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에 다녀왔다. 개막식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과 차드 맹 탄 구글 명상지도자와의 대담이 있었다. 먼저 차드 맹 탄의 강의가 20분 정도 진행됐다. 차드 맹 탄은 자신이 어떻게 구글에서 명상 지도를 하게 되었고 현재 명상지도자로서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공유했다. 행사 전 대기실에서 잠시 차드 맹 탄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사람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그는 매우 부드럽고 친절하며 겸손했다. 대화 중에는 위트와 함께 늘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강의하는 현장에
언제나 중랑천 하구 일대가 골칫거리였다. 평평하게 넓고 낮은 땅에 합쳐지는 물길이 많아 큰비만 내렸다 하면 범람하는 그곳. 인명 피해를 막고자 다리를 세우려 해도 번번이 실패하던 끝에 성종 때 어느 스님이 자처하여 무리를 이끌고 만들어낸 것이 ‘살곶이 다리’라는 이야기를 지난번 글에서 소개했었다.(‘8. 스님의 교량 제작’ 참조) 그런데 이 지역 지세의 어려움은 여기에 다리 하나 세우는 것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중종 23(1528)년 다음과 같은 사복시(司僕寺)의 건의가 있었다.“전관(箭串: 살곶이)의 견항(犬項)은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화’가 많다는 것이다. ‘화(anger)’라는 에너지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잘 다루지 않으면 큰 문제를 일으킨다. 잘 돌보고 다스리며 치유해야 할 우리 마음의 약한 고리이다. 화는 표출해도 문제이고 억압해도 문제이다. 그러면 이 화를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 현대인이 풀어야 할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이 ‘화’라는 이슈이다. 자애 선정인 자심해탈(慈心解脫, Mettā-cetovimutti)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자애를 일으켜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행운이 내게 오기를 바라지 않고 살았다만약 행운이 안기면 졸도하고 말 거다나비가 내 집에 들어왔다꽃을 마다하고 나를 찾아오다니반갑기는 하나 줄 것이 없었다잠시 머물다 지친 몸으로떠나기에 나비 뒤를 따라그가 가는 숲속을 따라갔다불행하게도 나비는 거미줄에걸려버리고 말았다생이란 언젠간 몸을 바쳐야 하지만차마 참상을 볼 수 없어 돌아서고 말았다저것이 어찌 나비만의 일인가나도 평생 그물망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사각(四角)의 방에 갇혀 사느니(‘시와 소금’ 38호, 2021년 여름호)행운이 저절로 오기를 바라지 말고 살자. 시인은 그렇게 살
한국 고대 사회에서 사찰은 대중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보유한 대표적인 곳이었다. 각종 불교의례를 집행하기 위해 사찰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승려들이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주거지와는 달리 공간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왕래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찰 내에서 지켜야 하는 계율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그 가운데 ‘사분율’은 비구가 지키는 250계와 비구니가 지키는 348계가 기록된 승려의 근본계율로서, 사찰 생활의 준거틀을 제공하였다. 현전하는 신라 승려의 주석서 명칭을 분석해 본 결과에 따르면, ‘범망경’과 ‘
지금 필자는 ‘화엄경’ 구성작가가 ‘화엄경’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기존의 어떤 이야기 재료를 활용했느냐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인가이다. 먼저, 갖추어진 ‘화엄경’ 출현은 중국 동진 시절 불타발타라에 의해 421년 번역된 60권본이다. 이 책에 주석을 붙인 당나라 현수 법장 스님은 ‘화엄경전기(華嚴經傳記)’의 ‘지류(支流)’편 속에, 쪼가리 경전들이 있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60권본의 ‘명호품’에 해당하는 ‘도사경’이 있었다고 한다. 이 경전은 후한(後漢) 월지국 사문 지루가참 스님이 1
미륵의 후예들이 우리에게 애써 가르쳐주려 했던 비밀스런 의미들 중에 가장 앞자리에 놓일 테지만, 우리가 정말 별것 아닌 듯이 생각하는 것이 있다. 철학에서는 그것 자체를 하나의 신비한 일로 여김에도,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기에 우리 눈앞에 그 신비의 베일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뜨겁지 않은 불’이라는 아리송한 제목으로 잠들어 있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보았다. 또 ‘그것이 뭘까’하는 의문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에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그것의 정체를 밝히겠다. 아마도 몇 개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
