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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교판의 핵심은 서로 다양한 관점 받아들이는 것”

  • 교학
  • 입력 2022.03.18 21:08
  • 수정 2022.03.18 23:41
  • 호수 1625
  • 댓글 1

박수현씨, 지엄 연구로 첫 박사학위
화엄 교판의 새로운 해석 방법 제시

 의상 스님이 지엄 스님에게서 화엄을 배웠던 종남산 지상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당나라 지엄 스님이 세운 교판은 각 종파의 사상을 위계에 따라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오교판(五敎判)을 구성하는 분위는 하나의 법계로 이해해야 하며, 상호 보완의 관계로 설계된 것입니다. 오교판은 중중무진법계의 바른 계승이자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화엄종 2조 지엄 스님(智儼, 602~668)을 주제로 논문을 쓴 첫 박사학위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박수현씨(54). 그는 최근 서울대 철학과에서 ‘지엄 스님의 법계관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엄 스님의 오교판은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경전·논서를 화엄 사상의 시각에서 다섯 단계로 구분한 것이다. 여기서 교판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줄임말로 한역된 경전의 성격을 분류·체계화한 것이다. 인도에서 수세기 걸쳐 발전한 불교사상이 중국에 한꺼번에 수입되자 중국불교 사상가들은 교리의 불일치와 모순에 혼란을 겪었다. 각 사상가들은 부처님의 근본 뜻을 밝히고자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교리의 체계화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상의 서열화가 일어났다. 이는 각 종파의 형성 배경이 되기도 했다.

화엄종 실질적 창시자로 알려진 지엄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소승교(아비달마)’ ‘시교(중관·유식)’ ‘종교(여래장사상)’ ‘돈교(선불교)’ ‘원교(화엄불교)’로 구분하고 있다. 때문에 지엄 스님의 오교판은 그간 ‘화엄’이 불교사상의 종결이며 최상승 법문임을 보여주는 교리 체계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박수현 박사는 이같은 해석을 지적했다. 그는 지엄 스님의 오교판이 수직의 위계적 체계가 아닌 ‘다층적 스펙트럼’으로 설계돼 있다고 분석했다. ‘화엄경’에 제시된 법계의 중첩 구조와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오교판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먼저 법계에 대한 개념을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법계는 하나의 절대적 세계가 아니다. 수많은 인식주관 중심에 펼쳐진 다층적 세계이다.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사건(event)이 있고 이 사건이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된다면 이를 법계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법계가 조화를 이룰 때 ‘화엄경’ 중중무진 법계론이 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박 박사는 “지엄 스님의 오교판도 법계와 마찬가지로 특정 사상으로 한정돼 설계되지 않았다”면서 “각 분위가 자신의 사상적 한계를 보완하고자 중첩적 구성을 띠고 있고 각 분위는 더 완벽한 사상으로 발전하도록 개방적 형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지엄 스님의 오교판은 ‘화엄경’에 나타난 법계원융사상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자 중중무진법계의 또다른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화엄 오교판은 각 사상의 높고 낮음, 얕고 깊음이 아닌, 커다란 지도에 사유가능한 모든 관점을 두고 각 사상들이 어느 영역에서 어떻게 유기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한 것”이라며 “이렇게 완성된 오교판의 각 분위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제법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교(圓敎)’에 대한 해석도 달랐다. 오교판에서 최고 분위로 등장하는 원교는 사종법계설·사사무애와 같은 화엄사상만 대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박 박사는 각 사상의 관점이 자신의 강점을 적절히 발휘해 서로 포용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가 원교라고 해석했다. 이어 “지엄 스님은 마지막 저서 ‘공목장’으로 화엄 교판을 최종 정립했다”면서 “스님은 화엄적 입장에서 당시 불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고 이것이 오교판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엄 스님이 스승 두순 스님을 따라 머물렀던 종남산 백탑사, 삼계교를 창시한 신행 스님의 탑원사찰이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지엄 스님이 스승 두순 스님을 따라 머물렀던 종남산 백탑사, 삼계교를 창시한 신행 스님의 탑원사찰이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25호 / 2022년 3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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