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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크리스티안 보르스틀랍의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끝)

기자명 박사

끝과 시작의 자리, 삶 원칙을 돌아보다

삶을 그림‧짧은 문장으로 설명
각각의 삶이 다르지만 비슷해
누구도 혼자만 행‧불행 불가능
끝‧시작 겹치는 때에 돌아봐야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끝이고, 시작이다. 있는 그대로 보면 시작도 끝도 없다지만, 매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의식을 치르며 우리는 대나무처럼 단단한 매듭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올해는 대선도 겹쳐 연말의 들썩임이 한층 더한 느낌이다.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을 가다듬고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 이 시간을 얼마나 잘 치러냈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원칙은 간명하다. 생활은 단순하고 몸과 마음은 고요한가. 짚어보면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그런 면에서 ‘자애경’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을 들려준다. 

“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거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다랗거나 커다란 것이거나 중간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이미 생겨난 것이나 생겨날 것이나/ 모든 님들은 행복하여지이다.” 

‘자애경’은 우리에게 시선을 들어 더 넓은 곳을 보라고 말해준다. 오직 자신과 가족만 위하는 일에 몰두하던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보다 넓고 그보다 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네덜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작가가 쓴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는 자신이 이해한 삶을 신선한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설명한다. 읽다보면 ‘자애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는 말한다. “살아가는 것은 아주 거대할 수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을 수도 있어.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모습의 삶들이 있지. 새로운 생명은 날마다 나타나니까.”

그 수많은 생명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가. 고통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할 것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힘을 준다. 

“삶은 또 다른 삶을 만드는 거야. 보고 알고 숨 쉬는 것이기도 하지. 살아가면서 우리는 움직이고, 감정을 느끼며, 어떤 때는 주고, 또 어떤 때는 받아.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야. 살아간다는 건 살아남는 것이기도 해. 그러려면 어떤 때는 아주 조용히 있어야 하지만 어떤 때는 큰소리칠 줄도 알아야 하지.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하고, 때로는 도망쳐야 해”라고 그가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각각의 삶은 다르지만 또한 비슷하다는 것을.

한동안 인터넷을 돌아다녔던 경구가 있다.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힘든 전투에서 싸우고 있으므로, 친절하게 대하라”는 말. 자신의 고통을 감추고 멋지고 아름다운 면만 열심히 드러내거나 혹은 누가 더 고통 받는지 경쟁적으로 떠들어대던 행태를 반성하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자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다른 존재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와 남이 다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이유를 말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단 하나.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삶은 함께하는 거야. 모든 삶은 이어져 있거든. 주위를 한번 살펴봐. 얼마나 많은 삶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이들이 행복해야 하고, 다른 이들의 행복은 내 행복이 된다. 서로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혼자서만 행복하거나 불행할 수는 없다. 이 진리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간. 그렇기 때문에 끝과 시작이 겹치는 이 시기는 의미가 있다. 원칙을 돌아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므로.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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