① 마조의 출가= 마조(709~788)는 고향 마을에 위치한 사천성(四川省) 시방현 나한사에 출가했다. ‘송고승전’ ‘마조장’에 의하면, 마조는 사천성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머리를 깎고, 유주의 원율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여기서 당화상은 처적(處寂)을 말하는데, 신라인 무상대사가 법을 받은 스승과 동일한 인물이다. 마조는 구족계를 받은 후 사천성 익주 장송산·호북성 형주 명월산 등지에서 산거(山居) 수행하였다. 이렇게 수행하다가 호남성(湖南省) 남악산(南嶽山)으로 건너간다. ‘남악’은 중국에서 명명하는 오악산(五嶽山)
화려한 수식이 돋보이는 위대한 희생 이야기 하스티(코끼리)본생은 아리아 슈라(Ārya Śūra, AD 1~3세기)의 ‘자타카말라’에 전한다. 아잔타 16, 17굴에 그려져 있다. 한 코끼리가 매력적인 숲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더 이상 다른 곳이 생각나지 않는 곳에 보금자리를 가졌다. 그 숲에는 꼭대기에 잔가지들과 꽃들과 열매들을 장신구처럼 달고 있는 싱싱한 나뭇가지들을 가진 훌륭한 나무들이 많았다. 숲의 바닥은 다양한 종류의 관목과 풀들로 가려졌다. 야생 동물들과 깊은 호수가 있는 그곳은 산마루들과 산 정상의 평지들로 둘러쳐졌다.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이항하사등신명보시 약부유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기복심다(其福甚多)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항하수 모래와 같이 많은 목숨을 보시하였더라도,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말해준다면, 목숨을 살려주는 복보다 더 큰 복이라 할 것이다.”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금강반야바라밀과 여래(如來)는 법신처(法身處) 즉, 법(法)의 몸이 있는 그곳을 이름한다. 그러나 법이 이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 나는 소위 애기풍년 시대인 586세대다. 미군의 지프가 신작로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지프를 뒤따랐다. 미군들은 초콜릿을 던져 주거나 큰 소리로 뭐라 하곤 했다. 우리는 그저 생전 처음 보는 지프가 신기했고 구름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가 재미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콜릿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동정이었고 큰소리는 욕지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은 정성을 다해서 태극기를 그렸다. 천으로 된 태극기가 귀하던 시절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
출가 전의 일이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을 읽으면서 출가라는 결정에 앞서 인도로 향했다. 스님은 책 속에서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으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주셨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지 녹야원까지 천릿길을 맨발로 걸어가 전법 하셨음을 잔잔하게 그려주셨다. 첫 순례길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보드가야대탑에서 신발을 벗고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갔던 경험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맨발로 부처님이 걸었던 대지를 걷는다는 감격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수행하셨고, 길 위에서 전법하셨으며, 길
올해 봉축표어는 ‘마음의 평화,부처님 세상’이다. 예경은 향, 등, 초, 꽃, 쌀, 차 등 6법 공양으로 시작하며, 그 중 하나인 등공양은 탐·진·치 삼독심에 빠진 중생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의 위신력을 빌어 어둠(無明)을 밝히고 미래로 나가기를 발원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의하면 등불의 심지는 믿음이요 불빛은 공덕심이니, 자비심으로 등잔에 불을 붙이면 그 공덕의 빛으로 삼독심(탐·진·치)을 녹이고 어리석은 마음을 밝혀준다. 정부가 올해부터 부처님오신날도 대체휴일에 포함하면서 5월27일부터 3일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에서 세계전통종교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참석하는 동안 여러 인터뷰를 했다. 