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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체르니의 작품들

기자명 김준희

성실한 교육자로 덕망 높았던 베토벤의 ‘상수제자’

열살에 베토벤 만나 평생 교류하며 연주·작곡에 모두 두각
초보 피아니스트 위해 만든 연습곡집 지금도 최고의 교재
부처님이 ‘법의 상속자’로 칭송한 사리풋타 업적에 비견돼

카를 체르니.
카를 체르니.

피아노를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면 아마 ‘체르니’라는 이름은 한 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이엘’ ‘체르니’ ‘하농’ ‘부르크뮐러’와 같은, 우리가 책의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작곡가의 이름들이다. 즉, 편의상 작곡가의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초보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재들이 등장했지만, 이 작곡가들이 집필한 연습곡집들은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며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피아노를 얼마나 배웠는지 궁금할 때, “체르니 몇 번까지 쳤어?”라는 질문의 주인공이 되는 카를 체르니(1791~1857)는 베토벤의 애제자이면서, 훗날 리스트를 제자로 둘 만큼 상당히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평생 1000곡 가까이 되는 작품을 작곡했고, 피아노에 입문하는 사람들부터 상당한 테크닉을 연마한 연주자들을 위한 다양한 연습곡을 남겼다.

9세 때부터 공개 연주회를 열만큼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체르니는 이듬해 베토벤을 만나 그 앞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비창’을 연주해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체르니의 연주 실력에 깊이 감동받은 베토벤은 드물게도 그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지도했다.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과 제 5번 ‘황제’를 주요 레퍼토리로 연주하였고, 베토벤 연주의 정통성을 보여준다고 평가 받았다. 또한 베토벤의 수제자로서 그와 평생을 교류하였다. 실제로 베토벤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중 대부분은 체르니와의 편지였고, 이 편지의 내용들은 베토벤의 일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체르니는 베토벤 조카의 피아노 교사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체르니 100번’ 연습곡의 원래 이름은 ‘초보자를 위한 100개의 기초 연습곡, Op.599’이다. 피아노를 배우고 난 뒤 어느 정도 양손으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가 되면, 주로 이 연습곡집을 시작으로 기본적인 테크닉을 연마하게 되는데, 100개의 작품을 순서대로 배우다가 교사의 재량으로 ‘체르니 30번’ 교재로 넘어가게 된다. 

어느 정도 피아노 연주에 자신감이 붙은 초보자들을 위한 교재인 이 연습곡집은 ‘새로운 30개의 연습곡, Op.849’이다. 체르니는 베토벤의 수제자였던 만큼, 연주와 작곡 모두에 능했다. 스스로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기술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모두 익힐 수 있는 연습곡을 간결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두 페이지에서 길게는 네 페이지 정도 되는 20마디 남짓한 연습곡들이지만 각 연습곡마다 주요한 기술적인 면을 중점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작곡했다. 

‘40개의 매일 연습곡, Op.477’은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로서의 도약을 위해서 익혀야 할 연습곡들로 구성되어있어 많은 학생들이 이어서 공부하게 된다. 이 연습곡집의 모든 곡들을 연마하면 실제적으로 상당한 연주자로서 기술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비록 모두 ‘연습곡’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상당히 가치 있는 소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50개, 60개 등의 연습곡들이 수록된 체르니의 연습곡집과 더불어 다양한 제목의 교재들을 작곡한 체르니는 로데 주제에 의한 변주곡 ‘회상’, Op.33과 같은 연주회용으로 훌륭한 작품들도 남겼다. 살롱풍 주제와 5개 변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초기 낭만주의의 사랑스러운 서정성을 잘 담고 있으며, 체르니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잘 나타난 특유의 발랄함이 돋보인다. 

체르니는 베토벤을 만나 레슨을 받은 이후 빈에서 상당히 유명한 피아노 교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빈의 상류층의 자제들은 모두 체르니에게 레슨을 받고 싶어 했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교육자로서 덕망이 높았던 체르니는 일반 제자들 뿐 아니라 헬러, 탈베르크 등의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냈고, 낭만주의 시대 가장 뛰어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트의 스승이 되었다. 

체르니의 교육자로서 업적을 살펴보면 부처님의 상수제자로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 포교활동에 힘썼던 사리풋타(사리불)가 연상된다. 산자야의 교단에서 목갈라나와 함께 ‘누구든지 먼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을 인도해주자’는 굳은 약속을 지키며 수행 정진하던 사리풋타는 앗사지와의 만남으로 부처님을 만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앗사지로부터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며, 붓다는 그 원인과 소멸에 대해 설하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환희심을 느꼈다.

불교 승가의 수행자로 다시 태어난 사리풋타는 지혜로우면서도 순수하고도 온화한 성품으로 여러 제자들 뿐 아니라 많은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리풋타는 부처님의 열명의 제자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꼽힌다. ‘지혜(知慧)제일’ 로 불리는 그는 ‘가르침을 전하는 장군’이라고도 이야기 된다. 

또한 사리풋타는 라훌라가 출가할 때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혀주고 그를 지도해 줄 스승이 되어준 것처럼 초심자를 위한 전법에도 힘썼다. 체르니가 베토벤의 제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아노 교재와 함께 훌륭한 교수법으로 칭송을 받았던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체르니가 남긴 초보자들을 위한 피아노 연습곡집들과 연주회용 작품들은 피아니스트들이 거쳐야 할 기본적인 학습서이자 훌륭한 유산이다. 

한 바라문이 당신의 상속자는 누구냐고 부처님께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굴린 법륜, 무상의 법륜은 사리풋타가 굴린다. 그는 여래를 따라 나타난 사람이니라.” 부처님이 사리풋타를 스스로 법의 상속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얼마나 그를 신뢰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앗사지와의 짧은 만남에서 얻은 깨우침으로 진정한 스승을 찾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훗날 부처님의 예언대로 불교 교단의 대표하는 수행자가 된 사리풋타. 그는 부처님께 최고의 신뢰를, 제자들과 대중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도 교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베토벤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 당대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평생을 빈에서 활동했던 체르니가 남긴 연습곡들을 떠올려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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