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양봉 일지 1 ‘꿀벌치기’-이종만

기자명 동명 스님

산야 모양 주름살에 새겨진 편안함

​​​​​​​품질 좋은 소량 꿀 생산이 양심
떠돌이 생활 자처해 세상 유람
문명 줄이고 자연과 함께 하니
집착 없어지고 얼굴엔 꽃 만연

나는 꿀벌치기이다
꽃 따라 전국을 떠도는 양봉옹(養蜂翁)

4월엔 유채꽃 노랗게 물든 제주 바닷가로
5월엔 아까시 꽃 흐드러진 담양 병풍산에서
6월엔 때죽나무 꽃 알알이 핀 통영 사랑도

비닐 천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산새들과 잠이 들어도
세상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게 없는
나는 꿀벌치기이다

7월엔 밤꽃으로 수놓은 단양 흰봉산으로
8월엔 싸리꽃 낭창거리는 고성 건봉산 기슭에서
9월엔 들국화 향기 그윽한 여주 남한강 변(邊)

사십 평생 전국 산야를 떠돌아다니며
지도 같은 주름을 얼굴에 새기고
꽃 따라 웃는
나는 꿀벌치기이다
(이종만 시집, ‘양봉 일지’, 실천문학사, 2021)

양봉하는 이종만 시인, 시 쓰고 글 쓰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고진하 목사와 함께 인도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종만 시인이 “우리나라에 양봉업자가 없어지면 우리나라도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됩니다”라고 말했다. 벌들이 꽃들의 수정을 도와주면서 식물들의 번식을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숲이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도시를 중심으로 수많은 콘크리트 건물과 대형 도로와 터널과 다리를 건설함으로써 인간은 도시 주변의 자연을 사막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사막화되는 도시환경 속에서 벌과 나비도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막화를 늦춰주고 있는 것이 양봉업자들의 활약이다.

이종만 시인은 양봉업자로서 평생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선지 항상 행복해 보인다. 

“나도 많은 양봉업자들처럼 요령껏 양봉 일을 했으면 부자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이 정도로도 자식들 교육시켰고, 나 스스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지니까요.”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형마트에서도 가격이 싼 꿀을 원하지 품질 좋은 꿀을 원하지 않는단다. 그러나 시인의 양심은 설탕으로 대량의 꿀을 생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아 그는 소량의 꿀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 비싸서 판로를 개척하기 쉽지 않으니 큰돈을 벌지 못한 것이다.

좋은 꿀을 따고자 하는 양봉업자의 특성은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4월에는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 바닷가로 가서 천막을 치고, 5월엔 아까시 꽃 흐드러지는 담양 병풍산에 병풍이 아닌 천막을 치고, 6월엔 때죽나무 꽃 알알이 핀 통영의 사랑도에 천막을 친다. 7월엔 밤꽃 향기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양 흰봉산으로, 8월엔 싸리꽃 낭창거리는 고성 건봉산 기슭으로, 9월엔 들국화 향기 그윽한 여주 남한강변으로, 유행하시는 부처님처럼 꿀벌치기는 수많은 식솔들, 꿀벌들을 데불고 세상을 두루 유람한다.

이쯤 되면 평생 떠돌이 생활을 하신 부처님과 비슷해지지 않는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시인은 짐도 많이 만들지 않는다. 문명이 주는 즐거움을 덜 누리다보니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비닐 천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들면, 산새들이 찾아와 동무하자고 비닐하우스를 두들긴다. 벌과 산새와 나비와 풀벌레와 나무와 풀과 꽃들을 동무하다보면, 자연스레 꿀도 따고 시도 따게 된다.

전국 산야를 두루 돌아다니다보니, 시인의 얼굴에는 우리나라 산야 모양의 주름살로 지도가 그려졌다. 웃으면 지도의 선이 더 분명해지면서, 얼굴이 꽃 모양이 된다.

어떤가? 이쯤 되면 꿀벌치기가 부러워지지 않는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았지만, 시인이 누구보다도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좋은 곳일지라도 집착하지 않고 떠나셨던 부처님과 같은 ‘유행(遊行)’의 정신 덕분이 아닐는지. 오늘은 전국의 양봉업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비명상을 해본다. 모든 양봉업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23호 / 2022년 3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