그 중 카자흐스탄의 어느 한 기자가 “종교와 국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당시 필자는 “국가는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해야 하고 국가의 권력과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답변만 짧게 남기고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자는 당시 행사 기간뿐 아니라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온다.과거 왕정(王政)이나 신정(神政) 체제의 나라에서 종교의 다원주의와 독립성은 생각하기
▶불교는 철학적으로 일관성이 없는가불교·환경주의에 대한 세 번째 반대는 불교의 ‘공성(śūnyatā)’과 ‘자연의 본질적 가치’ 관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으로부터 나온다. 공성은 초기불교의 무아론(anātman)이 확장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아론이 인격적 정체성의 바탕이 되는 실질적 자아나 영혼과 같은 것을 부정하는 개념이라면, 공사상은 이러한 추론을 각종 경험의 모든 실제(entity)와 모든 국면에 적용함으로써 모든 현상은 형이상학적 실질성(substantiality)이나 본질적 실재성(reality)을 갖고 있지 않다
대승 구성작가가 이야기를 꾸며감에는 당연하겠지만 과거 기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본 연재에서 다루고 있는 ‘10지(地)’ 사상도 그렇다. 실존 인물 석가모니가 죽고 난 뒤, 신앙심이 돈독한 제자들은 그를 신격화시켜, 각 부파들은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담(本生談, Jātaka)’을 다투어 만들었다.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던 고대 인도인들의 서사문학(敍事文學) 전통과도 밀접하다. 이런 증거는 경전으로는 수나라 시대에 번역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속에 두드러지고, 남방의 ‘쿠따카니카야; Kuddaka-Nikā
한국의 선에서도 ‘다선일여(茶禪一如)’나 ‘다선일미(茶禪一味)’를 말한다. 다도를 열었다는 초의(艸衣)가 있지 않은가.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최초의 다서(茶書)는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아닌가. 아니, “차 한 잔 하시게(喫茶去)”라는 조주의 유명한 공안이 차와 도, 차와 선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면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해야지!”라는 조주의 공안을 들어 설거지가 바로 도이고, 설거지가 바로 선의 종지와 하나라고 해야 한다. 조주의 공안에서 차는 선이나 도를 표상하는 특별한 대상이
① 현 중국에서의 마조 현창운동필자는 10여년 전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고향·출가지·개법(開法)한 곳·선풍 전개한 곳 등 행적지를 순례했다. 마조가 선풍을 펼친 강서성(江西省) 홍주 개원사[현 우민사]는 당시 중국불교협회 회장인 일성(一誠, 1926∼2017)방장이었다. 일성은 마조가 열반한 사찰 보봉사(寶峯寺, 강서성 정안)의 방장을 겸임했으며, 마조 관련 사찰들을 복원 불사하였다. 또 일성은 마조의 고향인 사천성(四川省) 시방현(什方縣)에 마조사를 복원하고, 마을 전체를 마조 성지로 만들었다. 필자가 그곳을 순례
‘능가’ 그곳은 도달할 수 없는 곳, 난입(難入)의 경지라 했다. ‘능가경’에서는 그곳이 바로 여래의 자리이며, 설법의 자리이다. 그렇다면 그 법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길 없는 길을 나아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가? ‘능가경’은 그 뜻과 이치가 심오하고 언어가 정묘해서 경전 중에서도 난해한 경전으로 꼽히며, 그 요의를 체득하기가 마치 능가성에 오르는 것과 같이 어렵다. 세존과 대혜보살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답 속에서 망과 진의 근원이 모두 마음임을 교설한다. 이때 언어와 진리 사이에 끊어진 길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
이번 3월에는 ‘법화경’의 ‘방편품’ 독송을 고담선원 신도님들과 열심히 하고 있다. 매달 한품씩 바꿔가면서 하는 기도를 혼자 해왔다면 분명 중간 중간 나태한 마음을 낼 수도 있었을텐데, 지난 7년간 신도님들이 함께 하셔서 독송 기도를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 분들이 바로 나의 스승이자, 신심의 나무가 계속해서 자랄 수 있게 보호해 주는 호법 신장님들이시다.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불법을 잊지 않고 함께하는 신도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방편품’ 맨 앞장에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