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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야 불교명상

불교가 불교다운 지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현실의 삶에서 바로 행복을 찾아 나가는 그 현실성에 있다.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라는 걸출한 명상의 스승을 떠나 고타마 싯타르타가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명상 속에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삶 속에서 행복한 길이었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리라. 그렇기에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불교의, 불교다운 명상이 있다. 서로서로 보완되어 비슷해져 가는 측면이 있겠지만, 인도 전통적인 요가의 명상은 모든 감관을 차단하고 오롯하게 나의 의식만이 독존하게 하여, 거기서 나와 브라만의 일치[梵我一如]를 체험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불교의 명상은 깨어있음과 고요함을 함께 유지하여, 현실에 정확하게 반응하는 그러한 명상이다. 전자가 눈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꿈쩍도 않는 몰입이라면 후자는 십리 밖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역력히 듣는 명상이다. 그러하기에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 명상을 유지하고, 바로 거기에서 행복을 찾는 데 가장 큰 장점을 가진 것이 바로 불교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열어젖히신,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새로운 행복 추구의 길이다. 그 물꼬를 더욱더 크게 터서 확장하고, 그것이 거센 흐름이 되어 온 인류가 거기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소명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이 그렇게 터놓으신 물꼬가 메말라가는 작은 실개천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좀 심한 말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불교가 종교라는 영역 안에 틀어박혀 현실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등한하거나, 우리 현실의 삶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반성에서 나오는 말이다. 특히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유교라는 그 지역 토착의 강점을 가진 뛰어난 사상과 맞부딪히고 나서는, 현실을 이끌어가는 규범의 제시를 통해 현실에서 바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런 영역은 유교에 양보하고 종교적인 심성을 끌어잡고, 내면의 수양에 초점을 맞추는 반쪽짜리 종교가 되어버린 혐의가 있다. 가장 현실에 충실하고,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 귀중한 물꼬는 막히고, 마음속에서, 선정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경향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불교는 마음 닦는 일을 사업으로 삼는데, 우리 유교는 사업을 통해 마음을 닦는다(佛氏治心之法 以治心爲事業, 吾家治心之法 以事業爲治心)”하고 비판한 말을 읽었을 때 불자로서의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가장 현실을 바꾸는 데 뛰어나야 할 불교가 어찌 이런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그 비판이 터무니없다고 반발하기도 힘든 불교 역사의 증거들이 있기에 더더욱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러한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할 때이다. 중국에 처음 전래되어 왔을 때와 달리 유교라는 강력한 토착적인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불교가 토착 사상이다. 외세를 업고 온 새로운 종교에 대응하면서, 불교적인 규범을 새롭게 제시하여 우리 현실을 이끄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명상법도 정말로 불교다운 명상법을 꾸준히 개발하여, 고요하면서도 깨어있는 활발발한 마음이 현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도록 하여야 한다. 

달라이라마라든가 틱낫한 스님 같은 분들은 바로 그런 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 한국적인 명상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노력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러한 세계적인 선구자들과 우리나라의 개척적인 노력들이 이어질 때, 불교다운 명상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그것이 바로 우리 현실의 삶 속에서 행복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오랜 질곡의 역사를 견디어 오면서 길러온 잠재력이 있고, 가장 배타적인 개신교와 부딪히면서 쌓아온 저력이 있다. 우리의 노력이 쌓이고, 어떤 전기가 주어지면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가는 운동으로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한류명상, 한류불교라는 이름으로!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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