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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하고 음미하는 삶

기자명 효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02.28 15:32
  • 수정 2022.02.28 15:33
  • 호수 1622
  • 댓글 0

완벽 추구에 뒷전 밀린 행복
만족스런 삶 선사 ‘핵심 가치'
서원으로 만들면 기억 쉬워
힘들 때 떠올리면 행복 발견

SNS에서 명품을 자랑하던 금수저 인플루언서가 사실은 인생도 소장품도 모두 가짜였다는 뉴스가 연일 포털 상위에 노출됐다. 그 배후에 기획사까지 있다 한다. 그녀의 인생을 거짓으로 꾸며 한탕하려던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데 마음 한쪽이 씁쓸해져 온다. 벌거숭이 임금님과 그 백성들이 안데르센 동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약이 심할 수 있지만 요즘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너도 나도 ‘남들보다 빠르게, 더 많이’가 삶의 기준이 된 듯 싶다. 속도와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자신의 보폭을 잃어버린 삶에는 불안, 우울, 불면, 소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뿌리 내리지 못한 삶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부유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일상에서 마음이 밖으로 치달릴 때 하던 일을 멈추고 호흡과 함께 머물러 보면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인간으로서 우리 존재는 완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추구하느라 또 남들에게 비춰질 모습을 신경 쓰느라 행복을 뒷전으로 미룬다. 그러나 내가 숨 쉬는 지금-여기를 외면할수록 가슴은 공허해지고 몸은 서서히 지쳐간다. 어떻게 해야 삶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진짜로서’ 살아 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신체적, 정서적 기본욕구들 못지않게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핵심가치’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삶들이 의미를 찾지 못해 스러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의미 없는 삶에는 생명력이 없다. 그러니 삶의 핵심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일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 요소다. 그것은 영혼과 정신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당신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정직함? 용기? 관대함? 영적 성장? 평온함? 일과 삶의 균형? 만일 사는 것이 너무 바빠 삶의 가치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면 잠시 시간을 갖고 자신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정답이란 없다. 만일 인생의 저 끄트머리에서 지나온 날들을 찬찬히 되돌아 본다면 삶을 이어준 하나의 끈은 무엇이었다 말하게 될까. 쓰러지고, 방황하고, 비통함에 젖은 당신을 다시금 일어서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핵심가치는 마치 깊은 밤 북극성이나 등대처럼 우리만의 길을 안내해 준다. 원하는 목표를 이룬 뒤에도 다시금 우리를 이끌어준다. 시간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으며 여전히 생동감을 주는 ‘본질을 추구하는 삶’은 행복을 음미하게 해 준다.

여기 가족과의 연결이 중요한 사람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 소위 잘 나가는 직장 취업도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는 그 사람의 속사정은 그리 편하지 않다. 성공과 성취보다 가족과 함께 보낼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 그저 괴로울 뿐이다. 그렇게 계속되는 스트레스는 결국 가족에게 짜증 섞인 반응으로 표출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인생이 그렇듯 핵심가치를 따라 사는데도 방해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때론 용기가 부족해서, 시간이 없어서, 경제적 사정으로 등등 내적, 외적 장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이 도구로 전락하고 무기력하게 표류하는 느낌이 드는 그때야 말로 핵심가치를 떠올려야할 때다. 핵심가치를 떠올려 삶의 방향을 재정할 필요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부드러운 호흡과 함께 마음의 속도를 줄여보자. 그런 다음 핵심가치를 떠올리고 지금-여기를 음미해 보라. 단 몇 초면 충분하다. 가족을 향한 당신의 반응은 보다 부드럽고 다정해질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은 똑같아도 그 깊이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핵심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핵심가치를 서원으로 만들면 기억하기 쉽다. 서원은 삶과의 약속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잠들기 전 나만의 짧은 의식시간을 마련하고 내안에 서원이 스미게 해보라. 영혼이 머무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휴식해보라. 저 멀리 보이던 행복이 지금 여기 내 곁에 머물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효림 스님 자비명상지도법사 metta4rest@gmail.com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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