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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원숭이 - 하

남을 이롭게 해야 올바른 리더

불공정할 때 분노 표하는 원숭이
집단생활 위계질서 유지하면서도
의사결정에선 다수결 선택 선호
약자에 상냥한 ‘섬김의 리더십’도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 강한 분노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동물로 원숭이를 소개한다. 인지 동물행동학에서도 원숭이는 새끼들을 가르치기 위해 새끼들이 자신을 보고 있을 때는 치실질을 평소보다 두 배 정성스럽게 했다. 지나간 행위에 실수를 깨닫고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원숭이는 집단생활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서로 타협하고 다수결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두머리의 독재가 아니라 지도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수렴하고 다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폭압적인 리더십을 보인 원숭이는 3개월 내에 쿠데타로 무너지고, 암컷과 약자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보여주는 원숭이를 우두머리로 선택하는 추세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에서 ‘까삐 자따까(Kapi-Jātaka)’는 어떤 리더가 무리를 이끄는 것이 옳은지를 원숭이 이야기로 보여준다. 이 자따까는 원숭이 한 무리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면서 완전히 다른 운명을 살게 되는 우화다. 왕실 정원에 1000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왕의 사제가 목욕하러 지나가던 관문 위에 원숭이 한 마리가 놀고 있었는데, 이 원숭이는 지나가는 사제 머리 위에 익살스럽게 배변을 한다. 놀란 사제가 위를 보자 그 입에 또 배변을 하며 즐거워한다. 분노한 사제는 원숭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숭이 왕은 분노한 적 근처에서 사는 것은 위험하니 바로 떠나야 한다고 원숭이들에게 말한다. 무리의 절반이 그를 따라 길을 나섰지만, 나머지 절반은 익살스러운 원숭이를 따라 그대로 머물렀다. 

한편 궁중의 한 시녀가 쌀을 훔쳐 먹은 염소를 횃불로 쫓다가 불이 옮겨 붙어 근처 코끼리 축사로 번진다. 불길은 잡았지만 왕의 코끼리들은 이미 등에 큰 화상을 입은 후였다. 코끼리를 치료할 방법이 없자 왕은 바라문 사제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원숭이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바라문은 화상치료제로 원숭이 기름이 최고라고 조언한다. 왕은 궁수들에게 정원의 모든 원숭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원숭이 한 마리가 부처님 전생의 원숭이 왕을 찾아가 모든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원숭이가 바로 데바닷따(Devadatta)의 전생으로, 어리석고 자만하는 자가 리더가 되면 무리를 나쁜 길로 인도한다는 교훈을 준다. 

자따까 끝부분에서는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는 지계(持戒, sīla), 지혜(智慧, paññā), 배움(suta, 聞) 등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게송으로 전한다. 이는 화려한 언변, 재치 있는 유머, 강력한 권력을 갖춘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매혹되어 무조건 추종할 것이 아니라 내적인 덕목을 갖춘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모를 때 어떤 이를 따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맛지마 니까야의 ‘에수까리경(Esukārī-sutta)’에서는 선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부처님은 에수까리 바라문에게 “어떤 사람을 따를 때, 그를 따름으로써 믿음(saddhā)이 증장하고, 지계(sīla)가 증장하고, 배움(suta)이 증장하고, 보시 혹은 관대함(cāga)이 증장하고, 지혜(paññā)가 증장한다면 그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올바른 리더를 선택하는 기준은 지도자에게 종속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성립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따까에 나오는 익살스럽고 반항적인 원숭이는 스스로 적을 만들고 적과 가까이 하며 가까운 이들을 다치게 만들었다. 반대로 무리를 이끌고 왕의 정원을 떠난 원숭이 왕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에 취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태도인 사섭법(四攝法) 중에 ‘남을 이롭게 하는 이행섭(利行攝)’의 대표적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따랐을 때 내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확히 분별해 지도자의 됨됨이를 평가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 자신도 선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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