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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대종에는 세조의 ‘국운 융성’ 발원 담겨”

  • 교학
  • 입력 2021.12.19 13:45
  • 수정 2022.04.16 09:42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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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연구소, 12월18일 국립중앙박물관 학술대회
범종부터 편액, 목판, 전집 등…흥천사 공예사 전모 담아내
최응천 교수 “세조, 왕권 정당성 강조하고자 분사리 알려”
흥천사 화엄경소도 첫 조명…“귀진사본이 송광사본 모본”

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12월18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제1강의실에서 ‘600년 왕실 원찰 흥천사의 불교공예’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2018년 11월부터 흥천사 불상, 불화, 건축을 조명해온 한국미술사연구소가 공예를 마지막으로 흥천사 미술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은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님을 비롯해 수많은 연구자들 덕분에 흥천사가 조선 왕실의 원찰로서 위상을 되찾고 있다”면서 “밤낮으로 연구에 주력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은 “처음에는 불상·불화·건축만 기획돼 있어 금년으로 모든 작업이 마무리돼야 했지만, 흥천사 회주 금곡 스님과 주지 각밀 스님의 흔쾌한 배려 덕에 공예까지 다룰 수 있게 됐다”면서 “한 사찰의 미술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나눠 학술 연구를 시도한 것은 흥천사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의 기조발제로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시작됐다. 문 소장은 흥천사 대종이 ‘회암사 탑의 사리 분신’을 계기로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대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세조 7년(1461) 5월, 상서로운 치세에 회암사 탑의 불사리가 나뉘어 25과가 됐고, 왕과 왕비가 예를 올렸더니 사리가 다시 나뉘었으며, 이를 함원전으로 옮겼더니 한 차례 더 분신해 모두 102과가 됐다.

흥천사 대종 조성 계기가 된 회암사 탑 사리분신. 사진은 회암사 탑.
흥천사 대종 조성 계기가 된 회암사 탑 사리분신. 사진은 회암사 탑.

세조는 사리분신을 기념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 흥천사 사리전에 봉안할 불상 2구와 보살상 2구를 새롭게 조성하고, ‘능엄경’을 스스로 한역했다. 문 소장은 세조가 ‘능엄경’을 선택한 이유는 선종 본사였던 흥천사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 소장은 “능엄경은 선종 본사인 흥천사의 기본 경전이었고 송대부터 선종에서 근본 경전으로 중시해왔다”면서 “세조는 ‘능엄경’을 한역해 불교를 일으키고, 국운을 융성하게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문 소장은 흥천사 대종이 조성된 의미와 가치를 살리려면 범종이 흥천사로 돌아오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
최응천 동국대 교수.

세조가 사리분신의 의미를 유독 강조한 것은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분석도 제기됐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세조 때 유달리 사리 분신과 서상 출현에 관련한 기록이 집중되고 있는데 흥천사 대종도 같은 맥락”이라며 “세조가 왕위 찬탈의 정당성을 유포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15세기 범종은 주로 대규모로 제작됐다. 최 교수에 따르면 범종의 대형화는 조선 전기 왕권 강화와 관련이 있다. 유교적 지배 체제가 자리를 잡기 전이었기에, 조선 왕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상징할 기념비적 작품이 필요했다. 특히 ‘흥천사 대종’은 조선 전기 왕실 발원 범종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조성돼, 그 중요성이 매우 높다.

흥천사 대종은 당시 최고의 학자와 도화서 소속 화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금속 공예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또 명문을 통해 제작한 분업 상황이 각 직급·내용별로 상세히 알 수 있어 조선 범종의 제작과 주조 기술사에서도 더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범종 중심부에 있는 ‘합장형 보살입상’은 그 모습이 유려하고 세밀해 흥천사 대종 이후로부터 제작되는 조선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이 됐다. 
범종 중심부에 있는 ‘합장형 보살입상’은 그 모습이 유려하고 세밀해 흥천사 대종 이후로부터 제작되는 조선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이 됐다. 

양식적인 면에서도 주체성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당시 조선의 기술자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제작 기법을 전수받았고, 중국 사신들은 조선 장인에게 기물(器物) 제작을 주문하기도 했다. 흥천사 대종도 전체적인 양식은 중국 북방과 유사하지만, 한국 전통종의 특성도 함께 살리고자 했다. 최 교수는 “흥천사 대종을 통해 한국 전통미를 살리고자 한 조선의 관영 장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범종 상단에 있는 연곽과 연뢰에서 전통 양식이 두드러진다. 또 범종 중심부에 있는 ‘합장형 보살입상’은 그 모습이 유려하고 세밀해 흥천사 대종 이후로부터 제작되는 조선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이 됐다. 

