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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쇄’, ‘직지박물관’으로 바꿔야 한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12.10 21:04
  • 호수 1613
  • 댓글 1

기존명칭으론 박물관 특성 못 담아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더 명확해
직지에 담긴 상생·불이 정신 드러내야
最古 넘어선 最高 첫걸음이 명칭변경

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의 명칭 변경 여부가 12월23일 결정난다. 9월15일~10월25일 진행된 시민 설문조사에서는 ‘청주직지박물관'과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각각 1,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쇄박물관’ ‘직지박물관’ ‘직지인쇄박물관’ ‘청주직지인쇄박물관’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해당 국가가 소유하고 있지 못함에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건 딱 하나다. 직지(直指)다. 이 책이 갖는 가치가 지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이 1445년인데 이 직지는 78년 빠른 1377년 인쇄됐다. 금속활자 발명은 최소한 이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상정예문(詳定禮文)’을 고종 21년(1234)에 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셈이다. 

직지의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백운 스님은 청주 흥덕사에 주석했고 이 도량에서 직지를 편찬·인쇄했다. 1992년 ‘고인쇄박물관’이 흥덕사지 일대에 들어선 연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명칭만 보아서는 이 박물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다. 키워드 ‘백운·직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직관으로 가늠할 수 있는 ‘구텐베르크 박물관’과는 대조적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직지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급등했다. 

명칭 변경 반대의 대표적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지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발견될 경우 직지박물관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상정예문’이라도 발견되면 또 다시 명칭변경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기록에만 남아 있는 책이 언제 발견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벌써 걱정하나? 정 그렇다면 ‘백운경한 박물관’으로 바꾸면 될 일이다. ‘직지’가 발견되고, 그 귀중함이 인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명칭을 변경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직지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135억원이었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 나름 고민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겠지만 ‘직지 없는 직지축제’라는 질타가 이어지곤 했다.  특히 60억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개최한 ‘2018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에는 “시민들에게 자긍심도 주지 못하고, 울림도 없었다”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직지와 직접적 연관이 떨어지는 놀이와 먹거리 행사에 눈살을 찌푸린 시민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직지’ 없는 박물관에 ‘직지’ 명칭조차 빠져 있으니 ‘직지축제’가 제대로 펼쳐질리 만무하다.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청주 불교계에서는 직지 명칭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불교박물관’으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하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구심도 있어 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만의 하나라도 주최 측이나 박물관 관계자들이 이러한 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지독히도 편협한 생각에 함몰된 것이라고 본다. ‘직지’는 불서다. 맞다. 그런데 불서임을 전면에 드러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선어록이 현대인의 정서를 해치기라도 하는가? ‘세계 최고(最古)’의 자부심을 불교계만 누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직지’가 가리키는 곳은 행복이다. 수행자들이 깨달으려 한 것도 행복하기 위함이요, 선지식이 법문을 펴는 것도 행복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전도선언’에 오롯이 담겨 있다. ‘직지’의 행간을 살피면 상생(相生)과 불이(不二) 등 현 시대의 병폐를 치유할 사상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르침,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기후위기 대재앙’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화합과 공생으로의 대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직지’를 인쇄문화 폭에 한정하면 고려 말의 시공간에 갇히는 것이다. 기술만 부여안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지가 품고 있는 가치도 온전히 드러내어야 한다. 그래야 ‘최고(最古)’와 함께 ‘최고(最高)’의 자긍심도 누릴 수 있다. 그 첫걸음이 직지를 포함한 명칭변경이다.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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