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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장성 백양사 사천왕문

기자명 법상 스님

언구로 나타낼 수 없는 부처님의 종취(宗趣)

‘선문염송’ 단하순 선사 게송 인용
부처님께서 많은 가르침 줬지만
중생은 본질 간파 못한 경우 많아
모든 것 떨치면 마음 맑게 깨어나

장성 백양사 사천왕문. 동정 박세림(東庭 朴世霖 1924~1975).
장성 백양사 사천왕문. 동정 박세림(東庭 朴世霖 1924~1975).

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峰前句未親 
瑞艸夢茸含月色 寒松蓊鬱出雲霄

영산회상언수보 소실봉전구미친 
서초몽용함월색 한송옹울출운소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8권 1261칙에 나오는 단하순(丹霞淳) 선사의 게송을 인용하였으나 오기가 많아서 그만 엉터리 주련이 되어버렸다. 이를 바로 잡아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峯前句未[形]
瑞草蒙茸含月[秀] 寒松蓊鬱出雲[靑]

영산회상언수보 소실봉전구미[형] 
서초몽용함월[수] 한송옹울출운[청]
부처님은 영산회상에서 말씀을 비록 하셨다고 하지만/ 소실봉(少室峰) 앞 달마대사는 언구를 나타내지 못했네.
상서로운 풀은 어지러이 우거져 달빛을 머금어 빼어나고/ 울창하게 우거진 찬 솔은 구름 위에 푸르도다.

단하순(丹霞淳)은 송나라 때 부용(芙蓉) 도해(道楷) 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조동종의 단하자순(丹霞子淳 1064~1117) 선사다. 현판의 낙관에 현각(玄覺)이라는 호(號)와 세림장수(世霖長壽)라는 표현은 동정 박세림(東庭 朴世霖 1924~1975) 선생을 나타낸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은 영축산(靈鷲山)을 국한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설법을 모두 가리킨다.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뒤에는 ‘비록’이라는 의미의 수(雖)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는 부사로서 어떤 범위의 제한을 나타내 ‘다만…하는데 불과하다’로 쓰였다. 부처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 말씀에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어리석어서 언어를 쫓아가기에 급급하여 그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알아차리려면 그다음 구절을 보면 된다.

소실봉(少室峰)은 소실산(少室山)과 같은 표현이다. 소실산은 달마대사가 면벽참선하였던 곳이다. 당시 중국에 흥성하던 교학은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큰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달마대사는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무제는 교리를 좇았으며 그 껍질만 맛보는 격이라 양쯔강을 건너 위나라로 건너가 소실봉에서 벽만 쳐다보며 9년간 수행했다. 이를 소실벽관(少室壁觀)이라고 한다. 달마대사는 언구로 부처님의 종취(宗趣)를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달마대사가 내세운 이러한 수행법으로 인하여 중국 천지에 처음으로 선(禪)이라는 수행법이 생겨났고 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방편설(方便說)이며 부처를 찾아가는 사다리와 같아서 그 목적에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 모두가 가진 참다운 마음을 회복하여 본래 그 자리로 돌려주고자 함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불성(佛性) 또는 진성(眞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심교(心敎)에 있기에 부처님은 응당 심왕(心王)이다. 그러한데 이 마음을 어찌 언설로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자내증(自內證)하라고 달마대사는 그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말 없는 말로 가르침을 주었다. 이것이 선종의 본지다.

서초몽용(瑞艸夢茸)은 상서로운 풀이 어지러이 무성한 모습이다. 서초는 곧 부처님 말씀을 뜻하는 것이고 어지러이 우거진 풀은 팔만사천법문이다. 달빛을 머금어 빼어나다고 하였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종지를 알아차리면 빼어난 진리를 알아차림이고 만약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팔만대장경은 한낱 고지(故紙)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다시 교학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한송옹울(寒松蓊鬱)은 소나무가 울창한 것을 말한다. 겨울 소나무 우거진 곳에는 오로지 소나무만 독야청청(獨也靑靑)함이다. 이는 선의 묘미를 드러낸다. 마치 체로금풍(體露金風)처럼 나뭇잎이 다 떨어져야 나무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렇듯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난 뒤에야 참모습이 드러난다. 이때가 되어야 마음이 맑게 깨어서 성성(惺惺)한 법이다.

중국어에서 운청(雲靑)은 군청색이다. 하늘과 땅 모두 벽해(碧海)가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중생 본연의 마음자리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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