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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70칙 파초법신(芭蕉法身)

모든 질문이 투법신구 향하지만 그 자체는 아니야

언설은 실제 아닌 개념의 껍데기
유마의 불이법문도 다르지 않아
파초혜청은 승 마음 꿰뚫어 보고
단도직입 일침으로 답변을 대신

승이 파초혜청 화상에게 물었다. “법신이 언구를 벗어나[透法身句]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파초가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질문하지 않을 수도 없다.” 승이 말했다.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파초가 말했다. “세 번째 찾아오면 그대한테 보여주겠다.”

파초혜청은 당나라 시대 위앙종의 인물로서 신라 출신이다. 법신의 개념에 대해서는 어떤 말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하는 것은 그 개념과 별도에 속한다. 유마힐은 비야리성에 머물면서 허깨비의 색신을 빌려서 병에 걸렸음을 보여주었다. 영취산에 있던 부처님이 32명의 보살을 보내서 그를 문병하였다. 유마힐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통해서 투법신구(透法身句)에 대하여 낱낱의 보살들을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문수사리가 무언(無言)‧무설(無說)‧무시(無示)‧무식(無識)의 방식으로 일체의 문답을 벗어난 상태에서 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만수실리가 다시 물었지만, 유마힐은 침묵으로 대응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마의 묵빈대처(默擯對處)로 알려진 불이법문의 내용이다. 승이 질문한 것은 32명의 보살이 질문한 것에 해당한다. 그 낱낱에 대하여 언설을 통해서 말하자면 모든 것이 사리(事理)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지만 어느 것도 사리에 딱히 부합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질문이 투법신구를 향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결코 투법신구 그 자체는 아니다. 언설은 실제가 아닌 개념의 껍데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질문으로 제기된 투법신구란 그와 같은 법신의 개념을 벗어나 현실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법신은 깨침에 해당한다. 깨침이라는 언구마저 초월해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파초혜청은 승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고 그러한 개념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주는 것은 또 다른 분별로서 머리에다 다시 머리를 얹어주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일침을 가하는 답변으로 대신하였다. 승은 이와 같은 파초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답변하는 말의 의미도 모르겠고, 또한 그렇게 답변하는 화상의 의도에 대해서도 도통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파초는 의당 그럴 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승이 진정으로 법신을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한다는 정성을 기울인다면 끝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로 ‘세 번째 찾아오면 그대한테 보여주겠다’고 일러주었다. 이미 이 답변에는 승이 질문한 진실한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지속적으로 질문하려는 승의 자세뿐만 아니라 승 자신이 답변으로 제시된 말의 의미와 답변을 제시한 파초의 의도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줄을 파악하고 있는 그것이 법신에 대한 자각의 길이기 때문이다.

승은 정작 자신이 질문을 해놓고 그에 대한 답변을 모르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첫 번째 질문이면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지는 근거이다. 파초가 보여준 ‘질문할 수 도 없다’는 것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곧 어떤 질문을 해도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질문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질문으로도 가능하다. 다만 그 경우에 행여나 어떤 모로든지 받게 되는 답변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에 상응하는 답변이 아니라, 이미 질문을 제기한 승 자신의 속마음을 표출시켜준 답변임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세 번째까지 찾아와서 질문할 줄 안다면 그 경우에는 질문과 답변이 더 이상 문답으로서 질문이 아니고 문답으로서 답변이 아니라 질문하러 찾아오기 이전에 질문하려고 마음먹은 것을 확인하는 행위를 보여준 것에 해당한다. 그 상황에서 파초의 답변은 한낱 형식적인 답변일 뿐이고, 정작 질문하는 승 자신의 답변만이 제시될 뿐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92호 / 2021년 7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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