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가 최근 ‘고인쇄박물관’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유력 명칭으로 거론된 ‘청주직지박물관’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명칭에 ‘직지’가 포함돼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지만, 일각에서 “불교색이 강해진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청주시는 올해 3월부터 ‘고인쇄박물관’ 명칭 변경을 추진해왔다. 고인쇄박물관은 1985년 흥덕구 운천동 택지개발 지구에서 ‘서원부 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고 새겨진 금구(禁口) 조각이 출토되면서 이곳이 고려 우왕 3년(1377) 금속활자를 주조, 간행한 흥덕사지임이 확인돼 1992년 건립이 이뤄졌다. 하지만 ‘고인쇄’라는 명칭이 과거 지향적이고 직지의 상징성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청주시는 고인쇄박물관에 대한 명칭 변경을 추진해왔다.
특히 청주시는 올해 4~5월 한달 간 시민들을 대상으로 박물관 새 명칭을 공모했고, 접수된 1165건 가운데 후보 5건(청주직지박물관·직지박물관·직지인쇄박물관·청주직지인쇄박물관·한국인쇄박물관)을 선정해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1만4091명이 참여한 시민투표에서 ‘청주직지박물관’이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고인쇄박물관의 새 명칭으로 ‘청주직지박물관’이 유력시 됐다.
그러나 정작 청주시가 11월17일 개최한 시민공청회에서 새 명칭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며 다시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충청타임즈’에 따르면 이날 패널로 참석한 5명 중 2명이 명칭 변경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쓴다면 종교적 시비 가능성도 있고, 직지라는 명사를 사용한 책만도 40여종이 넘는다”고 지적했으며, 남윤성 전 MBC충북 편성국장은 “직지 이전의 인쇄물이 발견된다면 직지 위상도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직지는 백운 스님이라는 고승이 흥덕사라는 절에서 편찬한 선종 문헌으로 불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럼에도 직지에서 불교색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은 편협함을 넘어선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청주시의회도 11월23일 박물관 명칭에 ‘직지’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기동 의원은 “청주와 직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박물관에 직지 명칭을 넣어 직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밝혔고, 김영근 의원도 “시민조사에서 70~80%가 직지라는 명칭을 쓰길 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커지자 고인쇄박물관 측은 “시민·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새 명칭은 명칭선정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12월23일 확정될 예정이다.
한편 고인쇄박물관은 흥덕사에서 직지라는 금속활자가 발견돼 건립됐으나 정작 불교색 배제에 주력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당의 모습을 복원했으나 현판이나 주련 하나 걸려 있지 않으며, 법당 바닥에는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점안식도 갖지 않은 부처님이 모셔져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전통체험을 한다며 청주 향교, 서울 창덕궁, 독립기념관 등을 돌아보고 전통옷 입기, 예절교육, 다례와 다식 체험, 전통혼례 관람 및 체험 등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정작 불교관련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고인쇄박물관의 명칭 논란을 계기로 직지의 정체성과 그 정신을 되찾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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