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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는 우리국민 중심의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기자명 진원 스님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 나는 소위 애기풍년 시대인 586세대다. 미군의 지프가 신작로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지프를 뒤따랐다. 미군들은 초콜릿을 던져 주거나 큰 소리로 뭐라 하곤 했다. 우리는 그저 생전 처음 보는 지프가 신기했고 구름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가 재미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콜릿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동정이었고 큰소리는 욕지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은 정성을 다해서 태극기를 그렸다. 천으로 된 태극기가 귀하던 시절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에 묶어 대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삽작문에 걸었다. 태극기를 걸던 날들은 기쁜 날보다는 무언가를 굳게 다짐하고 비장했던 날들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가난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특히나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안된 시기였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가난은 당연한 것이었고, 국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보니 우리는 가난과 함께 분단의 슬픔을 대물림 받았고, 일제36년의 통한의 역사는 독립투사와 같은 감정을 지니게 만들었다. 이 두 가지는 우리 민족이 지닌 숙제이자 휘발성이 아주 강한 역사다. 그래서 얼마 전 3.1절에는 SNS에 유관순이 형형색색 저고리와 통치마를 입은 모습과, 안중근이 멋진 양복을 입은 그림을 그려 올렸다. 꿈 많은 16살 소녀와 미래로 가득한 20대의 청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최근 대통령이 보여준 일본과의 외교로 60% 넘는 국민들이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느낀다고 한다. 구체적인 부분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통령의 일방소통은 도저히 이해도 설득도 되지 않는다. 자국민인 피해자를 편들지 않고 일본국민에게 더 정성을 들인 듯해 공감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와 주권은 양보의 문제도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특히나 대통령이 통크게 대승적으로 결단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일본은 야만적인 범죄의 가해자이며, 우리는 피해자라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형식적이라도 여러번 사과했으니 이제 퉁치자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 봤을 때 독일은 지금도 여전히 사과와 반성을 표명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강제진용의 피해자도, 위안부피해자도 엄연하게 생존해 있다. 당사자들에게 사죄하지 않는 가해자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다. 죄를 지었으면 당사자에게 사죄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잘못했으니 옆 친구에게 전해 달라고 한다거나 말로만 반성한다면 피해자를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다.

혹자는 미래를 위해 그만 따지자고 한다. 36년간 온갖 만행으로 바로 윗대 할아버지와 선배들을 수탈하고, 괴롭히고, 전쟁터 위안부로, 머나먼 나라의 노역에 강제로 끌고갔다고 생각을 해보라. 그래서 반성과 사과는 참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참회는 ‘懺(참)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다’ ‘悔(회) 뉘우치다’ 이다. 참회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신구의 삼업으로 참회하며 미래에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겠다는 행동강령을 지닌  진정한 반성이다.  

일본은 대통령이 통크게 퉁치고 온 며칠도 되지 않은 시점에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일본국토로 표기하고, 강제징용을 자발적으로 돈 벌러 일본에 온 사람들 쯤으로 기억시키려하고 있다. 죄의식마저 벗을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불교 정서가 강한 일본은 불교적인 참회가 필요해 보인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진심으로 참회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정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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