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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순례, 침체불교서 활발불교로의 ‘전환 동력’ 응집하는 결사”

  • 교계
  • 입력 2021.09.13 10:41
  • 수정 2021.10.02 19:38
  • 호수 1601
  • 댓글 9

삼보사찰 천리순례 이끄는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

2년에 걸친 무문관·상월선원 천막결사·만행결사 등 쉼없는 여정
혹독한 수행의 정신 위에서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불교미래 모색
천리순례, 수행으로 승화…결집된 대중원력 전법으로 회향 발원

자승 스님은 “움직이는 불교, 활기찬 불교, 적극적인 불교,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불교로의 전환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은 “움직이는 불교, 활기찬 불교, 적극적인 불교,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불교로의 전환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밝혔다.

“한국불교가 위기입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10년 후 종교가 아닌 문화재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럼에도 변화의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원에서, 길에서 야단법석을 펼쳐 움직이는, 찾아가는,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새로운 불교를 제시했습니다. 상월선원과 만행결사는 부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한 실천행입니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지난해 10월27일 150여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21일간의 자비순례를 회향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차담회를 열었다. 이날 스님의 목소리는 깊고 비감했다. 대중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스님은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3년간 108명에게 부처님 인연을 맺게 하겠노라 원을 세웠습니다.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기 계신 분들부터 1년에 10명씩 부처님과 새 인연들이 맺어지도록 노력합시다.”

스님의 제안은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오늘날 우리가 받들어 실천하자는 의미였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진리를 전하라고 당부했다. 부처님도 우루벨라로 가서 전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을 전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스님들과 법을 구하고자 불타는 사막과 황량한 벌판을 걸었던 구법승의 역사는 부처님의 전도선언에서 비롯됐다.

스님의 제안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자신들을 향한 장군죽비로 느꼈다. 쉽게 나온 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이 한마디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무섭도록 자신을 다그쳤다. 지난 2017년, 8년간의 총무원장 소임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눈 쌓인 백담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2년을 잇따라 무문관에 칩거했다. 굳게 닫힌 출입문, 하루 한 끼 식사, 누구와 대화조차 할 수도 없는 닫힌 공간에 스스로를 가뒀다. 3평 남짓 닫힌 공간에서 3개월을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8년을 눈코 뜰 새 없이 살았던 스님이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해제 뒤 스님의 모습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17kg 넘게 줄어든 몸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깊게 들어간 눈에서는 그윽하고 맑은 빛이 났다. 닫힌 공간에서 생기는 탐욕은 오로지 식탐으로 발현됐다. 그 욕망의 실체를 보고 음식을 극한으로 줄여 탐욕을 제어했다. 몸을 비우는 것으로 현실적 욕망을 비워낸 것이다. 

2020년 2월7일 상월선원 천막결사 90일 동안거를 회향한 자승 스님은 상월선원 천막의 잠긴 문을 열고 세상의 빛과 마주했다.
2020년 2월7일 상월선원 천막결사 90일 동안거를 회향한 자승 스님은 상월선원 천막의 잠긴 문을 열고 세상의 빛과 마주했다.

스님은 이렇게 두 번을 백담사에서 보낸 뒤 2019년 여덟 스님들과 황량한 벌판에 천막을 쳤다. 극한(極寒)의 수행결사에 들어갔다. ‘고불문’에서 다짐했던 하루 한 끼 공양에, 양치만을 허용하고, 한 벌의 옷을 입고, 묵언한 채, 하루 14시간을 정진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난방을 거부했다. 따뜻한 옷과 잠자리와 쌓아온 명성을 뒤로 한 채 스스로를 천막에 가두고, 추위와 굶주림을 벗 삼아 용맹정진했다. 혹독한 수행의 치열함에 세상은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자승 스님의 이런 여정은 무섭도록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었다. 불자는 감소하고 출가를 외면하는 세상에서, 시나브로 불교는 잊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불교내부를 먼저 일깨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혹독한 수행 정신 위에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모색해야 했다. 내부의 무기력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결사가 필요했다.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고려시대 정혜결사와 근대 봉암사 결사의 전통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내용은 파격이었다. 스님은 상월선원 문이 닫히기 전 외호대중들에게 떠들썩한 야단법석을 당부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치열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의 천막 밖으로 합창과 국악, 찬불가 등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깨달음은 중생을 향해 있어야 했다. 고요 속에서 이룬 성취는 고요가 깨지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수행은 저잣거리에서 완성되고, 깨달음은 세상 속에서 성취해야 한다. 자승 스님은 하루 종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던 그날 저녁,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썼다. “땅이 노래하고 하늘이 춤추니 수미산이 사바세계로다.” 

스님은 상월선원에서의 목숨을 건 용맹정진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결사를 제시했다.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을 위한 만행결사였다. 처음에는 부처님 8대 성지를 사부대중이 직접 걸으며 공부하고 탁마하는 인도만행결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세상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국민들의 고단한 삶이 눈에 밟혔다. 더불어 깊이 산속에 들어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잃어버린 한국불교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스님은 불자가 감소하고 불교가 쇠퇴하는 원인 중 하나를 불교가 옛 유산에 기대, 세상과 담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중생이 곧 부처이듯이, 산속에서 홀로 독야청청할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로 나와 세상과 더불어 야단법석을 펼칠 때 한국불교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혹독한 수행의 정신을 세상에 보여준 이후 만행결사를 결심했다.  