이용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이용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흥천사 소장 목공예품의 제작 시기를 탐색한 연구도 발표됐다. 현재 흥천사 불교 목공예품은 극락보전의 불패(2점), 만세루의 목어(1점)와 경함(1점), 명부전의 불연(2점)이다. 이용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목공예품의 양식적 특색과 흥천사 전각 불사 시기를 관련 지어 제작 시기를 추정했다. 이에 이 학예사는 “흥천사가 1794년 현재 위치로 사찰을 옮긴 후 여러 차례 진행된 전각의 중창과 중수 과정에서 목공예품들이 새롭게 조성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학예사는 극락보전의 ‘불패’가 삼존상 개금과 불화 조성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1867년에, 또 ‘목어’는 대방의 중창·중수가 있었던 1865~1908년 사이에, ‘불연’은 명부전 중수시기인 1894년에 조성됐을 것으로 보았다. 새로운 재료인 유리를 활용해 제작한 ‘경함’은 정면에 주서로 쓴 명문을 통해 1918년 ‘화엄경’을 보관하고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양균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김양균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흥천사는 서울 지역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현판을 보유하고 있다. 김양균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흥천사 극락보전·명부전·대방·독성각·종각·관음전 등 전각에 있는 36건의 편액·현판을 분석한 후, 편액·현판의 양식적 특징을 체계화했다. 특히 김 연구관은 서자(書者)을 알 수 있는 편액 가운데 대다수는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강조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체는 당시 유행했던 설암 풍의 한석봉 대자 해서와는 달리 횡세와 수세가 아주 강조된 고예풍을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의 서체는 당시 유행했던 설암 풍의 한석봉 대자 해서와는 달리 횡세와 수세가 아주 강조된 고예풍을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은 정치적으로 불운했던 청년기에 추사 김정희로부터 서화 지도를 받았다. 또 1805년 흥천사 중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김 연구관은 “흥천사 대방 건축 전면에 걸려있는 편액은 묵직한 추사체 예서가 그대로 반영된 편액”이라며 “당시 유행했던 설암 풍의 한석봉 대자 해서와는 달리 횡세와 수세가 아주 강조된 고예풍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흥선대원군은 김정희 예술의 정수를 습득한 묵란화가이자 서예가로서, 원찰에 편액을 하사해 서예적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고, 고졸하고 중후한 필적을 추구하며 왕실 사찰인 흥천사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영일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배영일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마지막 발표는 배영일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었다. 배 연구실장은 흥천사 소장 귀진사간 ‘대방광불화엄경소’를 다뤘다. 그간 화엄경소는 15~17세기 제작된 ‘용복사본’과 ‘송광사본’을 중심으로 설명돼 왔지만, 배 연구실장이 이날 처음으로 흥천사 소장 귀진사간 화엄경소를 연구, 발표해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황해도 서흥 귀진사에서 1556~1564년 8여년에 걸쳐 이뤄진 화엄경소 판각·간행에는 당시 전국의 대표 사찰의 주지부터 황해도 서흥의 하급관리, 주민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 목판에서 간행된 인본은 현재 동국대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흥천사·범어사·법주사·통도사·직지사·청계사 등 사찰에 소장돼 있으나 120권40책을 온전히 갖춘 곳은 없다. 다만 흥천사가 비교적 전질에 가까운 판본을 양호하게 보존하고 있다.

배 연구실장은 흥천사 소장 귀진사본을 기준으로 100년 뒤 제작된 송광사본 화엄경소 변상도를 비교해, 양식 변화를 분석했다.
배 연구실장은 흥천사 소장 귀진사본을 기준으로 100년 뒤 제작된 송광사본 화엄경소 변상도를 비교해, 양식 변화를 분석했다.

이에 배 연구실장은 흥천사 소장 귀진사본을 기준으로 100년 뒤 제작된 송광사본 화엄경소 변상도를 비교해, 양식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송광사본은 귀진사본 변상도를 충실히 반영해 조각하면서도 경패, 구름문, 여백활용, 인물 표현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면서 “귀진사본은 선을 최소화해 여백을 적극 활용한 반면, 송광사본은 선이 유려하면서도 조밀하게 조각해 화면을 빈공간 없이 구성했다”고 전했다.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

토론자로는 손영문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박상준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 주수완 우석대 교수, 고승희 동국대 교수가 참여했고, 김정희 원광대 교수와 방병선 고려대 교수, 정병모 경주대 교수가 사회자로 나섰다. 김창균 동국대 교수는 본격적인 주제 발표에 앞서 개회사를 했다.

손영문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손영문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정병모 경주대 교수.
정병모 경주대 교수.
고승희 동국대 교수.
고승희 동국대 교수.
방병선 고려대 교수.
방병선 고려대 교수.
주수완 우석대 교수.
주수완 우석대 교수.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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