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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쇼팽의 에튀드

기자명 김준희

최고 경지로 연주자 이끈 피아니스트들의 ‘목갈라나’

평생 피아노에 매진…독자적 음색 담긴 피아노곡 탄생
시를 쓰듯 함축적 아름다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려
‘에튀드’ 전문 피아니스트가 넘어야 할 숙제 같은 작품

쇼팽의 에튀드 작품 10의 3번 자필 악보.
쇼팽의 에튀드 작품 10의 3번 자필 악보.

서양음악사에 있어 피아노에 가장 헌신했던 작곡가는 단연 프레데릭 쇼팽이다. 그는 몇 개의 곡을 제외하고는 피아노를 위한 작품만 남겼다. 그가 평생을 피아노라는 악기만을 위해 매진했기 때문에 그의 피아노곡에서는 오케스트라적인 색채나 실내악적인 악상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 쇼팽은 오로지 피아노로 표현되는 독자적인 음색을 추구했다. 

쇼팽은 낭만주의 시대 최초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베토벤 이후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독자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하여 소나타, 발라드, 스케르초 등 규모가 큰 작품은 물론이고 왈츠, 녹턴,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프렐류드 그리고 에튀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이전의 어느 작곡가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화성을 기반으로 작곡되었고, 다채로운 색채와 세련된 감상을 담고 있어 새로운 연주법을 요구했다. 그의 음악에는 서정적이고 개인적인 정서가 넘쳐흐르며, 동시에 다른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들에 비해 과장되지 않은 내면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피아노 음악으로 시를 쓰듯 함축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쇼팽에 대해 물으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녹턴이고 그 다음이 즉흥환상곡, 그리고 왈츠 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에튀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많은 애호가나 감상자들은 쇼팽의 작품에서 서정성과 깊은 울림에 감동을 받겠지만, 피아니스트들은 쇼팽의 그 음악을 온전히 즐기기 전에 연주자적 관점에서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쇼팽의 작품들 중에는 리스트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패시지들의 연속적 사용으로 외형적 기교를 드러내는 작품이 거의 없다. 쇼팽은 불필요하게 과장된 기교자체를 부각시키지 않는 대신 테크닉적 요소를 수단이자 도구로 사용해 그의 음악성을 나타냈다. 

1829년부터 1832년까지 만들어진 에튀드 Op.10의 12곡과 에튀드 Op.25의 12곡(1832~1836)은 쇼팽의 이런 점이 잘 나타나있다. 

에튀드(étude)는 원래 프랑스어로 ‘공부’ ‘학습’ ‘연구’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음악에서의 에튀드는 ‘연습곡’을 의미하며, 악기에 입문한 초보자들을 위한 연습곡부터 고도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닌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무대에 올릴 목적으로 작곡된 에튀드는 훈련이나 연습을 위한 곡이 아니라 연주를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연주자에게 수준급의 연주력을 요구한다. 

쇼팽은 이전 시대에 클레멘티, 크레이먼, 체르니, 모셜레스 등이 연주자의 테크닉에만 치중하여 작곡한 것과는 달리, 음악적인 면을 부각시켜, 기술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동시에 나타내는 에튀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한 오랜 기간을 두고 작곡된 Op.10과 Op.25는 각각 리스트와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 부인에게 헌정되었는데, 이것은 쇼팽이 파리에 정착할 때 큰 도움을 주었던 리스트와 그의 비루투오소적인 면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평소 J.S.바흐를 존경했던 쇼팽은 바흐의 평균율곡집이 모든 조성을 사용하여 작곡된 것과 유사하게, 에튀드를 대부분의 조성을 사용하여 작곡했다. Op.10의 첫 곡이 C장조이고 3도 관계인 a단조가 두 번째 곡, 세 번째 곡은 5도 위의 조성인 E장조 등으로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구성을 갖췄다. ABA구조인 모든 작품에는 한 가지 패턴(mono theme)을 집중적으로 사용했으며 각 부분은 주제적인 대조와 대비보다는 화성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쇼팽의 에튀드는 전 세계적으로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곡이나 음악학교의 입시, 그리고 각종 콩쿠르의 예선에서 과제곡으로 출제되는 곡이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미뤄져 현재 열리고 있는 2020년 쇼팽 콩쿠르의 예선 첫 라운드에서도 모든 참가자들은 Op.10과 Op.25에서 각각 한 곡을 선택해 연주해야 한다. 

체르니의 연습곡들이 피아노 학습자들을 위한 기초 교재라면, 쇼팽의 에튀드는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라면 반드시 공부해야 할 숙제와 같은 작품들이다. 앞의 칼럼에서 체르니의 작품들과 그의 음악적인 삶을 사리풋타에 비유해보았다. 그렇다면 쇼팽의 에튀드는 목갈라나에 견주어 볼 수 있을까? 비단 에튀드뿐 아니라 쇼팽의 작품들은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섬기라. 수행들이여,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와 사귀라. 그 수행승들은 현명한 자로서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수행승들이여, 사리풋타는 친어머니와 같고, 수행승들이여, 목갈라나는 양어머니와 같다. 수행승들이여, 사리풋타는 흐름에 든 경지로 인도하고, 목갈라나는 최상의 진리로 인도한다.(분석의 품 6장)”맛지마니까야의 내용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존자 사리풋타는 수행승들이 흐름에 든 경지(豫流果)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때까지 그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보다 높은 길을 닦아가도록 하고 다시 새로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존자 목갈라나는 그들이 거룩한 경지를 (阿羅漢果)를 성취할 때까지 훈련시켰다. 다시 말하면 사리풋타는 교단에 입문한 초보 수행자들을 일정 수준까지 교육하는 역할을, 목갈라나는 그들을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교육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평생을 공부하고 다듬어야 하는 쇼팽의 에튀드와 그의 수많은 피아노 작품들을 목갈라나 존자에게 비유해본다. 실제로 쇼팽의 에튀드곡집 이후로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드뷔시, 스크랴빈 등 많은 작곡가들이 피아노 에튀드곡집을 남겼다. 부처님의 상수제자로 많은 이들을 가르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목갈라나를 떠올리며 피아노의 시인이 써내려간 ‘음악의 시’를 들어보면 어떨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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