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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선배스님 절에 왔습니다

기자명 하림 스님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돼 있어
마음 상태는 몸·얼굴에 나타나
힘이 들 때는 쉼이 최고의 양약
다만 내가 아닌 다른 공간 추천

아침에 선배스님에게 전화를 겁니다. 반가운 목소리입니다. 가벼운 안부를 여쭙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스님 절에 오늘 가서 하루 자도 될까요?” 
“언제든지 됩니다! 템플스테이 방이 있으니 오세요.” 
“고맙습니다. 오후에 가서 뵐게요” 

그리고 이곳에 왔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안내받아서 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휑한 빈방이 약간 낯설긴 하지만 텅 빈 마음 같기도 합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절 마당이 훤히 보입니다. 이불을 깔고 누워봅니다. 세상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인지 오히려 반갑기까지 합니다. 이불 위에서 잠이 듭니다. 이 지구 밖 우주에 나만의 동그란 공간 안에 누워있는 느낌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원고를 써 내려갑니다. 

언제부터인지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고 설사 끼가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몰래 찾아봅니다. 설마 큰 병은 아니겠지 하면서요. 자주 피곤하고 기운이 없고 예전처럼 일에 의욕이 나지 않고 귀찮아서 미루기만 합니다. 조금만 신경 써도 힘들고 마냥 쉬고만 싶습니다. 

일하고 있는 식구들을 보면 미안하기만 합니다. 의욕을 내어 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하기도 어렵습니다. 명상한다면서 자기 몸과 마음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며 혹여 부처님 가르침에 신심이 적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습니다. 

마침 어제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님, 수치상으로는 아주 건강한 상태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반가우면서도 ‘그런데 왜 몸이 무겁지?’라고 혼자 의아해합니다. 

그래서 한 해를 돌이켜 봅니다. 은사스님을 가까이 모신지 꼭 일 년이 되어갑니다. 은사스님의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함께 살펴주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그 와중에 조금 힘들어했나 봅니다. 우리 절이 시내 한가운데에 있고 숙소가 없어서 차로 15분쯤 거리의 2층으로 된 집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절에서 일보고 스님 공간에 가면 때론 좋기도 하고 때론 힘든 모습에 슬프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이곳저곳 오고 가면서 쉴 공간이 없었나 봅니다.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힘들 것도 없고 더군다나 수행하는데 부끄럽기도 해서 ‘괜찮다’라고 했지만, 몸은 속일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의 상태가 몸에 나타나고 얼굴에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마음과 몸이 연결된 부분이 다릅니다. 저는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으면 위가 불편해집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탈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허리가, 또는 머리가 아프기도 합니다. 억지로 ‘나는 명상으로 잘 이겨내고 있어’ 각인시키고 우겨 보아도 몸은 불편해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오늘은 저 자신을 탈출시켜 봅니다.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절에 오셔서 쉬었다 가시면 회복되고 다시 용기가 날 것이라고 늘 권했는데 절에 종일 있는 제가 오히려 힘들어한다니 말이 안 맞는 것 같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작정 선배스님의 절에 와 보니 무척 편안합니다. 

세상 어딜 가나 그렇게 편하지 않습니다. 결국에 스님은 절이 편합니다만 자기 절이 아니어야 편한 것 같습니다. 선배스님이 바빠 저녁도 저 혼자 공양간에서 먹습니다. 내일 아침에 차 한잔 나누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서운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 있고 싶었는데 마음 편하고 이렇게 글도 씁니다. 

여러분도 너무 힘들 때면 잠시 쉬어가도 좋겠습니다. 다만 다른 이의 집으로 가보세요. 힘들다는 느낌은 내가 고집하는 무엇인가와 또 다른 무언가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좀 수그리고 피한다면 그 갈등은 잠시라도 휴전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지혜가 나리라 믿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 싸움을 쉬고 푹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에는 새로운 기운과 희망을 만나리라 기대하면서 푹 자겠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25호 / 2022년 3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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