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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 위주 벗어난 독특한 백장선원 하안거

  • 수행
  • 입력 2021.08.24 19:50
  • 수정 2021.08.25 06:22
  • 호수 1599
  • 댓글 2

남원 실상사 백장선원 하안거 해제

백장암 백장선원 하안거 입재 11명…하루 4시간 좌선 정진
육화경 기반 청규 제정해 원융살림·포살·법담탁마도 진행
도법 스님, “해제 이후도 안주 않고 정진해 세상 빛내길”

남원 실상사 하안거 해제법회에 동참한 백장선원 선객들의 모습.
남원 실상사 하안거 해제법회에 동참한 백장선원 선객들의 모습.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 그 만수천을 낀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남원 실상사는 동쪽 천왕봉, 남쪽 반야봉, 서쪽 심원 달굴, 북쪽 덕유산맥의 수청산에 둘러싸인 채 오랜 세월 불법을 전승해온 천년고찰이다. 유난히 길었던 폭염 속에서 외출을 일절 금하고 정진해온 수행자들이 실상사를 찾았다.

하안거 해제 날인 8월22일 오전 10시 지리산 실상사 반야전에서 ‘불기 2565년 실상산문 하안거 해제법회’가 열렸다. 이날 법회에 참여한 선객들은 11명. 지난 3개월 동안 스스로를 선원에 가둔 채 오롯이 수행에 몰두한 실상사 백장암 백장선원 선객들이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선객들의 모습은 다소 초췌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법회는 삼귀의와 반야심경 독송, 하안거를 맞이해 젊음과 늙음이 조화로운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며 더 성장한 삶, 더 완성된 삶, 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실상산문 사부대중이 다짐한 ‘사부대중의 약속’에 이어 모두 한목소리로 하안거 발원문을 봉독했다. 이 발원문은 결제 당시 대중들의 결연한 각오이기도 했다.

“선재동자를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준 53선지식이 출재가를 넘어 세상 모든 사람이었듯이 우리 사부대중 한 사람 한 사람도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깨우쳐 동체대비의 삶을 가꾸면서 화엄법계의 아름다운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나겠습니다.”

이날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은 해제법어에서 긴 여름을 지나 더 깊어진 눈빛으로 마주한 대중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은 “해제 이후에도 항상 깨어있도록 노력하며 수행정진으로 세상을 빛낼 것”을 강조했다.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은 “해제 이후에도 항상 깨어있도록 노력하며 수행정진으로 세상을 빛낼 것”을 강조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말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 백척간두를 어떤 특별한 상황을 묘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스승들은 매 순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있으니 깨어있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제 날을 맞았습니다. 이 자리에 동참한 모두가 항상 깨어있도록 노력하며 정진해 세상을 빛내길 바랍니다.”

실상사 산문은 홍척 국사에 의해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됐다. 개산조 홍척 국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때 당으로 건너가 마조 선사의 제자인 서당 지장 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으며 도의 국사보다 5년 뒤인 826년에 귀국해 828년에 실상사를 창건했다. “실상화상” “남한조사”라고 불렸던 홍척 국사는 편운·수철 선사 등 수많은의 제자를 깨침으로 이끌어 실상사 선문을 크게 일으켰다. 마조에서 지장으로, 지장에서 다시 홍척 국사로 이어지는 선법으로 해동에 선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던 실상산문은 현재 백장암에서 그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수청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백장암은 홍척 국사가 실상사를 창건할 당시 함께 세웠다고 전해진다. 실상사가 사세를 크게 떨칠 때부터 참선 도량으로 유명했으며 실상산문 전체에서 법과 수행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다. ‘백장(百丈)’이라는 이름은 ‘평상심이 도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일갈한 백장회해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 일일부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청규를 만들고 엄격히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백장선원은 철저히 대중들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공사로 진행된다. 또 안거 내내 좌선 위주의 여느 선원과는 달리 좌선, 울력, 그리고 법에 대한 치열한 토론까지도 병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몸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행동한다’ ‘입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말한다’ ‘마음으로 동료에게 자애롭게 사유한다’ ‘동료들과 균등하게 나눈다’ ‘계를 구족하여 머문다’ ‘바른 견해를 구족하여 머문다’는 6가지 청규는 초기불교부터 대승까지 이어오는 승가의 화합원리이자 불법이 쇠퇴하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선원은 이 6가지 청규를 바탕으로 2016년부터 3가지 구체적인 항목을 실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원융살림’으로 스님들의 입방여부, 안거 시 수행 계획 등 백장선원의 모든 대소사를 대중갈마를 통해 결정한다. 법랍의 높고 낮음, 수행이력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갈마를 통해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이는 자연스레 불화가 줄어들고 화합승가로 연결된다. 지키기 어려운 소소한 조항은 대중의 뜻에 따라 추가적인 청규로 만들어 엄수한다.

두 번째는 ‘포살’이다. 부처님은 대중의 화합과 안락을 위하고 정법을 보전하기 위해 계율을 제정했다. 결제와 해제는 물론 보름마다 ‘비구계본’과 ‘보살계본’을 번갈아 포살한다. 포살 전 스님들은 일대일로 청정의식을 행한다. 포살은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청정을 회복하는 시간이며 승가가 대중의 공의로 운영되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다. 매달 보름과 그믐 오전 8시에 진행되며 일대일 참회는 포살 시작 20분 전까지 마쳐야 한다.

세 번째 ‘법담탁마(法談琢磨)’는 바른 견해를 세우고 대중들이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시간이다. 대중이 돌아가면서 논주를 맡고 논주는 활발한 토론이 되도록 진행한다. 옛 선사는 ‘마음을 반조하지 않으면 경을 보아도 이익이 없고 자성이 공한 줄 알지 못하면 좌선해도 이익이 없다’ 말했다 한다. 지난 하안거 동안에도 법담탁마는 매주 목요일 오전 8시부터 2시간 동안 육화당에서 이뤄졌다.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사심을 내려놓고 공심으로 살겠다는 약속이며 불법을 세세생생 전승하겠다는 거룩한 다짐이다. 백장선원 청규는 타성과 관습에 물들지 않고 늘 깨어있으며 금강석 같은 굳은 서원으로 부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르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비장한 각오가 묻어난다.

백장암 감원 행선 스님은 “백장선원은 대중들 모두 수처작주의 정신으로 대중갈마·법담탁마·포살과 자자 등 실천을 통해 청정화합승가 구현을 지향하는 수행도량”이라고 설명했다.

백장암 대웅전의 모습. 
백장암 대웅전의 모습. 

남원=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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