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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둘기 - 상

연민과 지혜 갖춘 전생의 부처님

까마귀와 친해진 비둘기로 등장
까마귀가 인간 음식에 욕심내자
“음식욕심은 어리석은 짓” 충고
충고 거부한 까마귀는 죽임당해

비둘기(Kapota)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텃새이다. 수명이 약 20~35년 정도로 장수하는 새이며, 오랫동안 평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불렸다. 인도신화에서 비둘기는 죽음의 신 야마를 보좌하면서 올빼미와 함께 영혼을 사후세계로 운반하는 사자(使者)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어둠이나 불운과 연관된 불길함 때문에 인도인들은 비둘기고기를 먹지 않는다. 후대에 이르러 비둘기는 힌두교 쉬바의 신화에서 불멸과 관련된 긍정적 존재로 변화한다. 강력한 쉬바신은 불멸이지만 아내 빠르바띠는 필멸(必滅)의 여신이다. 빠르바띠의 간청으로 쉬바는 그녀에게 불멸의 만뜨라(mantra)를 알려주기로 한다. 깊은 숲 속 동굴로 들어간 쉬바는 바닥에 사슴가죽을 깔고 빠르바띠에게 만뜨라를 들려주는데 힘든 산행에 지친 빠르바띠가 잠들면서 이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깔고 앉았던 사슴가죽 아래 숨겨져 있던 알 속의 비둘기는 이를 듣고 불멸의 존재로 태어난다. 이는 비둘기자세(Kapotāsana)로 불리는 요가자세가 척추를 단련하고 강화하면서 영원한 젊음과 불멸을 가져다주는 기본자세로 꼽히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불교에서 비둘기는 부처님 전생이야기 중 ‘까뽀따 자따까’에 등장한다. 한때 부처님은 비둘기로 태어나 바라나시의 백만장자 거상의 부엌 천장에 달린 짚 바구니에 살았다. 생선과 고기 냄새에 이끌려 인간의 부엌에 도달한 까마귀는 비둘기와 우정을 맺어 부엌에 들어가 저 진수성찬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후 까마귀는 음식을 구하러 나서는 비둘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비둘기가 까마귀에게 왜 자신을 따르는지를 묻자 까마귀는 비둘기의 모든 덕행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본래 초식동물인 비둘기는 잡식동물인 까마귀가 자신을 따르는 것에 의문을 품지만, 비둘기가 잡곡을 먹을 때 자신은 옆에서 벌레를 먹는 것 외에는 모든 행동을 따르겠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비둘기를 좇아 까마귀가 거상의 부엌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이를 본 요리사는 까마귀를 위한 바구니를 하나 더 마련해준다. 어느 날 만찬을 위해 고기가 준비되는 것을 본 까마귀는 비둘기가 음식을 찾아 집을 나설 때 배가 아프다며 따라 나서지 않는다. 비둘기는 까마귀가 꾀병을 부리는 것을 알아채고 인간의 음식을 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욕심 많은 까마귀는 부엌에 남아 생선을 훔쳐먹는다. 이를 본 요리사는 화를 내면서 까마귀의 깃털을 뽑고 몸통에 생강, 소금, 커민, 요구르트 등을 발라 바구니 안에 재워놓는다. 한참 후 둥지로 돌아온 비둘기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까마귀를 보고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겠다며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이 ‘자따까’는 지혜로운 비둘기와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까마귀를 대비한다. 비둘기는 음식이 가득한 풍요로운 인간의 부엌을 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먹이를 구하러 들판으로 나간다. 새답게 비행하고 땅에 떨어진 곡물을 찾아 먹으며 자립적인 먹이활동을 한 후 둥지로 돌아와 안락하게 잠을 청한다. 또한 까마귀가 인간의 음식을 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위해 친절히 조언한다. 그리고 까마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 안락했던 공간을 포기하고 떠나버린다. 이에 비해 까마귀는 인간의 음식을 탐하고 친구를 속이며 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고기를 훔친다. 이 우화는 부처님이 제타바나에 계실 때 고집불통이고 욕심 많은 형제를 위해서 말씀해주신 전생이야기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를 듣고 어리석은 사람은 듣지 않는다(智人受諫 愚人拒違). 저 밝은 거울이 내 얼굴의 결점을 비춤과 같다. 그 허물을 보면 고쳐야 한다. 생각은 기틀을 아는 데 두어라. 어리석어서 고집 부리다 곤액(困厄)당해도 기댈 데 없다”고 한다. 사람의 눈은 스스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울을 빌어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묻은 티끌을 털어내듯이,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허물을 다른 이가 지적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니 귀 기울여야 한다. 비둘기의 가장 큰 지혜는 까마귀에게 해준 연민에 찬 진실된 충고이며, 까마귀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그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이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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