다시 문을 열었다. 이번 학기에는 ‘육조단경’과 ‘화엄경’을 공부한다. ‘대열반경’ ‘전등록’은 공부를 해봐서 안다. 목종 스님은 오늘 수업에서도 진여자성을 얘기하실 것이다. 늘 똑같은 법문만 한다고 푸념하던 어제의 나는 없다. 어렵던 공부가 이제는 제법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음에 와닿는다.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20대 중반 늘기쁜마을 복지사로 근무하며 보성 큰스님의 법어집을 보고 환희하며 불법에 귀의했다. 복지관에 있는 책을 이것저것 읽으며 불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남편과 결혼할 즈음, 시댁의 반대가 너무 심해 고민 끝에 늘기쁜마을의 대표로 계신 지현 스님을 찾아가 어찌할지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 다 내려놓고 매일 아침 시댁 부모님을 향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삼배를 하라고 시키셨다. 반신반의했지만, 평소 존경하는 스님이기에 시키는 대로, 진심으로 삼배를 했다. 그렇게 하길 50일쯤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변했다.

그전에는 점집을 돌아다니며 사주팔자와 궁합을 보았고 결혼하게 되면 아들이 병을 얻고 곧 이혼한다며 반대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조계종 여래사불교대학에 등록해서 공부하시더니, 이제 점집도 안 가고 마음을 내려놓으셨다는 것이다. ‘아, 이것이 불교구나. 내가 바뀌어야 하고 미움이 아닌 이해와 사랑의 기운이 전달될 때 변화되는 거구나.’ 경이로운 불법에 더욱 푹 빠졌다.

그 뒤로도 나는 매일 퇴근 후, 복지관 법당의 관세음보살을 뵙고 ‘부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만큼 살 수 있게 해주셔서,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복지관을 퇴사하고도, 지현 스님 밑에서 2년간 ‘내 운명을 바꾸는 길’ 공부를 했다. 내 운명은 내가 선업을 지음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선근의 공덕을 믿게 되었고 항상 바르고 어질게, 또 자비롭게 살 것을 다짐했다. 

그러다 이사를 해 관음사에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다. 많이 아쉬워하다 시어머님이 다니고 계신 여래사불교대학의 박동범 원장님 추천으로 대광명사의 목종 스님을 뵙게 된 것이다. 

“내 몸과 내 마음이 내가 아닌 것을 알고, 진여자성을 찾아라. 집착하고 욕망하는 이 세상은 다 허상이니 괴로워하고 즐거움에 끌려갈 필요가 없다. 진여자성을 알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다.” 

지현 스님과는 사뭇 달랐지만 3년간 꾸준히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며 부처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집착했던 내 몸, 내 마음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꾸준히 공덕을 쌓으면 그것이 시절 인연을 만나 꽃피울 때가 있음을 안다.

나는 이제 그 인연이 오고 있음을 안다. 내 안의 불성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을 안다. 온갖 번뇌와 고통의 비바람을 맞고 이제 꽃피울 때만 남았다는 것을. 하지만 급하지 않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이제껏 좋은 스승을 만났듯 인연이 되면 그 꽃이 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지현 스님과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다. 내 안의 아미타부처님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원허 스님과 기도한다. 교만하지 않고 하심하게 해달라고. 나는 오늘도 목종 스님과 참선한다. 진여자성을 찾게 해달라고. 하나가 될 때까지….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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