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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강진 무위사 범종각

기자명 법상 스님

부처님 음성 비유한 산사의 범종 소리

불법을 소리로 나타내면 범종
종 소리에 모든 번뇌 소멸 이유
목은 시문서 일부 차용한 주련
경구 아닌 서정적 시라 아쉬워

강진 무위사 범종각 / 글씨 석초 승윤상(石艸 昇潤尙).
강진 무위사 범종각 / 글씨 석초 승윤상(石艸 昇潤尙).

禪窓夜夜梵鐘鳴 喚得心身十分淸
선창야야범종명 환득심신십분청 
檜樹蒼蒼石勢頑 葉間風雨半天寒
회수창창석세완 엽간풍우반천한

(밤마다 선창(禪窓) 넘어 범종 소리 울릴 때면/ 몸과 마음을 불러 일깨워서 더욱더 맑게 하네./ 회나무는 울창하지만, 바위는 험준한데/ 차가운 하늘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는 비바람 소리)

이 시문은 고려 말 성리학을 바탕으로 정치사상을 전개한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문집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8권 가운데 ‘봉사광평이시중소장산수십이첩병풍’의 ‘회암(檜巖)’이라는 시제(詩題)에 나온다. 다만 주련에는 이를 완전히 옮기지 못하고 일부만 실렸다. 위 시문은 주로 범종각에 걸리는데 양산 통도사, 신흥사 등에서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주련의 첫 구절인 ‘선창야야범종명 환득심신십분청’은 출전이 불분명하다. 선창(禪窓)은 선방의 창문이라는 뜻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승방(僧房)이라는 표현이다. 야야(夜夜)는 ‘매일 밤’ 또는 ‘밤마다’라는 뜻이다.

범종(梵鐘)은 불전 사물(四物) 가운데 하나이며 인도의 건추(犍椎)와 중국의 편종(編鐘)에서 유래됐다고 본다.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는 것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여기에는 다음 문장이 있다. ‘무릇 종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땅 인도를 살펴보니 계니타왕(쿠샨왕조의 카니시카Kanishka)때 징험이 있었고, 중국을 살펴보니 고연(鼓延) 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노라.’ 고연은 중국 염제(炎帝)의 증손으로 처음으로 종을 만든 사람을 말한다.

환득(喚得)은 부른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문맥의 흐름을 따라 깨운다는 의미가 된다. 십분(十分)은 넉넉히, 충분히, 부족함이 없이, 이러한 표현이다. 이것은 일본식 어법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구절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종을 만드는 의미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부처님의 음성을 범종 소리에 비유하였기에 쇠종(鐵鍾)이라 아니하고 범종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써서 나타내면 경(經)이 되고, 형상으로 나타내면 불상이 되고, 그림으로 나타내면 만다라(曼陀羅)가 되듯이 소리로 나타내면 범종이 된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들으면 잠시나마 모든 번뇌가 사그라지듯이 지금 선방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상상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종성게(鐘聲偈)’에 보면 ‘문종성번뇌단(聞鐘聲煩惱斷)’이라고 하여 “이 종소리를 듣는 자는 모든 번뇌가 끊어질 것”이라고 염원하는 게송도 바로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회수창창석세완부터는 목은 이색의 시에서 차용했다. 이 시의 제목인 회암은 경기도 양주시 천보산 아래에 있는 회암사(檜巖寺)를 말한다. 그러기에 ‘회나무 숲 울창하다’라는 번역은 오류다. ‘회암사 숲 사이로 바라다보는 바위는 험준하다’라고 해야 올바른 번역이 된다. 서두에서 회나무라 한 것은 이 시문이 다른 사찰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목은 선생의 문집에 여러 절과 시제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선생은 여러 절을 찾아 유숙하거나 차담을 나누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고려말 성리학이 수용되고 불교를 배척하는 척불론(斥佛論)이 대두되자 유교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자는 유불(儒佛) 융합을 주장했으며 불교의 폐단을 바로잡는 도첩제(度牒制)를 시행했던 인물이다.

엽간(葉間)은 나뭇잎 사이라는 표현이다. 풍우(風雨)는 비바람을 말한다. 비바람이 치고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에 자신의 심정을 읊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천(半天)은 하늘의 반쪽이니 곧 중천(中天)이며 한(寒)은 차갑다는 표현이다.

산사의 범종각에 주로 걸리는 주련이지만 그 내용이 불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경구(警句)보다는 서정적인 시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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