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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앉던 자리 반대편에 앉아서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02.21 16:10
  • 수정 2022.02.21 16:13
  • 호수 1621
  • 댓글 1

귀찮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좋은 일 있어도 힘이 나지 않아
고집하던 것 내려놓는 것만으로
상상치 못한 새로움 경험할 것

이른 시간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명상센터에 앉아 있습니다. 불도 켜고 블라인드도 올리고 따뜻한 물 한잔에 노트북을 켭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려고 잔잔한 음악도 켰습니다. 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날까요. 오늘은 늘 앉던 자리 반대편에 앉았습니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보이는 것, 느껴지는 건 전혀 다릅니다. 입장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10여 년 전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신 분이 우리 절을 방문하신 적 있습니다. 그분에게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절의 분위기를 좋게 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그것은 어렵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과한 욕심을 부렸다는 걸 그제야 깨닫습니다. 안쓰러웠는지 한 마디 더해 주십니다. “가구 위치를 한 번씩 바꿔 보세요. 그러면 새로운 기분이 들 겁니다.” 귀가 번쩍하고 가슴이 쿵 울리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사소한 움직임으로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요. 

어제는 공양간에서 한동안 뵙지 못하던 분이 봉사하고 계셨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인사도 하고 싶어서 살피니 얼굴빛이 해를 보지 않고 지낸 표정입니다. 뭔가 칭찬할 것이 없을까 찾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보다 피부가 희고 예뻐지셨네요!” 사실은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아파서 몇 개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그럴 때 말이라도 하시죠.” “만사 귀찮아서 그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됩니다. 귀찮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분께 내일부터 한 달만 매일 절에 부처님 뵈러 온다 생각하고 법당에 오셨다가 가시면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고 달랬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없으시더니 그렇게 해 보시겠다고 합니다. 오늘이 기다려지네요. 절에 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해서 글을 쓰면서도 절 입구를 봅니다. 어떻게 해야 좌절하고 낙담하고 지치고 우울할 때 극복할 수 있을까. 힘겹지만 그래도 작은 변화를 시도하면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늘 앉던 자리의 반대편에 앉아 보고, 창문을 더 넓게 열어서 많은 공기를 만나는 것으로도 새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겨 가는 것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번뇌가 있을 때를 중생이라고 하고 번뇌에서 벗어났을 때를 부처라고 합니다.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은 고집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고집하지 않는 마음자리로 옮겨 보는 것입니다. 몇 분의 시간도, 1미터의 공간도 필요치 않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신속하게 옮겨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착하다고 믿는 것들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해!’ 선한 생각이지만 이것을 너무 고집하고 절대시하면 나의 삶은 한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결국, 힘들어하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반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반대쪽 입장에 앉아 보는 겁니다. 상상이라도 좋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힘들어할까? 내가 꼭 돌보아야 할 만큼 그에게 나의 도움이 절실할까?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의 절대적인 신념에서 잠시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균형을 잡게 됩니다. 최근 수개월 저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물러난 것이 낭떠러지까지 밀린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막다른 방법으로 멈추긴 했어도 그 과정은 힘들었습니다. 

하림 스님
하림 스님

나는 어떤 신념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의 반대편에 꼭 한 번 가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집으로 보지 못했던 반대편의 세상이 더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 보길 권해 봅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21호 / 2022년 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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