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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기자명 박사

우리는 결코 철저히 혼자일수 없다

자신은 철저히 혼자란 생각에
받은 상처 복수하겠다는 괴물
극단적 고립 경험키 어렵기에
모두 연결된 것 자각도 어려워

‘프랑켄슈타인’

외로움은 모든 병의 근원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법을 모르는 사람도 다른 존재들과 단절된 채 살 수는 없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가족이, 친구가, 동료가 없는 이들은 물기 없는 나무처럼 꼬들꼬들 말라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들 또한 나처럼 외로우며 아픈 이들이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이름이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이의 이름이다. 태어나자마자 무책임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버려져 간신히 생존하며 혼자서 말과 글과 감정을 배워야 했던 괴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머리와 고결한 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흉측한 외모는 모든 이들에게 공포와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친절은 공격으로 돌아온다. 어느 누구와도 애정을 나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는 점점 더 악마가 되어간다. 그는 말한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그가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와 내민 마지막 대안은 동족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서로의 추함을 넘어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그런 존재를 만들어준다면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 있다. 그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기도 하다. 사랑할 사람을 만들어 달라,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해 달라. 

그러나 그의 제안은 가차 없이 거절당한다.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만든 그 남자는 어느 누구보다 괴물을 가장 혐오하고 증오한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바로 그 외모 때문에 괴물을 경멸한다. 괴물은 분노한다. “인간이 나를 경멸로 대하는데 내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가? 상처가 아니라 친절을 서로 나누며 나와 함께 살아간다면, 나도 그렇게 받아들여준 은혜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감각은 우리의 공존을 가로막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그렇다고 비굴한 노예의 굴종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를 복수로 돌려줄 테다.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공포의 근원이 될 테다.”

복수심에 불타는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주위를 보이지 않게 돌며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차례차례 죽인다. 누구보다 괴로워하며. 그는 마음깊이 “그 어떤 존재든 내게 선의와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백배 천배로 갚아줄 것이다.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전 인류와 화해를 맺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한 사람이 없다. 딱 한 사람이.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극단적인 고립과 외로움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어렵다.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렵다. 마치 공기처럼. 매일 숨 쉬어야 하면 오히려 그 고마움을 모르는 법. 그러기에 그렇듯 빈번할 것이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고 배척하는 일.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 제멋대로 험담하고 따돌리는 일. 외면하고 잊고 이용하고 버리는 일. 

부처님이 자비를 말할 때, 예수님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주변과 이웃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이웃을 사랑하는 ‘나’이다. 그렇게 베푼 자비와 사랑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단칼에 베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부부만 그럴 것인가. 거대한 강물 속 물방울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배척하고 고립될 때, 그 외로움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말한다.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 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금 아무리 외로워도 우리는 철저히 혼자일 수 없다. 외로움 또한 나와 남 사이에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절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낯선 사람에게, 동료에게, 싫어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에게.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92호 / 2021년 7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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