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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공작새 - 하

교만한 승려는 승복 좋아하고 사치 뽐내

옷 탐착 항상 경계해야 하는 비구
외모 가꾸는 모습을 공작새 비유
교만은 겸손 없고 버릇없음 뜻해
자신 밝히지 못하는 장님 비유도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공작새를 매우 혐오하여, ‘종의 기원’을 출판한 다음 해인 1860년 동료에게 “난 공작새의 꼬리를 볼 때마다 어지럽고 토가 나온다네”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깃털이 ‘생존에 필요한 요소’에 맞게 진화한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완전히 상충하기 때문이다. 꼬리깃털은 천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깃털이 크고 길수록 공작의 행동을 둔하게 만들며, 균이나 벌레가 서식하기 쉬워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후 다윈은 1871년 발표한 ‘인간의 유래’에서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안해 골치 아픈 공작의 문제를 해결한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깃털은 짝을 유혹하는데 용이하여 번식에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꼬리깃털을 진화시켰다고 설명하게 된다.

빨리 자따까에도 공작새의 화려함을 나타내는 ‘낫짜 자따까(Nacca Jātaka)’가 있다. 낫짜는 ‘춤추는’이라는 뜻으로, 수컷 공작새가 눈 모양의 꼬리깃털을 펼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면을 희화한 말이다. 자따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에 지상의 동물들은 사자를 왕으로 뽑고, 바다의 동물들은 거대한 물고기를 왕으로 삼았으며, 새들은 아름다운 황금백조를 왕으로 선택한다. 황금백조 왕에게는 고귀한 딸이 있었는데 왕은 딸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한다. 딸은 자신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스스로 남편을 고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딸이 성장하자 황금백조 왕은 모든 새들을 불러 훌륭한 신랑감을 찾도록 한다. 거위, 백조, 독수리, 참새, 벌새, 뻐꾸기, 부엉이 등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몰려들었다. 자신의 남편감을 고르던 딸은 멋진 꼬리 깃털을 드리우고 에메랄드빛 긴 목을 지닌 공작새을 간택한다. 

공작새가 행운의 신랑감이 된 것을 듣고 모든 새들이 공작새 주변으로 몰려와 그를 축하했다. 기쁨에 찬 공작새는 멋지게 뽐내며 화려한 깃털을 과시하기 위해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주위의 시선에 한껏 고무된 공작은 이내 하늘을 향해 머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보여주게 된다. 이를 본 황금백조왕은 “이 공작새는 마음에 겸손이 없고 행실이 단정하지 않다. 나는 내 딸을 그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부끄러움에서 벗어났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공작새여, 당신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깃털은 아름다우며, 목은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꼬리는 화려한 부채처럼 멋지다. 하지만 그대는 여기서 염치와 외경심도 없는 이처럼 춤추었다. 내 딸을 당신 같은 바보와 결혼시키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왕은 자신의 딸을 왕족 조카와 결혼시켜 버린다. 공작새는 교만에 빠져 고귀한 아내를 맞이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 자따까에서 황금백조 왕은 부처님의 본생이고, 공작은 제따와나의 교만한 비구의 전생이다. 교만한 승려는 승복을 좋아하고 이를 모아 사치를 뽐내는 이였다. 부처님은 그를 불러 서원을 세운 비구가 왜 소유물이 많은지 이유를 묻는다. 이에 비구는 화를 내면서 승복을 찢고 벌거벗은 채 서 있었다. 모두가 그를 혐오하자 비구는 그대로 달아나 버린다. 비구는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옷에 대한 탐착을 경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승복을 모으고 자신의 외모 가꾸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거만한 공작새에 비유한다. 교만(驕慢, māna)은 겸손함이 없이 잘난 체하여 방자하고 버릇이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마음의 삼독(三毒)을 탐진치(貪瞋癡)라 하는데, 구사종(俱舍宗)에서는 어리석음의 ‘치’ 대신 교만의 ‘만(慢)’을 진리를 미혹하게 하는 번뇌로 꼽는다. ‘법구경(法句經)’에서 “만일 조금 들어 아는 것 있다 하여 스스로 대단한 체하며 남에게 교만하게 굴면 마치 장님이 촛불을 잡은 것 같아 남은 비추어 주면서 자신은 밝히지 못하네”라고 교만한 자를 장님에 비유하기도 한다. 겸손함을 잃은 공작새가 과거세에 ‘아내라는 보석’을 잃었듯이, 현생에 교만한 비구로 태어나 ‘믿음의 보석’을 잃는 것처럼 ‘자신이라는 보석’을 잃게 만드는 것이 교만의 힘이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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