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 비둘기 - 중

백유경 비둘기가 준 소탐대실 교훈

싸움 회피 능력이 발달했으나
공격성 발휘되면 자제력 잃어
비둘기에게 둥지 안락하지만
사로 잡히기 쉬운 공간이기도

비둘기는 전 세계에 분포하는 대표적 텃새이다. 텃새 중에서 까치가 참새를 쫓아내는 사나운 성격이라면, 비둘기는 참새를 괴롭히지 않고 공존하는 온순한 성격이다. 최근 연구에서 비둘기가 붉은털원숭이와 유사한 지능을 가졌고, 숫자를 셀 줄 알며, 먹이를 준 인간의 얼굴을 구분할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점은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가 ‘솔로몬의 반지(King Solomon’s Ring)’에서 말한 비둘기의 특성이다. 비둘기는 본능적으로 싸움을 피하는 회피능력이 발달하여 자연 속에서 충돌없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공격적 본능이 발휘되면 이를 통제할 자제력이 없다. 평소 동족의 깃털 하나 뽑지 못하던 비둘기도 좁은 새장에 가두거나 한정된 공간에서 싸움이 붙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몰아붙여 쪼아대고 껍질까지 벗긴다고 한다. 개체 간 영역이 확보되는 자연공간에서 가장 평화롭지만 도망칠 공간이 없거나 위기상황에 도달하면 판단력을 잃고 극단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비둘기의 특징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불교경전에 있다. ‘백유경(百喩經)’의 이합유(二鴿喩), 두 마리 비둘기[鴿]의 비유이다. 옛날에 암수 한 쌍의 비둘기가 나무 둥지에 살았다. 비상시에 먹을 음식을 둥지에 채우기로 하고 열심히 과일을 모았지만 쌓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수컷은 암컷을 의심하고 성을 내며 왜 과일을 먹어치웠는지 추궁했다. 암비둘기는 “나는 혼자 먹지 않았다. 과일이 저절로 줄어든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하지만 수비둘기는 이를 믿지 않고 분노에 차 결국 부리로 암비둘기를 쪼아 죽인다. 며칠 후 큰 비가 내리자 건조해져 말라버렸던 과일이 습기로 부풀어 올라 둥지를 가득 채웠다. 그것을 보고서야 수비둘기는 비로소 후회하며 “암비둘기가 먹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도 내가 망령되게 그녀를 죽였구나”라고 슬프게 말하며 암비둘기를 찾았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에도 대동소이한 이야기가 전하는데, 어리석음[愚癡]으로 무고한 동류(同類)를 죽인 후 뉘우치고 근심하는 내용이 좀 더 상세하게 나타난다. 한 쌍의 얼룩비둘기(Columbidae)는 비바람 때문에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 둥지에 과일을 저장하기로 한다. 수비둘기는 과일이 건조해지면 쪼그라드는 것을 모르고 암비둘기가 먹어치운 것이라 의심하며 다툼을 벌이다가 끝내 죽이게 된다. 이 비둘기 이야기는 성난 마음에 왕비를 죽인 왕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실제로 비둘기는 일부일처제를 지키며 자신의 짝에게 매우 헌신적인 새이다. 그렇기에 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를 죽이고 그리워하며 뼈저리게 후회하는 비유에 적절한 동물이다. 이 우화는 경전에서도 ‘작은 성난 마음[小瞋心]’을 위하여 ‘큰 이익[大利]’을 잃은 이야기라는 부가설명을 붙여 풀이한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는 곤(鯤)이라는 엄청난 물고기가 붕(鵬)새로 변신하는 유명한 우화가 있다. 여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이 모든 변신을 지켜보는 것이 비둘기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평생 머무는 비둘기는 미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비행하려는 붕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애써 가꾼 편한 공간을 벗어나려는 붕새의 행동을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비둘기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상징한다. 열심히 과일을 저장하는 경전 속 비둘기의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비둘기 둥지는 안락하지만 동시에 좁은 공간이다. 순간의 성내는 마음에 사로잡히기 쉬운 공간이다. 비둘기가 사랑하는 이를 죽이는 분노의 불은 짧고 강렬하다.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 “분노는 잘 익은 곡식을 못 쓰게 만드는 우박과 같고, 모든 계율을 깨는 타는 불과 같으며, 법의 다리를 부수는 큰 도끼와 같다”고 말한다. 분노는 정성스럽게 만든 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힘이다. 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자신의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어리석음을 자책하는 긴 후회와 한탄만 남길 뿐이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