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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천수경, 옥수수 천수경

기자명 혜달 스님

대립으로 쌓아둔 벽 허물고
각자 내면 성찰할 수 있어야
“둘다 맞는 말”이란 법문에
다투던 두 스님도 박장대소

겨우내 얼어붙었던 앞뜰의 흙이 제법 따뜻해진 햇살에 한결 수월한 숨을 내쉰다. 제주의 청매홍매는 꽃을 피우고 한창 향기를 실어 내보내느라 바쁘다. 봄이 들어서는 3월 우리는 시끌벅적한 대선을 치렀고, 이제는 대립으로 쌓은 벽을 허물고 각자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호기롭게 말했으니 뒤끝이 온전한 덕망 있는 지도자로 내려오길 바라면서, 젊은 스님들 간 벌어진 논쟁을 조실스님이 위트 있게 해결하는 ‘고구마 천수경, 옥수수 천수경’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점심공양을 마친 스님 몇몇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난데없이 스님 두 분이 ‘천수경’의 정구업진언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서로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논쟁이 점점 격렬해지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스님들이 제안을 한다.

“내일 큰스님 법문이 있으니까, 큰스님께 질문하자. 그리고 큰스님께서 어떤 결론을 내리든 받아들이자.”

한 발도 물러서지 않던 두 스님이 동료의 제안에 동의를 하면서 논쟁은 멈추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공양을 마치고 약간 출출할 즈음, 두 스님 모두 마음이 가라앉자 낮에 기를 쓰고 주장했던 것이 차츰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왠지 상대 스님의 견해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상대방 의견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자신의 견해에 자신감이 떨어져가던 한 스님은 낮에 공양 받아놓은 삶은 고구마가 문득 생각이 났고, 고구마를 들고 큰스님 처소로 들어갔다.

“큰스님, 출출하시지요?”
“그렇다.”

젊은 스님은 들고 있던 고구마를 뚝 반으로 쪼개 큰스님께 드렸고, 큰스님께서 한 입 드시는 것을 보고는 낮에 일을 말씀드린 후 큰스님을 회유한다.

“큰스님, 이제 제가 드린 고구마를 드셨으니까, 내일 법문하실 때 제가 ‘천수경’의 정구업진언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면, 제가 옳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알았다~.”

그런데 때를 같이해 함께 논쟁을 벌였던 상대 스님도 낮에 자신이 옳다고 강력히 주장하긴 했지만 왠지 상대 스님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낮에 받아 놓은 삶은 옥수수가 생각이 났고, 옥수수를 가지고 큰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큰스님, 출출하시지요?”
“그렇다.”

때는 이때다 싶어 큰스님께 옥수수를 딱 반으로 쪼개어 드렸고, 큰스님께서 옥수수 몇 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드시자, 낮에 벌어진 논쟁을 자세하게 말씀드린 후 이렇게 말한다.

“제가 드린 옥수수를 드셨으니까, 내일 법문하실 때 제가 정구업진언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하면, 제가 옳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알았다~.”

다음날, 법상에 오른 큰스님께서 법문을 마치자 두 학인스님은 ‘정구업진언’에 대한 본인들의 주장을 말한 후, 누구의 견해가 맞는지를 큰스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큰스님은 두 스님의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진중하게 다 듣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옥수수 천수경도 맞고, 고구마 천수경도 다 맞는 말이다.”

그러자 법상 아래에서 내심 큰스님의 답을 기대하던 학인스님 둘은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 때로는 한 사건을 두고 꼭 결론을 내서 확실한 답을 주는 것보다 이처럼 대중을 아우르는 현명한 처신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고구마 천수경, 옥수수 천수경’의 교훈이다.

큰스님께서 두 학인의 말을 진지하게 다 들어주고 공감하고 평등한 대우를 해 줌으로써 불필요한 논쟁을 불식시킨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진지하게 대해주고 나의 좋은 점을 말해 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갖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평등한 마음을 지니고 차별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잘 길들이는 것이 바로 세심(洗心)하는 것이고, 세상사를 바로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로가 화목하게 사는 것이 바로 청심(淸心)이라 생각된다. 향후 5년간 우리 함께 ‘세심’하고 ‘청심’하면서 말짱한 의식으로 잘 살아보자.

혜달 스님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hd1234369@gmail.com

[1624호 / 2022년 3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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