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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약자와 최소율 법칙

기자명 남춘호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하다 보니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검사를 위한 검진표 작성은 QR코드로 접속할 수 있었다. QR코드 안내는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고령자나 외국인 주민은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QR코드 같은 디지털 접근은 효율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지방에 계신 부모님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에도 아버지가 노트북을 내밀곤 “뭐 어떻게 하라고 하던데, 도통 안 된다”며 부탁을 하셨다. 살펴보니 프로그램 체험기간이 끝나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해드리니, 마치 앓던 이를 뽑은 것처럼 좋아하셨다. 돌이켜보니 언젠가부터 부모님께 스마트폰·컴퓨터 기능을 가르쳐드리는 게 관례가 되어 있었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문해력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능력이 됐다.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하면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독서를 통해 문해력이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처럼 디지털 문해력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전자기기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고령자에게 전자기기는 호기심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자녀가 알려줄 때는 할 수 있었던 것들이 혼자 하려니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조금씩 뒤쳐지게 되고, 막상 필요할 때는 안 되고, 그러니 옆으로 미뤄버리게 된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시대를 겪으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부각되고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단어로, 그래서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현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정확한 현황 파악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라는 위기에서 사회 발전 기회를 찾아야 한다면, 시작은 변화에 취약한 이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에 대한 관심부터다.

대부분의 문제는 체계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생긴다. 생물학에는 최소율의 법칙이 있다. 식물의 성장은 필요 영양분 중에서 가장 적은 양의 영양분에 의해 결정된다. 즉, 식물의 성장은 부족한 영양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사회에도 대입해 본다면,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약자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화의 가속화를 추동하는 것은 분명 시장 영역의 힘이다.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가 ‘더 빠르게’를 외치며 속도 전쟁에 뛰어 들었고, 한국 역시 선도적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서비스 기준도 변화한다. 문제는 시장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사회서비스의 기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어찌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 역시도 뒤쳐지면 저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든 적은 없는가.

좋은 정책은 적확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어느덧 선진국에 진입했다. 지금까지는 다수의 요구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고려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그 바탕에는 미래의 내가, 또는 내 가족이 겪을 어려움을 지금부터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개선의 시작은 어려움을 겪는 자,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부터일 것이다. 사회 발전의 기준은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이 얼마나 해결되었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보편적 설계)의 기본 아이디어는 장애인, 고령자, 어린아이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모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책 수립에서도 유니버셜 디자인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23호 / 2022년 3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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