“상월선원을 통해 어떤 어려움도 수행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 불자들이 신심을 일으키길 바랐습니다. 만행결사는 신심과 원력을 심어 참다운 불자로 이끌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지난해 7월 만행결사를 앞두고 공주 마곡사 일원에서 진행된 예비순례에서 스님은 만행결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2020년 10월7일 대구 동화사에서의 입재식을 시작으로 21일간 511km에 이르는 만행결사 자비순례 대장정이 시작됐다. 
2020년 10월7일 대구 동화사에서의 입재식을 시작으로 21일간 511km에 이르는 만행결사 자비순례 대장정이 시작됐다. 

상월선원 천막결사 90일 동안 스님과 재가불자,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한 공간에서 야단법석을 열며 새로운 불교를 염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만행결사는 사부대중이 함께 어우러져 세상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2020년 10월7일, 21일간 자비순례가 진행됐다. 결사대중 100여명과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150여명이 동참했다. 순례대중은 매일 30km를 걸었다. 길에서 먹고 자며 기도하고 탁마했다. 이렇게 총 511km를 걸었다. 가는 곳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켰으며, 팍팍한 다리와 길게 이어지는 길 위의 고단함 속에서 한국불교의 중흥을 서원했다. 만행결사에 나서기 전 스님의 몸은 이미 성치 않았다. 상월선원 천막결사 때도 양쪽 무릎 연골이 크게 손상돼 좌복 대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정진했다. 통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150여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걷고 걸었다.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만행결사를 무사히 회향해야한다는 부담감은 순례 내내 버거운 짐이었다.

스님은 올해 2월 사회저명인사들을 주축으로 수미산원정대를 결성했다. 쇠락하는 한국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포교결사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올해 7월 법주사에서 열린 수미산원정대 첫 성지순례에서 이렇게 밝혔다.

“총무원장을 마치고 백담사 무문관 수행을 하면서 승과 속, 출세간과 세간이 나뉘어 있는 수행으로는 한국불교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 그 속에서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수행을 위해 2019년 겨울 상월선원 결사를 하게 됐습니다. 511㎞를 걸은 자비순례 또한 사부대중이 함께 불교를 중흥하자는 의미였습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하지 않는 불교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스님은 만행결사 회향 후 입원했다. 지병이던 어깨를 수술했다. 지금은 또 다른 어깨의 수술을 요구받고 있다. 아마도 상월선원에서의 혹독한 수행과 만행결사의 후유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다시 길에 나선다.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법보종찰 해인사를 거쳐 불보종찰 통도사로 향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위해서다. 9월30일부터 10월18일까지 19일 동안 삼보사찰을 걷는 423km 대장정이다. 지난해 만행결사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국불교의 첫 관문이었다면 천리순례는 불교와 세상이 함께 회통하고 어우러지는 실천행이다. 

길은 가장 법다운 도량이다. 부처님께서는 호화로운 안식처인 궁전을 버리고 출가하셨다. 길에서 수행하고 깨달았으며, 전도하다 열반에 드셨다. 만행결사는 부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론과 사변의 늪을 떠나 부처님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쌓아온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린 채 길에서 자고 먹으며 오로지 두발로 의지해 가야한다. 흙먼지 뒤집어쓰는 그 현장에, 가쁜 숨 토해내는 절절함 속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있다. 여기에 삼보사찰은 불법승 삼보, 즉 불자들의 귀의처를 상징한다. 천리순례는 만행수행과 성지순례의 의미가 더해져 더욱 깊은 울림을 주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천리순례는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한국불교의 선물이기도 하다. 각국은 종교나 역사와 연관 깊은 곳을 성지로 삼아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본의 시코쿠헨로와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표적이다. 한국불교는 17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삶의 전환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사색과 성찰의 순례길 하나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자승 스님은 이번 삼보사찰 대장정이 불자들의 신심을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삶의 대전환을 도모하는 국민들에게 사색과 희망의 공간을 열어주는 국민적 순례길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1970년대 2000만 불자였습니다. 1990년대에 1000만 불자였고 2010년대 700만 불자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불교가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한가롭게 차나 마시면서 편안함에 안주할 생각을 버리고 이렇게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 상월선원 천막결사, 만행결사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한국불교 백년대계가 아니더라도, 십년대계라도 준비해보자는 절절한 외침입니다.”

2년에 걸친 무문관 수행, 상월선원 천막결사, 만행결사 자비순례, 이번 삼보사찰 순례에 이르기까지 쉼없는 행보는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 있다. 스님은 지난해 자비순례에 임하는  대중들에게 “앉은 불교에서 움직이는 불교로, 침체된 불교에서 활기찬 불교로, 소극적인 불교에서 적극적인 불교로, 그리고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불교로 전환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나아갈 미래”라고 밝혔다.

고려시대, 세간에 너무 깊이 들어갔다 스스로 타락한 출세간이 돼 버렸던 불교를 구하고자 발원했던 것이 정혜결사라면, 산 속에 깊이 깃들었다 세간으로 향하는 길을 잃어버린 지금의 한국불교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 상월결사였다.

“천리순례는 불교중흥의 기틀을 마련하는 보살만행”(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사부대중이 천리수행에 나서는 것은 변화와 쇄신의 계기”(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삼보사찰 순례는 부처님 성지를 참배하며 가르침 새기는 수승한 공부”(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 “천리순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결사”(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바라보는 종단 안팎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9월30일 송광사를 시작으로 삼보사찰 천리순례가 시작된다. 몽골침략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고자하는 불자들의 염원이 팔만대장경을 완성시켰다. 삼국의 쟁투 속에서 죽음과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덜고자 신라의 스님들은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인 불교를 저잣거리로 가져와 민중에게 건넸다.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의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승 스님은 천리순례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 받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불교가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어우러지는 이 시대의  무애행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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