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와 국가

기자명 성원 스님

강원에 다닐 때다. 지대방에서 갑자기 호국불교에 관해 열띤 논쟁이 일었다. 누군가가 “스님들은 당연히 정부의 시책을 따라야 한다”고 발언해서였다. 당시 출가한 지 2~3년 차 사미들이었으니 대부분이 기존 사회에서 학습한 말투와 관념이 채 바뀌지 않았을 때였다. 치문반이었으니 치문(緇門), 그야말로 중물들이는 시기였다. 그때 한 스님이 “스님에게 국가에 종속되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폈다. 대다수가 그 스님을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이념적 도피 출가자가 아닌가’하는 막말까지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 조심스럽게 편들었지만 논쟁은 격했다. 호국불교라는 빌미로 승려를 살생의 전장으로 몰아넣은 일이 과연 국가라는 이름으로 정당해질 수 있을까? 오랜 화두가 되었다.

국가라는 집단과 동일한 신앙공동체인 종교집단도 모두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필요성이 요구되어 결성된 것이고 보면, 가치가 다른 둘의 공존은 그리 쉬운 일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종교가 한 국가의 주된 이념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보면 최고 권력자가 가졌던 의지의 표상으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성현의 가피가 내렸다거나 그들이 신앙하는 신의 권위가 권력자를 통해 표출되었다고도 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실은 통치자와의 야합은 종교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전파도 절대권력자와 밀착된 가운데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중심이 된 것도 아소카 대왕이 성찰을 통해 불법에 신앙적으로 귀의하면서 비롯됐으며, 중국도 한무제의 신앙적 귀의와 동시에 국가의 공인을 받으면서 급속히 보급되고 발전되었다.

한반도의 불교 전례도 고구려 소수림왕과 백제의 침류왕, 신라의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면서부터 그 전파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니 최고 권력자의 의지는 불법 포교에 절대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을 개국한 최고 통치자집단의 반불교적 정서는 고려의 장엄불교를 500년이란 긴 세월 산중불교에 머물게 하였고, 개화기를 맞아 많은 선각적 승려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의 주도적 종교로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칙령을 통해 로마에 공인해주면서 약진했다. 후대 로마의 중앙집권적 권위가 약해질 무렵 로마는 기독교를 통해 단일화된 국가통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국교화됐고 수천 년 동안 서양사회의 중심적 종교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후 기독교는 국가와 분리될 수 없는 두 발과 같이 움직이면서 민중들을 통솔해 왔다. 어느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익을 좇기도 하고, 한때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종교적 구심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 분리를 법으로 엄격히 적시해 놓은 현대에 와서도 일부 그릇된 성직자들은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어색해하며 다수의 신도를 무기 삼아 정책자들을 조정하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소한 차이지만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한 약속을 잘 지키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 전통문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교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당당히 펼치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와 생활에 깊이 스며 있는 불교 가치를 국가의 정책과 완전히 별개로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통치 권력으로부터 언제나 당당한 불교의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멍하니 바라보다 소외되지도 않아야겠지만 지나치게 밀착하여 추해져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나라를 지켜온 호국불교의 미명 아래 진정 지존한 불교의 고유 가치를 절대 왜곡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새봄엔 새 희망이 가득하리라 믿고 싶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24호 / 2022년 3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