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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콘텐츠가 대부분인데 가톨릭 순례길 조성한다니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1.09.03 14:54
  • 수정 2021.09.05 08:38
  • 호수 1600
  • 댓글 3

이기룡(해륜) 포교사단 홍보 전문운영위원 기고

경기도 광주시(시장 신동헌)와 천주교 수원교구청(교구장 이용훈 주교)이 추진 중인 남한산성-순교성지와 천진암 성지를 잇는 ‘천진암성지 광주 순례길’ 조성계획은 출발부터 잘못된 졸속행정이다.

지난 8월26일 체결된 2기관의 업무협약에 의하면 광주시는 순례길 조성에 행정적 지원을 담당하고, 천주교 수원교구는 광주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추가로 발굴하고 세계적 명소로 만들기 위한 홍보 등 업무를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천진암(天眞庵)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이 있는 불교계를 배제한 채로 진행되는 순례길 조성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는 우를 범했다.

국민화합과 사회적 소통공간 확보, 관광자원의 콘텐츠 다원화를 위한 것이란 출발 의도는 순수하다해도, 다원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라에서 타종교와의 다툼의 여지가 있는 공공 프로젝트에 정부의 예산을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천진암(天眞庵)’이라는 고유명사의 ‘庵’은 불교에서 사찰보다 규모가 작은 말사이거나, 규모가 작은 수행처를 지칭하는 용어로,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 설악산 백담사의 오세암처럼 전국의 많은 사찰이름에서 보듯 애초의 지명자체가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가톨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혹독한 박해를 받아 ‘교(敎)’라는 이름을 내걸지 못하고 ‘천주학(天主學)’ 또는 ‘강학(講學)’모임으로 부르며 오지를 찾아다닐 때 임시 은신처를 제공해 주고 보호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은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로 불리는 천진암(天眞菴, 언제부터인가 원래의 ‘절이름 암庵’자 대신 ‘풀이름 암菴’로 바뀌었음)은 스님들이 수행하던 사찰이었다. 1801년 가톨릭을 박해한 신유사옥 당시 천주인(가톨릭신자)을 도왔다는 이유로 천진암과 이웃한 ‘주어사’에서만 10여 명의 스님이 참수당하고 사찰은 강제로 폐사된 기록이 불가에 전해오고 있다.

숭유억불 통치이념에 따라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멸실 위기까지 내몰렸던 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굴곡진 역사의 험한 파도를 이기지 못한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폐사지로 버려져있던 터를 잡고 교세를 키워 지금의 천진암 성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주인 없이 버려진 폐사지를 차지한 것이 무슨 대수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인간과 세상의 양심과 구원을 위한다는 종교인의 언어와 문법으로는 궁색해 보이지 않은가? 이는 멀쩡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탈바꿈시키는 일본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남한산성도 불교와 무관치 않다. 1624년(인조 2년) 시작된 남한산성 수축(修築)공사에 동원된 노동력이 대부분 8도에서 차출된 의승(義僧)군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렇다 할 장비나 기술이 없던 시절 등짐으로 돌과 흙을 퍼 나르는 ‘관노(官奴)’ 취급을 받으며 성을 쌓은 것이 스님들이었고, 노임을 주기는커녕 침식을 자체 해결하라고 세웠던 시설이 바로 장경사, 망월사 등 사찰이었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벽암당 각성 대사를 승군장으로 하는 지휘계통 휘하의 스님들이 쌓은 남한산성은 계곡을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 띠 모양으로 성벽을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일부 구간은 아랫단은 경사를 두고 쌓다가 위에는 수직으로 곧추세우는 굽도리형을 보이는 등 장소와 지형에 따라 다른 공법을 활용한 것으로 성곽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하는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순례길 구간에 포함된 퇴촌 나눔의집도 불교계(불교인권위원회/위원장 故 월주 스님)를 빼놓고 설명이 안 되는 사회복지기관이다. 본인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일본군 위안부’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사항이던 1990년대 초부터 마포에서 출발 명륜동을 거쳐 현재 위치인 퇴촌(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길 85/원당리)으로 옮겨 다니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역할을 제공해온 것도 불교계이다.

이기룡 포교사
이기룡 포교사

“내가 위안부였다”는 김학순 할머니의 용감한 육성 증언이 나오고, 사회의 호응을 받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2년 8월까지 불교계의 공헌이 컸다는 것은 아마도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초창기 멤버들도 수긍하는 팩트일 것이다. 일본군의 만행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역사적 시료가 태부족이던 시절 어렵게 구해진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일본군 역사관’도 1998년 그 안에 생겼다.

그뿐만 아니다. ‘님은 갔습니다’로 대표되는 불멸의 국민시를 지은 시인 겸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만해기념관’ 또한 한용운 스님을 빼고 무슨 설명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천진암성지 광주 순례길’이란 테마 프로젝트의 콘텐츠 중 상당부분이 불교계 문화유산인데, 어떻게 당사자의 한쪽인 불교계를 배제한 채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을까? 혹시 나눔의집 ‘내부갈등’을 꼬투리 삼아 불교계를 흠집내기 위해 2년여 동안을 집중해온 이재명 경기지사의 의중을 간파하고 ‘알아서 기는’ 졸속 행정집행은 아닌지 묻고 싶다.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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