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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원숭이 - 중

진실‧진리‧결단‧보시로 위기 넘겨

원숭이·악어·토끼·거북이로
주인공 바뀌지만 같은 맥락
얻음·상실, 은혜·배신 통해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 담아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토끼전’은 용왕을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는 거북이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거북이가 아니라 자라가 주인공이다. 자라를 뜻하는 한자가 별(鼈)이므로 ‘별주부전(鼈主簿傳)’, 토끼가 주인공일 때는 ‘토생원전(兎生員傳)’이라고 한다. 꾀 많은 토끼가 자신의 간이 육지에 있다고 속여 위기를 모면한다는 우화인데, 이는 불전설화인 용원(龍猿)설화에 근거한다. 용(龍)은 용왕이고 원(猿)은 원숭이로 보지만, 인도문화권에서 용은 악어를 뜻하기 때문에 ‘악어와 원숭이’ 이야기로 풀이한다. 

인도의 용원설화는 부처님의 본생담(本生譚) 세 부분에 등장한다. ‘바나린다 자따까(Vānarinda- jātaka)’  ‘숨수마라 자따까(Suṃsumāra-jātaka)’ ‘바나라 자따까(Vānara-Jātaka)’ 등이다. 이는 차례대로 ‘원왕본생(猿王本生)’ ‘악본생(鰐本生)’ ‘원본생(猿本生)’으로 한역된다. 세 자따까 모두 부처님이 데바닷따(Devadatta)가 자신을 죽이려 시도한 것이 처음이 아니며 과거에도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숭이는 선의를 베풀어 악어와 친구가 되지만 악어가 우정을 배신하고 원숭이는 지략으로 곤경을 극복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거의 동일하다. 

자따까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므로, ‘바나라 자따까’를 간략히 소개한다. 부처님은 전생에 인도 바라나시에 원숭이로 태어났다. 원숭이는 갠지스 강 근처에 사는 악어와 친구로 지내게 된다. 어느 날 악어의 부인이 남편에게 원숭이 염통을 먹고 싶다고 간청한다. 남편 악어는 아내에게 원숭이를 잡아다 주기로 결심하고, 달콤한 과일을 먹으러 섬으로 가자며 친구를 꾀게 된다. 등에 원숭이를 태우고 가던 악어는 강이 깊어지자 원숭이를 데려가는 진짜 이유를 알려준다. 원숭이는 악어에게 자신과 나누어 먹던 무화과 열매를 이야기하며 그 나무에 염통을 두고 왔으니 돌아가자고 침착하게 말한다. 악어는 원숭이를 태워 되돌아가지만 뭍에 도착한 원숭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린다. 원숭이는 악어에게 위력적인 신체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지혜를 갖고 있다며 그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자따까의 서사구조는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미후(獼猴, 원숭이)와 자라[鼈]의 이야기로, 장사를 하던 형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외모가 출중한 형제가 장사를 하러 곳곳을 다니다가 한 나라의 국왕을 만난다. 왕은 동생을 맘에 들어 하며 공주와의 결혼을 주선한다. 동생이 형에게 결혼문제를 상의하자 형은 국왕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간다. 왕은 형의 당당한 용모와 단정한 말씨를 보고 갑자기 형을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말한다. 형은 인간의 왕이 금수(禽獸)와 같은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생을 데리고 왕국을 떠나버린다. 이때 공주는 형을 원망하며 귀신이 되어서도 형의 간을 씹어 먹겠다고 울부짖는다. 몇 차례의 윤회를 거쳐 형은 원숭이로 태어나고, 동생과 공주는 자라부부로 환생한다. 그리고 자라부인이 원숭이의 간을 남편에게 요구하면서 동일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중국문화에서 원숭이의 상대가 악어에서 자라로, 원숭이의 염통이 간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곤경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슬기를 모아 극복하는 원숭이의 지혜가 돋보인다. ‘바나린다 자따까’의 이야기 끝에 악어가 원숭이의 덕을 게송으로 찬미하는 부분이 있다. 악어는 원숭이가 진실(sacca), 진리(dhamma), 결단(dhitī), 보시(cāga) 등의 네 가지 미덕을 갖춘 존재이기에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면서 원숭이의 꾀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칭송한다. 악어는 원숭이의 천적이지만 원숭이는 자신의 소중한 무화과 열매를 나눠 주며 우정을 쌓았던 친구이다. 인도우화집 ‘빤짜딴뜨라(Pañcatantra)’에도 은혜를 베푼 원숭이와 이를 배신하는 악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장(章) 제목이 ‘얻음의 상실(Labdha Pranasam)’이다. 친구를 얻고 잃는, 소중한 것을 획득하고 상실하는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는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담은 동물우화로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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